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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Oct 01. 2017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죠

전 게으른 여행자 입니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죠(이렇게 글을 시작하고 보니 지금까지의 제 말들이 전부 거짓말 같지 하지만 사실 그건 아닙니다. 정말이에요) 제 여행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고자 이번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나름 가끔이긴 하지만 여행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이고(하지만 여전히 “작가”라는 말은 저에겐 상당히 어색합니다. 더군다나 가끔씩 듣게 되는 “작가님” 이란 말은 더더욱 말이죠),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이 글 밖에 없으니 변명이든 해명이든 결국 글로 풀어나가야겠다 생각했거든요. 

제가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서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한 채 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식의 만남은 상대방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요? 

사실 전 괜찮습니다. 물론 처음엔 조금 어색하긴 하겠지만요.

서론이 길었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제 여행에 대해 변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런 상황들은 어쨌든 여행 책을 써버린 작가로서의 숙명이니 받아들이라고,라고 누군가 넌지시 말한다면 조금은 억울하고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저의 처지이기도 합니다.


사질 지금까지 저는 여행을 많이 하긴 했지만 솔직히 여행을 잘(여행을 잘한다, 라는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긴 하지만요)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거죠. 세상의 모든 일이 무언가를 많이 해봤다고 해서 결코 저절로 잘하게 되지는 않으니까요. 

30년 동안 밥을 먹고 살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설거지를 깔끔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과 비슷합니다(이건 너무 심한 비약인가요?).


“작가님. 작가님의 책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좋더군요(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 이번에 작가님이 여행하셨던 나라로 여행을 갈 예정입니다. 저는 거기서 무얼 봐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저는 식은땀을 흘리고 맙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야게 변하고 아무 생각이 나질 아는 거죠. 

사실 그럴싸한 대답이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거짓말일 것이고 적어도 제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쓸데없는 자존심일 수도 있고요. 아니 생각해보니 사실은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저는 결국,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거짓말이 아니라 나는 진짜 잘 모르겠습니다. 

저라고 해서 지금껏 제가 여행한 나라를, 머물렀던 도시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자신이 여행한 곳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자에 가깝겠죠. 물론 저도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생활자에 가까운 여행을 한 적도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저의 게으른 성격 탓에 질문자가 원하는 세세한 정보는 제공해주지는 못합니다. 이건 몇 번을 생각해봐도 제가 죄송한 일일 테지만 그래도 저로서는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저는 다소 느린 사람이라서 아무래도 열심히(이 열심히 의 기준도 역시나 상당히 모호하긴 합니다) 여행을 하지는 못합니다. 여행에서 하루쯤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많죠.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오히려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구석진 재래시장엘 가서 좋아하는 과일을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혼자서는 도무지 다 먹지 못할 만큼 과일을 사들고 돌아와서는 숙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한참을 그냥 바라보곤 합니다. 과일들에게 각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 주기도 하고, 다른 여행자의 침대 위에 슬며시 올려놓기 까지. 그리고 숙소에 돌아온 여행자의 표정을 몰래 숨어 살피는 일 까지도. 이런 소소한 여행지의 일상에 혼자 설레고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마는 여행자가 바로 저라는 사람입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니 저 같은 사람 한 명쯤 있어도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요? 

저의 이런 여행이 세상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누군가는 에펠탑을 보고 설레었겠지만 저는 프랑스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불어에 설레고 마니까요(사실 이건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남성분들 대답해주세요).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여행지에서 신선한 과일을 만나는 건 꽤 즐거운 일입니다.

한국에선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부러 잘 찾아 먹지 않는 과일 일지라도 여행지의 낯선 재래시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과일의 선명한 빛깔에 저는 그만 하루를 놓아버립니다. 

파리에서는 이틀 동안 망고만 먹고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망고를 파는 프랑스 청년이 어찌나 살갑던지 그만 지갑에 있는 현금으로 모조리 망고를 사버린 것이죠. 그렇게 수 십 개의 망고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혼자 머쓱하게 웃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달달하고 새콤했던 망고의 맛이 떠오릅니다. 이틀 동안 저는 파리에서 충동적으로 대량 구매해버린 망고 때문에 꽤나 행복하게 지냈었습니다. 물론 망고만 먹는 것이 질리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이틀 정도는 그런대로 버틸만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어느 곳엘 가던지 망고만 먹고 지내는(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말이다) 여행을 하지는 않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과일을 그다지 즐겨먹지 않기 때문에 망고의 자리는 이내 커피나 방쇼, 책들에게 자리를 내주죠.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에펠탑은 망고, 커피, 방쇼, 책들에게 제 여행의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가 파리를 여행하러 떠나는 사람들에게 에펠탑에 꼭 가보세요,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 돼 버리고, 재래시장에서 망고를 사서는 실컷 드시고 오세요,라고 말하는 건 터무니없는 대답이 되어 버리는 꽤나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니 그런 종류의 질문을 받을 때 저는 식은땀을 흘리며 손가락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습니다.

환상을 쫒아간 여행이 리얼리티를 만날 때 여행은 여행자를 당혹게 합니다.

그건 자신의 상상 속에서 쌓아 올린 여행에 대한 환상을 스스로 무너뜨려야만 한다는 잔인한 압박일 수도 있고, 결국 네가 바라는 여행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여행이 우리에게 건네는 냉혹한 선언일 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이건 뭐지?”라고 여행에게 묻게 되겠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떠나는 사람도 각자의 마음을 품고 갈 것이고, 그렇게 만나게 되는 여행지도 여행자 각자에게 다른 빛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행의 참모습이겠죠.


그러니 파리에서 망고가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면 에펠탑은 잠시 미뤄두어도 괜찮습니다(에펠탑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모든 사람이 품고 있는 각자의 여행을 하나의 일관된 이미지로 묶어서 심심하게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영 제 적성엔 맞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에펠탑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정말 멋있었어요. 정말로요.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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