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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Jul 16. 2019

울림이 있는 예술가는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스윙

내리쬐는 햇빛. 그리고 그것과 함께 흘러내리는 땀방울.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9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왔다. 하지만 빠이까지는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3시간은 더 가야 한다. 버스 안에 앉아 출발시간을 기다린다. 에어컨이 나오지만 역시 땀도 난다. 차라리 창문을 연다.


버스는 항상 그렇듯 내 마음이 급할수록 제시간에 떠나지 않았다. 옆자리 여행자에게 잠시 자리를 맡아달라 부탁하고는 정류장 맞은편에 있는 주스 가게에 들어가 시원한 주스를 주문했다. 부탁한 게 미안해 옆자리 여행자 것 까지. 그런데 주문을 하자마자 약이라도 올리듯 버스 기사가 차에 오르고 이내 시동이 걸린다. 당장이라도 출발하겠다는 듯 경적을 빵빵 울린다. 얄밉게. 옆자리 여행자는 창문 넘어 나에게 서두르라 손짓한다. 나는 믹서기에 돌아가고 있는 주스를 바라보며 마음이 미안해져 그냥 주스값만 치르고는 버스에 오른다.

그렇게 두 잔의 주스값을 허공에 날리고 나서야 나는 빠이에 도착했다. 

그래도 빠이에 도착했으니 되었다. 



여행지에 머무는 동안 너무나 좋아 다시 와야지 생각했지만 다시 오게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빠이는 그 약속을 지키게 된 몇 되지 않는 곳이었다. 정확히 6년 만에 나는 다시 빠이에 왔다. 좋았던 기억 몇 가닥을 붙잡아 버텨냈던 날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 빠이에 도착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빠이에 머무는 내내 좋았던 것은 바로 저녁만 되면 마을의 여러 곳에서 꽤 괜찮은 공연들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빠이는 정말로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머물고 있는 마을이었다. 물론 그들의 대부분은 나와 같은 여행자들이고, 또 그들의 대부분은 나와는 다르게 여행자이면서도 도무지 여행자 같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은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어제 옆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아는 것 같았고, 골목 모퉁이의 하얀 이층 집의 둘째 딸이 누구와 언제 결혼했는지도 아는 듯했다. 그만큼 그들의 행동과 표정과 몸짓에는 빠이의 유전자가 있었다. 자연스럽고 담대했으며 편안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이 하나 있다면 그들은 저녁에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환한 낮에는 아마 어딘가 구석진 곳에 숨어서 밤에 있을 공연에 쏟아부을 에너지를 한껏 모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많은 예술가 덕분에 빠이에서 나의 저녁은 지루하지가 않았다. 해가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나는 적당한 곳에서 저녁을 해결한 뒤 시원한 음료와 노점에서 파는 꼬치구이들을 입에 물고는 길 위의 여러 펍을 기웃거린다. 마치 공연 쇼핑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들리는 음악은 딱 내 취향이군. 좋았어, 오늘은 저 펍으로 정하겠어.’ 대충 이런 식이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 내가 가는 펍은 두세 곳으로 정해진다. 가게의 곳곳에 해먹이 걸려있어서 정말이지 편한 자세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Edible Jazz(먹을 수 있는 재즈라니. 해석하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하군요)"와 마을의 중심가에선 좀 떨어져 있는 "Bebob"이라는 곳이다. 

Edible Jazz는 저녁 12시가 되면 문을 닫기 때문에 그때까지 나에게 흥이 남아있으면 나는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Bebob으로 향하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Edible Jazz에서 나의 흥은 끝이 났다. 나는 자야 될 시간을 넘겨서 까지는 잘 놀지 않는다. 그럴 체력도 없고 말이다.



어느 날인가 꽤나 흥에 겨웠던 저녁, 나는 Bebob에 갔다. 내가 들어갔을 땐 막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무대를 살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 시선을 끌던 드러머가 있었다. 나이는 딱 보기에도 70살은 넘어 보이시던 민머리의 할아버지께서 드럼스틱처럼 가는 팔로 드럼을 치고 계셨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팔과 어깨, 민소매에서 드러난 얄팍한 가슴에는 세월의 흔적과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법한 여러 문신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드럼의 울림에 자신의 몸까지 함께 울렸던 퍽 야윈 할아버지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정말이지 혼신의 힘을 다해 드럼을 연주하셨다. 

자신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이 스윙과 함께 너희가 다 가져가 버려’라는 말을 내뱉는듯한 느낌으로 한 번의 스윙에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지셨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그런 열정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연주는 썩 듣기 좋은 연주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날 연주는 즉흥 연주였던 것 같았다. 보컬과 기타와 드럼이 약간은 따로 노는 듯 한 느낌이 연주 내내 약간은 귀에 거슬렸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흥에 겨워 들어줄 수 있을 정도의 연주. 하지만 난 드럼을 연주하는 할아버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정말이지 자신의 모든 것을 연주에 쏟아부으시면서(연주의 훌륭함을 떠나서 말이다) 연주를 듣고 있는 관객들에게 어떤 장엄하고 숭고한 부담감 같은 것을 건네셨고, 그렇게 그 부담감은 나로 하여금 연주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아마 예술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품이나 연주의 훌륭함과 관객의 마음속에 뭔가 진한 울림을 주는 것은 별개인 것. 그래서 그날 흥에 겨워 찾았던 그곳에서 난 할아버지의 드럼 연주를 듣고 ‘오늘 이곳에 오길 참 잘했구나.’라고 연주를 듣는 내내 생각했다. 



나는 빈 틈 없이 훌륭한 연주보다는 뭔가 부족한듯하지만 그래도 뜨거운 연주가 좋다. 그런 뜨거움이 나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것이다. 뭐 이것은 나만의 취향 인지도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연주를 하는 동안 자신의 건강 따위는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연주를 끝내고 한참 동안을 헉헉거리시면서 맥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마시질 못하셨으니까.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할아버지가 좀 더 젊었을 때, 그러니까 건강이나 내일에 대한 걱정 따위는 저 멀리로 날려버릴 수 있었던 그 시절의 할아버지의 연주를 들었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하며 약간은 아쉬웠다.



자신이 가진 무언가로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 사람들을 난 전부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빠이에선 예술가를 만나는 게 참 쉬운 일이었다. 덕분에 지내는 내내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조금은 걱정되었던 것이 사실이니, 울림을 주는 예술가는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빠이에서는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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