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구원하는 인턴 일기 2
기업에서 뽑는 인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있는' 인턴
둘.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없는' 인턴
어떤 형태가 더 좋은 걸까? 글쎄. 애초에 저 둘을 좋다/나쁘다의 기준으로는 나누지 못할 것 같다. 기업마다 다르고 취준생의 입장마다 다르니까.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없는' 인턴의 경우는 오히려 속 편할지도 모른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까. 애초에 전제되지 않은 것이기에, 고통도 없다. 깔끔하게 인턴 경력 채우고, 수료증과 박수를 받으며 끝내면 된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있는' 인턴의 경우는 제목 그대로 러시안룰렛이다. 근데 더 잔인하다.
러시안룰렛은 확률이 정해져 있다. 실린더 속엔 총알이 단 한 발. 사느냐 죽느냐. 확률은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다. 내가 '노력' 한다고 해서 장전된 총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변동한다. 인턴이 노오오력해서 그 가능성을 조금 상승시킬 수 있다. 그러나 회사에서 갑자기 티오가 안 난다고 하면 노력은 전부 무용지물이 된다. 반대로, 기업도 뽑을 맘이 있고 인턴도 열심히 했는데, 다른 동기가 더 우수해서 걔만 정규직이 되고 내가 떨어질 수도 있다.
불합리한 제도이지만, 어차피 인턴의 선택권은 하나뿐이다. 열심히 하기.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이치다. 결과가 어찌 되든, 인턴 입장에선 열정을 다 바치는 게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잡고 싶은 게 취준생의 마음이기도 하고.
(무한상사 길 인턴)
일부 대기업은 공채 전형에 아예 3달짜리 인턴 과정을 넣어놨다. 2차 면접에 합격한 자들을 3달간 인턴을 굴린다. 그 세 달의 기간 동안, 정규직 자리를 놓고 인턴들끼리 박 터지게 경쟁한다. 마지막 날, 한 명은 웃지만 한 명은 취준생으로 돌아간다. 아, 세상에서 제일 잔인하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달콤한 말이지만 그 안엔 끔찍한 고통이 들어있다. 동료 인턴들과의 은밀한 경쟁, 최저시급, 열정야근, 전환 실패에 대한 마음고생까지...
인턴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김대리님과 '캠리'를 함께 갈 기회가 생겼다.
캠리란 '캠퍼스 리쿠르팅'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대학교에 직접 방문해서 회사에 대해 홍보하고 작은 선물을 뿌리고, 공채에 대한 팁을 주는 이벤트다.
그 날은 정장을 입고 회사가 아닌, 대학교로 출근했다. 기분이 묘했다. 비록 인턴이지만.. 나름 회사 업무로 대학교에 방문한 거잖아?! 어깨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대리님과 학교에서 만나, 가장 처음 방문한 장소는 취업센터였다. 취업센터장님과 만나 학생 추천제도와 설명회 일정에 대해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센터장님과 인사를 나눌 때, 대리님은 명함도 없이 쭈뼛거리는 나를 이렇게 소개해주셨다.
아, 이 학교 출신 인턴인데요, 저희가 정규직 전환까지 검토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ㅎㅎㅎ
정규직 전환 가능성에 대해 처음 듣는 건 아니었지만,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들으니까 솔직히 설렜다. 진짜? 진심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메웠다.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이대로 취업에 성공하는 걸까. 가능성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겠다. 아 그런데 그냥 말 뿐이고 결국 전환 실패하면 어쩌지.. 휴.
대리님이 나를 그렇게 소개해준 이유는, 이 학교 출신 학생을 대우해준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정말로 정규직 전환시켜줄 맘이 있으신 걸까.
나 또한 '전환 가능성'이란 딜레마에 빠진 한 명의 인턴이 되는 순간이었다.
(정규직 전환에 성공하는 무한상사 길 인턴)
나도 길 인턴처럼 정규직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늘도 인턴은 그 미스터리 한 가능성에 청춘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