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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예거 Jan 03. 2017

인턴, 줄타기꾼이 되어라.

스스로 구원하는 인턴 일기 1

인턴은 어떤 존재일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존재. 언제든지 취준생 신분으로 돌아갈 자유가 있으며, 동시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는 이중적인 존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계에 서있는 경계인. 그게 바로 인턴이다.


인턴이 하는 일은 대부분 간단한 일들이다. 간단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 물리적인 귀찮음이 필요한 일(쉽게 말하면 노가다성 작업)은 모두 인턴의 몫이다. 중요한 기안을 직접 작성하거나 신입사원 입사 교육을 기획한다거나 하는 중요한 일은 어깨너머로 구경만 할 뿐이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다. 회사는 인턴을 왜 뽑을까? 몇 달 일해보니 알 것 같다.


귀찮은 일은 정말 많은데 인력이 부족하다.

=> 어, 근데 우리 조금 이름 있는 회사잖아. 우리도 인턴 뽑아서 쓸까?

=> 최저시급 준다고 해도 인턴 들어오려고 줄을 선대!!


...


그렇게 줄 서서 인턴으로 입사한 게 나다. 경쟁률 약 200:1을 뚫고 뽑힌 단 한 명의 인턴. 뭔가 엄청나 보이지만, 사무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성가신 작업, 힘이 필요한 작업을 도맡아 처리해줄 수 있는 값싸고 효율 좋은 인력. 그게 인턴이다.


면접관들은 인턴 면접에서 이 질문을 반드시 물어본다.


만약 회사생활이 여러분의 생각과 다르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건, 번역하면 => "우린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임무를 주지 않을 거야. 너네가 실질적으로 배울만한 건 많이 없을 거야. 그래도 괜찮아?" 에 가깝다.


저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정답은 정해져 있다. => "어떤 일이든지 기쁘게 해내겠습니다."




자, 그러면 인턴으로서 최대한 영양가를 뽑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턴은 경계인이기에, 역설적으로 관찰자가 될 수 있다.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직장에 찌든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fresh한 시선으로,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제부터 인턴 생활을 하며 관찰한 것들을 이 브런치에 기록하려 한다. 대부분은 비판(혹은 비난)이 될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회사의 시스템, 부조리한 구조, 퇴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인턴에게 중요한 덕목은 두 가지다.


남들에게 보여야 할 덕목 =>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덕목

자신에게 꼭 필요한 덕목 => 들키지 않고 끊임없이 불평하기. 동시에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생각해내기.


인턴은 가져야 할 덕목마저도 이중적이다. 하지만 줄타기의 재미는 그런 절묘함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줄 타면서 쩜프도 하고 부채질도 멋지게 해야 재밌는 법. 인턴은 줄타기꾼이 되어야 한다.


<왕의남자>의 마지막 장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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