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요일의 Y

사랑의 구조

체 게바라

by 최전호

나와 Y는 여러 여행자의 무리의 섞어 함께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운이 좋게도(라기보다는 의도를 가진 나의 접근이었겠지만) 나는 Y와 잠깐이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덥고 복잡하고 깨끗하다고는 말하기 힘든 하바나의 좁은 골목길이었지만 일종의 신비로운 공기가 분위기를 데우고 있었다. 그건 분명 Y가 내뿜는 묘한 힘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궁금증도 해결하고 친밀감을 쌓기 위해 나는 상투적인 질문들을 던졌었고, Y도 나의 상투적인 질문에 상투적으로 대답해주었다. Y와는 처음으로 단 둘이 나누는 대화였으므로 난 그녀의 상투적인 대답 조차에도 상당히 행복에 겨워했었다.(한참 시간이 지난 후 Y는 그때 우리의 첫 대화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역시 두 사람의 사랑은 항상 두 개의 기억을 남긴다.)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아직 사랑에 빠지지 않은 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바로 둘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 것.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Y와 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만 있다면 굳건히 닫혀있던 사랑의 견고한 대문이 열릴 것만 같았다.

물론 다가가려는 사람은 나였으므로 난 기본적으로 저자세를 취했다.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Y에게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지고는 그녀의 대답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Y의 대답 안에서 치밀하고 조심스럽게 나와 초라하게라도 엮여있을지 모르는 공통점을 찾아내려 했다. 수사관처럼 최대한 보폭을 낮추고 이질감을 숨기고 인내심 있게.



사랑이 시작되기 전, 이런 대화의 패턴은 다분히 한 사람에게는 폭력적이겠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짧은 순간의 대화에도 권력의 상하관계가 형성되고 권력을 쥐지 못한 쪽은(물론 나였지만) 쩔쩔맬 뿐이었고, 권력의 정점에 서있던 Y는 이런 권력의 구조 자체에 대한 자각이 없었으므로 그저 천진 난만할 뿐이었다.(그러니까 첫 만남에서 Y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에겐 폭력적이었다.)


권력의 구조가 만들어낸 불합리함에 대항하여 자유와 민중이라는 시대의식을 어깨에 두르고 처절하게 저항했던 체 게바라의 나라(물론 그는 아르헨티나 출생이지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다분히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런 불합리한 권력의 구조에서 발을 뺄 것이냐 묻는다면 결코 아니다,였다.

사랑의 가장 신비로운 비밀이자 기적은 바로 어떤 한 사람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조차 어떠한 계기를 통해 감정의 크기와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조용히 그 기적의 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그저 Y의 입에서 빠져나오는 낱말의 알갱이들을 수집할 뿐이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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