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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Sep 28. 2023

'글 쓰는 자아', 쓰는 순간에만 만나는 또 다른 나

나는 누구에게나 '글 쓰는 자아'가 따로 있다고 믿는다. 

글을 쓰는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평소의 나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일상의 나는 마치 반응에 자극하듯 학습된 사회적 행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매 순간 진심을 꺼내 놓거나, 글 쓰는 순간만큼 숙고해서 무언가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그 순간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행동을 취한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다르다. 

그 순간 우린 책상 앞에 앉아서 평소에 가지 못했던 사고의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천천히 아래로 잠수하기 시작한다. 그 깊은 바다 아래에는 내가 몰랐던, 혹은 알고도 눌러 두었던 내가 존재한다. 그 인간(혹은 동물일 수도 있다)에게 펜을 건네준다. 자유롭게 쓰도록 한다. 


글 쓰는 자아의 모습은 사람마다 사뭇 다르다. 

어떤 이는 평소 쾌활한데 글에서는 퍽 차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평소 시크하지만 글 속에서 다정다감하기도 하다. 일상에서 안 보여주는 냉소를 뿜어내는 사람도 있다. 쓰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평소의 나와 성격이 다른 일은 부지기수거니와, 나이가 다를 수도 있고, 성별이 다를 수도 있다. 만나기 전에는 가늠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글을 쓰며 평소 닿지 않는 깊숙한 깊이까지 사고하고,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거듭 수정을 거쳐 정성스레 내놓은 그 글 속의 필자는 일상의 우리와 다소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무적인 글이 아니라 감상적인 글에 대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모르는 사람만큼이나, 알던 이들이 쓴 글을 좋아한다. 이 사람의 속에 이런 면이 있었구나, 깨닫는 순간이 즐겁다. 나 같은 경우 글 쓰는 자아가 꽤나 지랄 맞은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행하는 과정이 퍽 행복하다. 그리고 누구나 글을 쓰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데(꼰대처럼 보일까 봐 그걸 잘 말하지는 않지만), 그런 믿음의 근간이 된 것은 글 속의 내 모습과 마주쳤을 때의 신기하고도 즐거운 경험들이다. 일상의 나와 글 쓰는 내가 만났다 떨어지길 반복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나의 인생을 만들어왔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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