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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Oct 16. 2016

취향의 우주

별 것 없는 이야기

세상엔 사람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근거가 존재한다. 

물론 각자만의 조건과 이상향이 있으므로 이 근거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1번부터 10번까지 순서대로 나열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자신만의 판단 근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남자의 키는 180 이상, 여자의 몸매는 어쩌고 저쩌고 따위의 것들.


당신이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며 글을 시작해보자. 

뭐 따지고 보면 저는 이렇거든요,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너무 이상하고 괴팍한 건 아니니 일단 한 번 들어봐 주세요.

사실 난 유난한 사람이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인생관을 가지고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왔다(아직까지는 말입니다). 그래서 변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라든지 마음속 기준들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맞아. 충분히 그럴 수 있지.’라는 공감대를 얻어낼 자신도 나에겐 있다.

내 기준은 딱 하나이다.

바로 취향.

나는 외모에 대한 기준도, 성격에 대한 기준도 유연한 편이라 ‘음... 그럴 수도 있지. 저렇게 생긴 것이(이런 말을 하는 게 좀 건방져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의 잘못은 아니잖아. 저 사람의 문제는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로부터 하나씩 받아버린 유전자에 있는 거라고.’라든지, ‘요즘처럼 팍팍한 세상에 좋은 성격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런 완벽한 사람은 영화나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딱히 적도 없고 그냥저냥 잘 살아간다. 

하지만 내가 쉽게 견디지 못하는 건 바로 취향의 문제이다.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내 안에서 불쑥 뭔가가 튀어나와 버린다. 그리고 한번 외부의 세계에 등장해버린 나의 취향의 기준은 강하게 스스로의 존재를 항명하는 것이다. 속으로 무던히 애를 쓰며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은 해보지만 일종의 욕망과 확신, 신념이라고 하는 취향의 문제에 직면하면 난 그냥 모든 걸 놓아버릴 때가 많다. 

‘네가 이것만 지켜준다면 난 너와 함께 우주 끝까지라도 갈 수 있고, 초등학교 이후로 한 번도 입지 않았던 내복도 입을 자신이 있다고.’라는 꽤 단단한 고집이 나를 지배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건 도무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내 안에서 일종의‘취향에 관한 근본적 고찰과 그 토대를 굳건히 다지기 위한 효율적 시스템’이 작동을 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반으로 갈라 내 쪽과 내 반대쪽으로 나누어 버리는 것이다. 이건 스스로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 세상 안에서 난 허우적댈 뿐 그 사이의 벽을 허물어버리지는 못한다.


나는 당신이 “요즘 네가 변한 것 같아. 우리 서로 생각하는 시간을 좀 갖자.”라는 말보다, “네가 말한 그 책을 읽어봤는데 난 도무지 공감이 안 가던걸?”이라는 말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당신이 내가 싫어하는 닭발을 먹으러 가자고 해도 난 우리가 함께 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닭발을 먹을 자신도 있다.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온 뒤 같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고, 당신이 추천해주는 책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당신이 하자는 대로 모든 걸 다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취향이라는 건 쉽사리 상대에게 전염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말로 풀어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으므로(내가 말주변이 없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나는 “이건 도무지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인가?”하는 마음으로 포기해버린다.


사실 회원 수가 제일 많다는 결혼정보업체에서도 취향에 관한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듯하다. 취향이라는 것이 사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마음만 먹는다면야 그럴듯하게 꾸며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취향의 진실을 담아내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그럴듯하게 꾸며진 취향에 사람들은 쉽게 넘어가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정말이지 이건 쉽지 않은 문제다. 그리고 특히 나에겐 정말로 커다란 문제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 어렵다. 어쩌면 그런 사람을 평생 한 명도 못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라고 오늘도 혼자 카페에 앉아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나는 절실히 깨달았다.



*외모지상주의자보다 저 같은 취향 지상주의자가 더 인간적이지 않나요? 조금은 복잡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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