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이래저래 많은 만남의 자리들을 갖게 되었다.
그건 부모님의 터울을 벗어나 어찌 되었건 말 그대로 혼자 살게 된 이후의 일이다.
2004년 봄.
나는 고향집을 떠나 홀로 독립을 했다. 드디어 기대하고 고대했던 대학의 낭만이 나에게도 펼쳐지게 된 것이었다. 푸른 잔디밭이 있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예쁜 여학생들이 캠퍼스의 이곳저곳에서 목격되는 아름다운 세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예쁜 꽃길을 나의 그녀와 함께 손을 잡으며 걷는 환상의 세계, 라면 좋았을 테지만 역시나 대학 신입생 시절엔 술이 전부였다. 그것도 대학의 낭만이라면 낭만이었겠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남는 건 없었다. 조금 망가진 몸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그래서 조금은 뻔뻔해질 수 있었던) 나의 창피한 모습을 보여주고 내가 이미 소화시켰던 음식을 다시금 꺼내어 확신해야만 했었던 몇 날들뿐.
2004년은 나에겐 그런 해였다. 기억나지 않은 많은 양의 술과 여자, 그리고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건 역시 불편하군, 이라는 생각들로 가득 찬 해.
아무튼 난 4년의 대학생활을 무사히 마쳤고, 그럭저럭 2년의 국방의 의무도 마무리 지었다.
이젠 정말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을 해야 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건 2011년부터의 일이다.
2011년.
나는 홍대의 언저리인 합정에 자리를 잡았다. 젊음과 낭만의 상징인 이곳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역시 컸지만, 가장 큰 이유는 때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돈(물론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지만)을 가지고 구할 수 있는 방이 마침 합정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게 막 힘들어질 무렵 떡하니 적당한 방이 나왔었고 방 상태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계약을 했다. 더군다나 이곳은 홍대의 언저리이지 않은가. 2004년 기대만큼 무르익지 못했던 젊음의 낭만을 바야흐로 2011년에 드디어 꽃 피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나에겐 있었다.
나는 퇴근을 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쥔 채 혼자서 홍대와 합정, 상수동의 골목들을 돌아다녔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을 발견하면 혼자 들어가 밥을 먹기도 했고, 한강도 산책을 하면서 나의 낭만을 찾아 기웃거렸었다.
이곳 어딘가에는 아직 만나지 못한 나의 낭만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홍대인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곳에서도 난 내가 찾고 있었던 낭만을 발견하진 못했다.
결국 나란 사람의 낭만은 조용한 카페와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나의 말을 늘어놓는 원고를 쓰는 일에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건 2012년의 여름에 일이다.
아마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2012년 가을부터 2014년 봄까지, 당시 나는 두 번째 책의 원고 작업에 매달렸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드디어 찾아낸 나의 낭만엔 새로운 만남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마음이 편한 몇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나에게 내재되어있던 “만남이 욕구”는 충분히 충족되었으니까. 의식적으로 새로운 만남을 피한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많지 않았었다.
어쨌든 1년 6개월 정도의 원고 작업은 잘 끝이 났다.
그런데 원고 작업에서 손을 떼고 나니 나의 낭만이 모조리 사라진듯하여 한동안은 당황스러웠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했고, 몇 년째 살고 있는 나의 동네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특히 책이 출판된 여름 이후에는 별다른 일이 없다면 계속 집에만 머물렀다. 말 그대로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밖엘 나가지 않았다.
합정동의 집돌이가 된 것이다. 퇴근 후, 집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두 마리의 고양이들과 놀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가로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다가오니 갑자기 약속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더우니 나중에 만나자고 만남을 미뤄두었던 친구들도 숙제를 해치우듯 한 명 한 명 만나야 했었고, 아무래도 가을이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결혼식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만남들은 대부분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여름 내내 거의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이렇다 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냈던 나에게 가을의 많은 만남들을 자꾸만 나를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의 세계에 홀려 갇혀 벽을 쌓고, 그 뒤에 고개를 숙인 채 숨어버렸다.
이 모든 만남이 내가 벽 뒤에서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다 지나가길 바라면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일종의 스타일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통해 스스로를 확인해가고 확신해가는 사람과, 타인과 만날수록 스스로 불안해하는 사람. 나는 어쩌면 후자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그러니까 타인과 대화를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가기보다는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그 사고 과정을 통해 관계를 구축해나간다. 이 일은 혼자이면 충분한 경우가 많으니 결국 나에게 만남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
다시 생각해보면 2011년 합정에 자리를 잡으면서 내가 기대했던 낭만은 한 번도 나에게 찾아오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잠깐 찾아온 듯도 했지만 결국 다시 스쳐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난 그 언저리에서 일종의 삶의 결(스스로를 거스르지 않는)을 찾아냈고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해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것과 모양은 다르지만 어쨌든 나도 낭만 비슷한 걸 찾아낸 것이다.
나는 여전히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카페에서 원고 작업을 즐겨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종종 불편한 사람들과의 만남들도 이어가고 있다. 그것들이 내 선택이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젠 그 문제에 관해선 나는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다. 이런 만남들을 늘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지 않겠느냐,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결국 이런 인생이 2004년 부모님을 떠난 후, 홀로 된 내가 짊어져야 할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술에 취한 캠퍼스의 낭만이 숙명이 아닌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낭만 비슷한 것과 여전히 불편한 여러 만남들은 서로 반대의 것이지만 결론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건 일종의 느낌이고, 이 느낌에 대해선 나는 꽤 확신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만남들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간 나의 인생에 커다란 의미를 건네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조심스레 가져본다.
그러니 불편한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이다.
조금은 싱겁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첫마디는 무엇인가요? 저는 주로 날씨가 좋네요, 라는 말을 합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해가 뜨면 해가 뜬 대로, 그런대로 날씨는 항상 좋으니까요.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