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월요 책방

사랑_산도르 마라이

서로 다르게 주장했던 사랑

by 최전호

책을 많이 읽는다,라고 말하긴 건방지겠지만 어쨌든 나는 책을 많이 읽는다.

기껏해야 백 년 남짓 살 수 있는 삶이라는 다소 비정한 시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늘려가고 싶다면,

더욱더 사랑하고 싶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잘 살고 싶다면,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그 안의 세계에서 작가가 풀어낸 인물과 그것들이 엮어 내려가는 인생의 씨줄과 날줄 사이의 작은 틈에 놓인다면 우리는 분명 다른 삶을 한 번 더 살 수 있다.

살아내지 못했지만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방법 중 가장 가성비가 높은 방법은 독서일 것이다.


필자가 읽었던 책들은 분명 많다.

그중 마음의 몇 가닥을 일렁이게 하고, 그 일렁임이 주는 파동을 따라 견고히 삶을 다질 수 있었던 책들을 한 권씩 이곳에 소개해보려 한다.

책을 읽은 한 명의 독자라도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면 나는 그 책은 충분히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다른 영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창작해내는 직업이다. 기본적으로 창작이라는 것 자체가 힘들겠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불확실성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써 내려가는 글에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고 끈기 또한 필요하다.


오늘 소개하는 "사랑"이라는 책과, 이 책의 저자 "산도르 마라이"는 인내심과 끈기에 충실한 작가이고, 그가 풀어낸 작품 또한 충분히 훌륭하다. 그러므로 과감히 <월요 책방>의 첫 번째 책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01. 작가 소개

산도르 마라이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그리고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된 그의 책 조차도 지금은 대부분 절판되어 책을 구하는 것 자체도 상당히 어렵다.

그것에는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1. 헝가리 태생의 유럽 작가라는 것.
2. 작품 활동엔 굉장한 열정이 있었지만 모국이었던 당시 헝가리의 복잡했던 정치적 상황으로 대부분의 생을 외국에서 보낸 탓으로 좋은 출판사와 제작자를 만나기 힘들었다는 것.
3. 영어와 독일어 그리고 프랑스어에도 능했지만 헝가리어 작품을 고집했다는 것.


등을 꼽아본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생과 작품의 질에 비해서 산도르 마라이가 한국에서는 상당히 저평가되고(심지어 아는 사람이 드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가 깊이 성찰한 인간 내면의 감성과 그것보다 더 깊은 본질적인 본성에 대해 풀어내는 그의 필력은 독자들로 하여금 한 번 잡은 그의 책에서 눈과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필자도 처음 그의 책을 접하고는 한국에 출판된 그의 책을 모조리 찾아 읽을 정도였다.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평생 조국에 돌아가기가 그토록 힘이 들었던,

인간 내면과 본성을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풀어냈던,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헝가리 작가가 바로 산도르 마라이이다.



02. Keyword


1. 사랑을 생각하는 세 가지 관점


책에는 세 명 주인공이 등장한다.

희대의 바람둥이자 사랑꾼인 쟈코모.

돈과 권력 그리고 한 여인의 사랑까지 끝까지 얻고 싶었던 파름므 백작.

두 남자의 욕망의 정점에 있었지만, 사랑의 소유물이 아닌 주체로 스스로의 사랑을 주장한 프란체스카.


세 명의 인물이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은 철저하게 달랐다. 그 상이한 관점은 책에 나오는 그들의 대사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여기서 제일 센 사람은 나야. 왜냐하면 난 널 사랑하니까.
난 마치 널 후려치듯이 이 말을 네 면전에 대고 외치고 있어. 알겠어?

-프란체스카-


자네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반항일세 그 반항이 정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이익을 침해하는 반항일세.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부딪혔던 모든 반항들을 꺾어버렸듯,
나는 이 반항도 꺾어버릴 걸세.

-파름므 백작-


각하께서 운명의 침상에 누워 마지막 말을 찾고 계실 때, 작별 인사이며 동시에 제가 할 수 없었던 얘기를 부인께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내겐-오직-영원히-너뿐이야'라고.

-쟈코모-


자신은 사랑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에서 누구에게든 항상 우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쟈코모.

그리고 그런 쟈코모의 사랑의 방법이 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그런 쟈코모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알고 있는 자신뿐이라고 생각해던 프란체스카.

또 둘의 사랑을 자신의 힘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파름므 백작.


세 명의 사랑 이야기가 책 속에 녹아 있다.


2. 긴 독백(대화)이 가져다주는 긴장감


"사랑"에서 표현된 산도르 마라이의 문체는 호흡이 상당히 길다. 한 번 시작된 문장은 끝을 모르고 길게 이어진다. 열다섯 개의 꼭지가 나오는데 대부분이 한 인물의 독백으로 구성되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상대방의 대답이 나오지만 그건 대화를 이끌어가는 인물의 다음 대사를 이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 일 뿐 대화의 양적 비중에 한 명의 인물에게 치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은 책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사실 필자는 이 책의 처음 부분에는 상당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명의 인물에 집중된 대사로 소설을 이끌어나간다는 방식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말해 몰입도가 좀 떨어졌다. 하지만 소설의 막바지 세 명의 인물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한 꼭지씩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초반부 책을 대하던 필자의 태도가 부끄러워질 만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마 산도르 마라이의 문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일 것이다. 적어도 인간 본연의 감성과 본성을 묘사해 내는 그의 관찰력과 필력은 길게 이어지는 호흡의 문장조차도 모조리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록 날카롭고 예리하다.

파름므 백작이 쟈코모에게, 프란체스카가 쟈코모에게, 마지막으로 쟈코모가 백작에서 쓴 편지(하지만 프란체스카에게 말하고 있는)에서 그들이 뱉었던 단어 하나하나가, 문장 하나하나가 정확하고 깊게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이 멈추지 않고 영영 끝나지 않을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전하는 사랑의 비명들이 마치 내 것인 마냥 위로되었고 좌절되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 사랑에는 결국 승자는 없다


세 명의 각기 다른 사랑에 산도르 마라이는 정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세 주인공이 생각하는 사랑은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사랑이다. 누구나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그것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감히 사랑을 정의할 수 있겠는가?

삶 속에서 매번 사랑 앞에 모든 걸 걸고, 그것을 스스로 무너뜨리기도 하고, 주장했던 사랑을 부인해야만 했던 경험들을 해왔던 우리에게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작가는 깊게, 또렷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03. 최고의 한 줄


나는 너를 만나야 해.

-프란체스카


내겐-오직-너뿐, 영원히-너뿐.

-쟈코모



04. 필자의 감상


사랑일까?

사랑이다.

사랑이었다.


산도르 마라이는 분명 혼란스러운 역사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살았지만, 그가 쓴 "사랑"은 철저하게 역사적 배경은 비껴나가고 오로지 인간에게만 집중한다. 그리고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최고이자 가장 슬픈 감정인 사랑에 집약된다.

시대적 배경이 요즘과는 동떨어져 있을지라도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소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딛고 있는 단단한 현실을 기반으로 사랑을 한다. 그러므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사랑의 모습도 백 개가 된다. 그것들에 순위를 매길 수 없을뿐더러 정답도 없다.

우리가 사랑에 매번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건 스스로의 사랑에 모습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확신. 내가 건넨 사랑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정답 없는 사랑의 확신들이 뒤엉켜 그래도 사랑이었다, 라는 이야기가 "사랑"에 엉겨 우리로 하여금 다시 사랑하게 할 것이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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