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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Sep 15. 2018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여행의 이유

사람, 아니면 사랑

스쳐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풍경도. 사람도. 그리고 그것들이 나에게 엮어내려 간 감정 까지도.

익숙한 곳으로부터 멀어져 그만큼을 외롭다가 다시 돌아가길 반복하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사람. 그래서 그것으로부터의 위안을 여전히 놓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

나는 애초에 어느 곳에도 머물 수 없다는 생각.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 머물 수 없을 바엔, 손을 잡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을 바엔, 차라리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것이 맞다는 결론. 떠나온 곳에서 결국 내 몸도 마음도 그것에 동의해 버렸다.

아프다거나 아쉽다는 감정은 없었다. 마음이 굳어져버렸으니 감흥이 사라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몇 번인가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서로에게 엮인 무엇도 남기지 않고 돌아섰으니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짊어져야 할 책임이 없었으니까. 책임을 남기지 않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공허했지만 그래도 가벼웠다.

지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가늠해 본다. 마음속 깊이 담겨 있어 그것만으로도 며칠 동안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것이 먼 곳에서 홀로 있는 나에게도 있는지를. 누군가는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여행이라는 상황에 놓여있는 지금 나는 정작 나를 붙잡아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결국 손에 쥐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올려진 사탕 봉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으므로 욕심내는 것은 말 그래도 욕심이 돼버린다.

어느 곳이라도 괜찮은 사람, 누구라도 상관없는 사람은 여행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게 바로 나였고, 그런 내가 억지로 여행을 이어오고 있으니 항상 떠나와서도 아픈 것이다.

내 옆의 당신을 아프게 하고 떠나 왔고, 당신에게 떠넘긴 아픔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먼 곳의 나에게 되돌아왔다.

돌이켜보면 분명 머물렀던 곳보다 스치듯 지나친 곳이 많았다. 그건 시간과 장소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음의 문제였다. 나는 마음을 남겨두고 돌아서는 것이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무엇에든 지나치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사람에게 무심 해진다. 무심 해진다는 건 커닿라고 두꺼운 벽에 스스로를 가둔 채 벽 밖의 세상엔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책임지지 않겠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기적이다.

그래, 차라리 이기적이 되겠다.

내가 얼마만큼의 사람인지 여행은 알려줬다.

얼마만큼을 건네야 응답이 없는 마음에 무덤덤해질 수 있는지를. 또 얼마만큼만을 받아야 거절에 용감해질 수 있는지를. 낯선 곳에서 홀로 견뎌낸 시간이 처절했던 만큼 마음을 가늠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길 위에서의 만남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지만 그것의 끝은 종종 원치 않는 부산물을 남긴다. 감정의 찌꺼기다. 그것은 형체를 잃어버리고 잘게 부서져 내 마음에 가라앉는다. 그리고 깊숙이 숨어 있다 불쑥 튀어나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떠나온 곳에서도 도착한 곳에서도.

관계가 아프면 맺지 않으면 될 터인데 그것에 내 의지가 반영될 구석이 없었기에 매번 속아 넘어간다.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만 여전히 마주하고 바라볼 용기는 없다. 그러므로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바라봤던 곳에서 시선을 거두고, 일렁이는 마음을 누른다. 누군가 불러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기에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익명성. 주변인.

그것들이 만들어낸 단단한 갑옷에 나를 감추고 쉬지 않고 걸었다. 만남도 없었다. 감정의 일렁임도 금세 잦아들었다. 그제야 조금이나마 크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네 여행은 그 시작부터 잘못된 거야. 풍경이든 사람이든, 하다못해 유적지의 돌멩이 하나라도 만나는 것이 여행인데. 아무것도 만나지 않겠다고 떠나는 게 무슨 여행이야?”

대답이 없자 H는 다시 말했다.

“이제 그만해. 충분히 했어 너는.”

충분히 했다고? 어느 하나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지나치기만 했는데 이게 충분하다고?

난 무언가로 나를 꽁꽁 싸맨 채 마음을 숨기는 비겁한 여행을 했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충분할 수 있을까.

비겁함이 그럴듯하게 포장이 되어 아름다운 빛을 띠는 것은 위험하다. 잘못된 선택이 응원을 받게 되고, 그것이 옳다고 스스로 믿어버린다. 노력을 놓게 만든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위험한 적색을 띤 채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에게 되돌아온다. 그때는 돌아갈 곳 조차 사라져 버리고, 미안함을 건네는 것조차 위선이 되어 버리고 만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나는 홀로 남아 그것들의 날카로운 원망을 받아내야만 했다. 나를 향했던 그 수많은 각진 마음들을 마주 하기 싫어 떠나는 것이라고는 차마 당신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

호까곶에 도착했다.

유럽의 최 서단.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이곳에서부터 바다가 시작된다는 곳.

그 어느 땐가 세상을 살던 사람들은 정말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곳. 그래서 그 누구도 더 이상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었던 곳이다.

그곳에 서서 고개를 들고 바다를 바라본다. 시야에서 바다가 넓어지고 멀어질수록 바다는 조금씩 색깔을 바꾼다. 파란색에서 군청색, 보라색. 그리고 까만색으로. 눈에서 멀어질수록 색은 진해진다. 그렇게 바다는 점점 더 온전하게 진짜가 되어간다.

진짜 앞의 가짜인 나는 까만 바다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욕심이었을지도.

어느 곳이든 지금으로부터 계속해서 멀어진다면 결국 도착할 것이라는 욕심.

여행이라는 것에도 분명 끝이 있기에 나 같은 사람도 결국엔 어딘가에 도착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욕심.

그 욕심 때문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까지 걸었던 적이 많았다. 바다. 산. 절벽. 종점. 결국 열리지 않았던 마음의 앞까지도.

더 이상 갈 수 없고, 더 이상 욕심낼 수 없는 이곳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구겨서 눌러두었던 마음을 조금씩 꺼내본다. 꺼내어진 마음은 누구에게도 들춰진 않았고 비로소 나는 안심이 되었다. 이곳은 세상의 끝이었으니까. 내 비겁한 마음쯤이야 저 먼 바다에 실려 파도에 부서질 테지.


언젠가 나는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적어두었던 메모를 들춰봤다.


“가장 나쁜 여행은 혼자 있는 것과 배고픈 것이다.”

숙소에 돌아와 씻지도 않은 채 이불을 뒤집어썼다.

혼자 조용히 속삭여 본다.

사람 아니면 사랑. 이제는 그런 여행을 해보겠다고. 해보고 싶다고.

마음을 나누고, 그것의 조금일지라도 남겨두고 머물러 보는 여행을.


혼자 있었고, 배가 고팠던 오늘은 당신의 먼 곳에서의 내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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