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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Oct 01. 2023

예비 평론가가 조심해야 할 태도, '억까'

평론이라는 게 이상해서 칭찬보다 비판할 때 보다 주목되는 경향이 있다. 

혹은 우리가 그런 기대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평론가 따위가 뭘 아냐고 욕을 하면서도, 실은 내가 미묘하게 싫었던 지점을 대신 시원하게 까주는 역할을 기대할 때가 적지 않다. 

또 억까(억지로 까는 것)의 의도가 없어도, 결과적으로 비평가의 평가는 대중의 평가에 비해 박할 때가 많다. 영화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 전문가는 경험이 많은 만큼 취향이 섬세해서, 평가 기준 역시 깐깐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런 경향성이 예비 평론가에게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마치 영화를 내려다보는 것이 훌륭한 평론가의 자질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좋은 비평은 자신만의 논리를 확립하고 그것을 영화 안팎에서 촘촘하게 논증해 내는 글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꾸미는 비평은, 몇 번의 반박으로 매가리 없이 무너진다. 신인의 패기로 영화를 향해 도전하는 태도는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이 오만함으로 번지면 안 된다. 도전과 오만의 경계는 스스로 내면을 꾸준히 들여다보며 찾는 수 밖에 없다.


평론가를 보며 '모두가 Yes 할 때 홀로 No 하는 용기'를 칭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비밀을 알려주자면, 사실 평론가의 입장에서(특히 논쟁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논객의 기질을 가졌다면) 홀로 No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나만의 안목을 자랑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저항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맷집이 있다면 그다지 두려운 일도 아니다. 평론가에게 정말 두려운 것은 모두가 Yes 할 때 나도 Yes 하는 것이다. 내 취향이 남들과 다를 바 없음을 고백하는 공포. 그래서 평론가 기질이 있는 이들은, 남들이 다 좋다는 영화를 보고 그저 "좋다"고 말할 때 심사가 뒤틀리고 식은땀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가에게 진짜 용기란, 내가 보고 느낀 바를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고백하는 일이다. 나는 평범한 영화를 보고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평론가를 좋아한다. 물론 그것이 낮은 안목, 혹은 영화사에 아첨하려는 태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솔직한 견해일 때. 평론가는 누구나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견해를 던져 파장을 일으키고 싶다. 그런 욕망을 내려두고, 투명하게 평가하며 솔직하게 고백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다. 


이런 태도는 다른 평론가의 글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너네 다 틀렸어"라고 말하는 것은 주목도 받으면서 자신의 안목을 뽐낼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이어 훌륭한 비평으로 독자를 설득한다면 전략 성공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억까로 나아가면 추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견해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평론가의 의견을 의도되지 않은 방향으로 몰기도 한다. "너네 다 이런 시각에서 영화를 봤더라. 그게 아니야 바보들아"라는 글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뜨겁고 과감하게 대결하는 태도 자체는 좋다. 그만한 근거가 있을 때. 다만 그런 태도와 스스로에 취하는 않는 것이 중요하다. 뭐 사실 비평가 누구나 이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왜일까. 그래, 사실은 내 얘기다 젠장. 하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특히 예비 평론가에게 이런 태도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영화, 그리고 다른 글을 내려다보는 태도는 결국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심지어 턱없이 높여 놓은 기준에 자신의 글이 닿지 못해서 두려움에 비평을 포기하기도 한다. 평론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에 속지 않았으면 한다.


오해를 막자면 이 글은 영화 팬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분야나 마니아들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신랄하게 까대며, 서로 안목을 뽐내면서 노는 문화가 있다. 그게 마니아질의 재미인 것을, 뭐가 문제겠는가. 그러니 이 글은 진지하게 평론가의 길을 가겠다 마음먹은 이들에게 전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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