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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Oct 20. 2018

떠나보내고 남아야 했던 마음

왜 이토록

낯선 길 위에서 내 것과 닮은 감정을 만났습니다.

내 마음에 잠겨있는 그것과 닮았다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 멈춰버렸던 그 순간, 가지고 있는 마음 외엔 모든 게 차가웠던 그 날, 난 긴 겨울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부딪히는 몇 개의 마음들에 눈을 감고 지나치려 했으나 그게 어려웠던 겁니다. 어쩌면 날 멈춰 세운 그 감정은 사람으로부터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없는 이곳에서 홀로 남은 나에게 작고 따듯한 무언가 스쳤던 겁니다. 가령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이라던가, 북극곰을 돕자는 피켓을 들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라던가, 따듯한 커피 한 잔을 사이로 마주 앉은 연인이라던가요. 모양은 달랐지만 따듯했던 그것들 말입니다.



함께였습니다.

우린.

함께 멀리서 힘겹게 언덕을 오르던 노란 트램을 보고 아이처럼 기뻐했습니다. 커다란 짐을 들고 5층이나 되는 계단을 올랐고, 그곳에서 만난 우리의 공간에서 아늑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난 이른 아침 도둑처럼 몰래 일어나 빵집엘 다녀왔었지요. 하루 한 곳을 정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와인도 비웠습니다. 하루에 하나만을 한다는 것이 여행지에선 낭비였을 수도 있었지만 당신과 함께한 하나만으로 내 하루는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먼저 돌아가버렸단 이유로 따듯했던 이곳에서 난 왜 이토록 한참이나 바닥일까요.

왜 제대로 된 무엇 하나를 하지 못할까요. 왜 자꾸만 허기지고 방향을 놓친 채 자꾸 걷기만 할까요.

그래서 당황스럽기도 했고, 그 모든 것들 앞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결국 그것들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야 했고, 당신 없이는 어느 곳으로도 가지 못하는 상황까지요.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라 사람이 잠시 비켜선 것뿐인데. 방향이 틀어진 것이 아니라 서있는 장소가 다만 조금 멀어진 것뿐인데 말입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닐 겁니다.

떠나보내고 남아야 했던 마음,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마음. 그것들에 감히 어떻게 이유를 따질 수 있을까요. 진심이었던 그것들에 어떻게 각진 마음을 들이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모진 말을 뱉어낼까요.

함께였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던 마음과 혼자일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의 깊이가 어떻게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요. 바람을 막어주려 당신 앞에 섰던 걸음과, 바람을 피하려 등 뒤에 숨어 걷는 당신의 걸음의 폭이 어찌 다를 수 있을까요.

다르지 않았던 두 마음. 그럼에도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이 당신과 가장 먼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므로 이건 온전히 나만의 몫입니다.



어떡하겠습니다. 지금 난 여기에 멈춰서 버렸습니다.

멈춰있는 나를 위로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괜찮냐 물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이긴 상태인데 그것의 모양이나 색깔을 설명할 수도 없고, 무게를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는데 일어나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입니다.



결국 마음이 젖은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혼자 남은 마음이 푹 젖어 버려서 짜내고 짜내어도 여전히 눅눅하고 무거운 것이라고. 힘주어 빨아 햇볕에 말려도 당신의 얼룩이 남고 향이 배어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결국 젖은 마음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내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돼버린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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