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버린 마음의 방향
15년 전쯤.
그러니까 처음 교복이라는 것을 입고, 조금은 허전한 까까머리를 했던 학창 시절 나에게도 사춘기라는 게 있었다. 여전히 우리 엄마는 “너한테 그런 게 있었나?”라고 하시며 나의 사춘기가 언제쯤이었는지, 아니 그것이 나에게도 있긴 했었는지 확신을 갖지 못하시지만 말이다.
어쨌든 누구나 겪었던, 그리고 겪게 될 그시기를 나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통과했었다. 하지만 나의 사춘기는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친구들처럼 부모님이나 교사나 학교나 사회에 반항도 하지 않았고, 몰래 술을 마시거나 담배도 피우지는 않았었다. 가끔 문제집을 빌미로 부모님의 돈을 부정 축재하긴 했지만 그건 귀여운 애교로 봐줄 만하다.
그 시절 몇 날은 기타에 기웃거려보기도 했었고, 음악가를 꿈꾸며 방에 틀어박혀 노래를 듣거나, 언젠가는 며칠 이곤 읽어도 줄어들지 않는 고전 소설들을 낑낑대며 읽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귀결점은 결국 여자.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여자 사람에 대한 관심이 급 증가하면서 내가 맞닥뜨린 하나의 문제. 그건 바로 내 마음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좋아했던 여자애가 운이 좋게도 나를 좋아해 주었고, 나에게 네 마음은 어떤데?라고 물었었다. 여자애의 집 앞 놀이터였고, 우리는 나란히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네가 하늘의 앞뒤를 백번쯤 스친 뒤 여자애가 입을 열었던 것이다.
난 엄마를 일주일이나 졸라서 얻어낸 나이키 맥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여자애는 까맣고 정갈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저녁이었고 가로등 불빛이 여자애의 구두 끝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그네가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여자애의 구두에는 별처럼 반짝이는 마음이 걸려있었다.
마음을 확신할 수 없었던 사춘기. 내 안의 마음이 너무 여러 개라서 나는 내 마음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여러 마음이 서로 부딪쳐 출렁거렸다. 요동치던 마음들은 서로 자기가 맞다 주장했었기에 나는 네 마음은 어떤데?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말해버렸다. 바보 머저리 해삼 말미잘 병신.
그냥 따듯하게 손을 잡아줬으면 됐을 것을.
종종 반짝이는 구두를 볼 때마다 난 아직도 그 여자애에게 미안해지곤 한다.
여자와 남자는 친구였다.
여자의 여자인 친구와 남자는 애인 사이었기 때문에 “친구” 가 여자와 남자가 공유할 수 있는 최선의 관계였으며 도달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사실 남자에게 애인과 친구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중요한 건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는 것이다. 남자는 애인과도 데이트를 했지만 여자와도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고, 집에 바래다주고 문제집을 교환해가며 공부를 했다. 그러니 어쩌면 애인보다는 여자가 남자와 더 가까운 사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서로가 그 이상을 욕심내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조금만 건드려도 터지고 마는 폭탄을 꼭 껴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과도 비슷했다. 서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부러 알은 채 하지는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 남자는 우산을 들고 여자를 기다렸다. 여자는 가방에서 일부러 우산을 꺼내지 않았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의 한쪽 어깨가 젖는지도 모른 채 서로의 집을 두 번 왕복했다. 누구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쓸쓸하지 않겠느냐, 라는 이유였지만 실은 헤어지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의 집 앞 주차장에서 남자는 친구의 관계를 끝내기로 한다. 이전의 관계는 거기서 끝이 났고 둘은 연인이 되었다. 여자의 여자인 친구는 결국 친구도 잃고 애인도 잃었다.
사랑에 있어선 때론 가해자가 행복해지기도 한다.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행복해져 버린다. 변해버린 마음을 먼저 선언해버리는 사람. 냉정하고 잔인하지만 그럼에도 솔직함.
사랑에 있어선 상대의 마음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자신의 감정에 잔인하리만치 솔직하게 반응해야만 결국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관계에 있어서 가해자였지만 사랑에 있어선 결국 승자였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 모두 수능에는 실패했다. 인생은 큰 그림에서는 결국 공평한 것 같다.
정동진은 해가 뜨는 곳이다.
사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김없이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해는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꾸준함 때문에 때론 무시당하기도 한다. 삶에서 꾸준함이란 건 참 어려우면서도 대단한 것이지만 정작 그 꾸준함 때문에 뒤로 미뤄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랬다. 정동진은 그냥 내가 그녀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고,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해가 뜨는 동쪽이라서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저녁에 기차를 타면 새벽에 그녀와 나를 우리의 공간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 데려다 놓아주는 곳. 그래서 매력적인 곳일 뿐. 그러니 그곳이 해가 뜨는 곳이건 해가 지는 곳이건 그건 중요치 않았다.
기차표를 예매하고 시간이 남아 청계천을 걸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그곳에선 우린 서로의 손을 잡는 것에만 집중했다. 사랑을 하는 것보다 손을 섞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다. 적어도 정동진에 도착하기 전, 우리에게 모든 게 낯선 곳에 놓이기 전에 서로를 더욱 강하게 결속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해가 뜨기 전 정동진에 도착했다. 우린 수완이 좋은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해가 뜨기 전 두 시간을 머물 수 있는 허름한 민박집에서 몸을 녹였다. 방 안에서도 우린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두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우린 그만 잠이 들어 버렸고, 해가 뜨고 나서 한참 뒤에야 눈을 떴다. 해는 이미 머리 위에 떠올라 버렸지만 우린 잡고 있던 손을 놓지 않았기에 정동진의 허름한 민박집은 우리로 충만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먼 곳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으므로, 서로 비밀스러운 작은 약속을 함께 나눈 것이었다. 머리 위에 떠있는 해가 증인이었다. 우리는 약속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함께 모래사장을 걸었다. 눈앞엔 바다가 있었고, 뒤엔 기찻길이 있었고, 머리 위엔 해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손을 잡았다. 깍지를 껴서.
후로 한 번도 정동진에 가지 않았다. 약속의 장소엔 혼자 갈 수는 없었고, 약속은 이미 깨져버렸으므로.
가지 않음이 아니라 가지 못함이다.
마음의 흐름을 여러 번 생각한다. 멀어져 버린 마음은 그것이 방향을 바꾼 것인지 아니면 변해버린 것인지를.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혹은 당신이 마음을 모른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은 쉽지 않지만 그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그 견고함에 한 번 균열이 생기면 그때부턴 무너짐을 걷잡을 수 없다. 눈치채기도 전에 손쓸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져버린다.
그건 사춘기 때문도 아니고 인생의 시기의 문제도 아니고 장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냥 색이 바래지고 닳아버린 것이다. 덧칠하려 해서도 안 되고 붙잡을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음을 마음속에 쌓아가는 것. 변해버린 마음에 수긍하고 순응하는 것.
때론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때론 그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마음을 조용히 흘려보내는 것이 어쩌면 마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흘러가는 모든 것에 살며시 또 다른 마음을 스미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