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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Mar 31. 2018

시계 안의 숫자들

조금은 느슨한 삶

대략 10년 동안(그러니까 아마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자세히 신경을 써오진 않았지만, 나는 왼쪽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다. 

여담이지만 왜 왼쪽 손목에 시계를 차게 되었을까 친구들과 진지하게 토론을 해본 적이 있다, 는 거짓말이고 지난번에 한 친구 녀석이 갑자기 시계를 오른 손목에 차보더니 "이것도 꽤 괜찮지 않아?"라고 말을 하길래 속으로 '음, 오른쪽에 시계를 차는 것도 나쁘진 않군.'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시계를 차는 손이 오른쪽이건 왼쪽이건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긴 하다. 

물론 나는 예전에 원고를 볼펜을 손에 쥔 채 원고지에 쓴 적이 있었기 때문에(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다) 시계를 오른손에 차지는 않았지만(나는 오른손잡이다), 요즘처럼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양손으로 공평하게 자판을 두드리는 상황이라면 어느 손에 시계를 차던지 별다른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왼손이 더 바빠 보이는 듯도 싶다. 쉬지 않고 shift키와 space키를 눌러줘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 왼손에 거추장스러운 시계까지 채워둔다는 건 어찌 보면 왼손에겐 너무 가혹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엄밀히 말하자면 난 시계를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다. 촉박하게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하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약속 시간을 잡을 때도 몇 시쯤 만나자,라고 뭉뚱그려 말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시계가 알려주는 "정확한" 시간이 필요한 삶을 살지는 않고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삶의 방식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쉽게 말해서 빡빡한 삶은 도무지 나와는 맞지가 않는 것이다. 이건 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그럼 도대체 왜 시계를 차는 거야? 그럴 거라면 나에게 시계를 달라고." 라며 누군가 날 쏘아붙인다면 할 말은 없다. 진짜 누군가 내 시계를 달라고 한다면 당장 손목의 시계를 풀러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아끼는 몇몇 시계는 빼고 말이다. 

어쩌면 시계를 차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습관이다. 굳이 필요하진 않지만 없으면 약간 허전한. 왠지 우리 집 고양이들 같기도 하다. 물론 내가 고양이들에게 말이다. 음, 슬프군요. 


 

어찌 되었건,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 

나는 여전히 시계를 왼 손목에서 떼어놓지 못하고 있고, 자꾸만 시간에 얽매여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가령 예전엔 "세시쯤 보자고"라는 말이 어느새 "세시 십삼 분에 봐."라고 정확한 약속을 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1분이라도 지나면 바로 독촉 문자와 전화가 쏟아지는. 물론 약속 시간을 정확히 정하면 일종의 시간 낭비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약속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잘 지켜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뭐랄까, 여유가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사실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물론 불편함이라든가 불안감이야 있겠지만 조금은 여유로워 지진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정확한 시간이 중요한 일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러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도 충분히, 미리, 알아서, 꼼꼼하게 잘 해낸다. 중요한 면접이라든지, 비행기 시간 같은 것들을 시계를 차지 않았다고 해서 놓치는 경우는 없을 테니 말이다. 안 그런가요? 


 

또 시계 안의 숫자들처럼 "정확" 하게만 살아간다면 생각의 틈이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걱정도 된다. 쉼 없이 앞으로만 흘러가는 바쁜 세상에서도 시간의 틈은 분명 우리에게 생각의 틈을 준다. 가령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그 사람을 생각한다든지, 정해진 시간의 제약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책을 읽는다든지, 아니면 흘러가는 시간과 더불어 산책을 한다든지. 일종의 낭만이라면 낭만일 수 있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이 삶에 쌓여간다면 적어도 조금은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종종 의지를 들여 만들어낸 시간의 틈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비난과 질책을 들어야만 했지만 낭만 몇 개를 쌓아가는 듯도 해서 썩 나쁘지만은 않다. 



언젠가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우리에겐 일종의 유대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서로 비슷한 녀석이라는 걸 서로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물론 항상 자기가 더 잘났다고 우겼지만 말이다). 

“너 퇴근할 때쯤 합정 카페골목에서 만나자.”라고 나는 친구에게 문자를 남겼고, 친구는 알았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정확”하지 않은 허술하게 짝이 없는 약속이다. 도대체 친구가 퇴근할 때쯤은 언제이며, 그 긴(200미터 남짓 하는) 합정의 카페골목 어디에서 만나자는 건지.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암묵적으로 충분히 약속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약속엔 당연히 시간의 틈에 공간의 틈까지 더해졌지만 우리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퇴근할 때쯤(나는 항상 친구보다 퇴근시간이 빨랐다) 집에서 나와 합정 카페골목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고, 20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20분 정도의 시간의 틈 속에서 난 좋은 커피 향을 맡았고, 다섯 명 정도의 예쁜 여성분들을 곁눈질로 살필 수 있었다. 또 무얼 먹을지 메뉴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결국‘만날 사람은 언젠가 어디에선가 반드시 만나게 되고, 굳이 내가 애쓰지 않아도 세상은 적당히 잘 흘러간다.’라는 나만의 결론도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건 사람이건 내 주위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이젠 정말 사라져 버렸구나, 하고 포기하는 순간“놀랬지? 사실 줄곧 옆에 있었어.”라고 말하며 불현듯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애초에 내가 왼손에 차고 있는 시계의 숫자들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해도 잡히거나 나에게 묶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설사 시계를 오른손으로 옮겨 찬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한 번쯤 시계를 풀어보고 시간의 틈을 어슬렁거려보시길. 사실 시계 따위 별거 아니잖아요. 물론 항상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오늘도 수고하시는 시계회사 관계자 분들에겐 조금은 죄송스럽지만. 


 

*하루가 꼭 24시간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져보신 적 없으신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하루가 33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요. 삼삼한 하루. 멋있잖아요.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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