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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Nov 03. 2018

방향이 달랐던 사랑 이야기

마음은 미안하지 않는 것

얼마간 가만히 먼 곳을 응시하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그 사람도 그랬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내가 지금껏 내 옆의 사람들에게 숱하게 가졌던 마음을 그 사람은 나에게 품고 있었구나, 어느 날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품는 감정은 결국 다 비슷하지 않겠느냔 말을 덧붙였다. 사랑 앞에서 마음은 결국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말도.



그녀는 여러 번 사랑에 실패했다고 했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던 눈이 시리게 파랗던 그녀의 20대, 그녀를 둘러싼 만남과 이별은 그 사이가 너무나 좁았다. 세상의 모든 것에 시작이 있으면 분명 끝이 있겠지만 그녀에게 사랑의 시작과 끝, 그 간격이 너무나도 짧아 그 어느 것에도 그녀는 제대로 마음을 다해 대하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이기적이었겠지만 그 모든 만남의 시작도 그녀의 마음이었고, 이별의 순간을 결정한 것도 그녀의 마음이었다. 자신의 마음이었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고, 그러므로 문제도 없었겠지만 그녀 옆의 누군가들은 그녀가 일방적으로 결장한 사랑의 모든 과정에서 상처를 떠안아야 했다는 것.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

그녀는 사랑의 가해자였고 여러 명의 피해자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서른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을 만났어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향하는 내 마음에 변덕이 없었던 사람이었죠. 좋았어요. 그 사람과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감사하기까지 했었으니깐 분명 사랑이었겠죠."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은 어디에 있어요?라는 질문이 목까지 차올랐다가 그만두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건넸던 모진 마음들을 그대로 그에게 돌려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분명 언젠간 자신의 것이었으므로 그를 원망할 수도 없었겠지.



내가 그녀를 만나게 된 건 시드니 도시 투어에서였다. 

전날 저녁 맥주를 함께 마시며 귀찮다는 나를 설득해서는 함께 투어를 신청했던 이탈리아 여행자는 투어 날 아침에 지독한 감기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환불이 되지 않는 투어였기에 나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을 추슬러 투어버스에 혼자 올라탔다. 여러 숙소의 여행자를 모아 진행되는 투어였기에 이미 버스엔 다른 여행자들이 있었고, 그곳에 그녀도 있었다. 

한국인은 우리 둘 뿐이었기에 우리는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투어가 끝날 때쯤 그녀가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다. 숙소의 이탈리아 친구가 조금은 걱정되긴 했지만 거절하진 못했다. 그녀의 눈빛엔 뭔가 간절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 곁들인 와인에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그녀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늘어놓은 것이다. 어쩌면 진짜 투어는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사랑이든 이별이든 마음이 시킨 일이다. 그녀의 사랑처럼 언젠가 내 사랑도 그랬었다. 마음으로 시작해놓고는 마음 때문에 돌아섰었다. 저절로 생겨버린 마음에 잘잘못을 따지는 건 잔인한 일이다. 그녀도, 그 언젠가의 나도 마음이 시킨 대로 행동했던 것이고, 그것이 시시각각 변덕스럽게 변하는 사랑 앞에서 우리가 잘 사는 방법이었다. 

마음이 일으킨 파동에 응답하고 그 방향으로 걸어가는 그 순간이 그녀에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겠지. 마음의 방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했고, 마음이 방향을 바꾸는 순간 이별을 했다. 간격의 문제라기보다는 차라리 방향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네 사랑이 조금은 힘들었던 이유는 사랑을 사랑으로 놓아두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자꾸만 기대를 덧붙이고 변명을 만들고 상황을 멋대로 해석한다. 그것들이 사랑 자체를 자꾸만 뿌옇게 가리지만 정작 그때는 그걸 알지 못한다는 것. 사랑의 비극이고 때문에 숱한 후회의 꼬리들을 만들어낸다. 



파랗게 시작했던 마음이 왜 회색으로 끝이 나버렸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묻는다면, 시작이 그랬었던 것처럼 끝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우리는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시간이 그렇게 만들었단 말 보단 차라리 공기를 탓하겠다. 

시작의 순간, 간절했던 그 마음이 어느덧 차가워진 당신과 나 사이의 공기 때문에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라고.

숨을 쉬지 않고 사는 게 가능하냐 말이다. 들이마셨다면 내뱉어야 했었고, 가졌다면 놓아야 하는 것이다. 놓지 않은 채 속으로 쌓아가겠다는 건 마음은 욕심이다. 


이별이라는 게 그런 거더라. 상황이 미안하더라도, 돌아선 마음이 미안하지는 않은 것. 

처음처럼 마지막도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조금은 힘들겠지만 그 마음들을 끌어안고 얼마 동안을 앓고는 감정의 땀을 쭉 빼고 나면 그러면 괜찮아질 것이다. 누군가에게 비겁하다 할지라도 마음은 언제나 나만의 것이므로.



그녀는 테이블 위에 흩어진 마음들을 추슬렀다. 

조금은 비틀거리며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고, 난 따듯한 커피를 사서 돌아가 이탈리아 친구에게 건네줬다. 

그 날 시드니의 밤하늘엔 세상의 사랑의 개수만큼 많은 마음들이 반짝이는 별들에 걸려 사랑을 찾아 자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내일이면 어딘가에서 마음의 짝을 찾을 수 있겠지.


방향이 달랐던 사랑이었을지라도, 마음이었으므로 괜찮은 날들이 며칠은 이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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