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죽음이라는 건 참 놀라운 경험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건네는 느낌은 묵직하다 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경중을 따진다면 그 경험의 여운은 가볍다 보다는 무겁다 쪽에 훨씬 근접해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일지 모르겠지만 세상엔 의외로 가벼운 “끝”이 많다. 끝을 경험하고 난 뒤 허탈한 한 숨을 내쉬며 “뭐야. 이게 다야? 이건 너무 시시하잖아. 이게 다가 아니라고 말해줘. 뒤에 뭔가 더 숨기고 있지? 맞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경험들이 있을 테니까.
예를 들어 자위행위를 하고 난 뒤에 허무함이나 선물 상자 안의 너무나 뻔한 선물을 발견했을 때라던지 아니면 나를 등진 상대의 방향이 전혀 아프지 않을 때라 던 지.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나에게 죽음의 경험은 자위행위의 허무함이나 선물상자의 시시함이나 전혀 아쉽지 않은 누간가의 뒷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여기서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 아니라 나와 관계 맺었던 누군가의 죽음이 말이다.
자신의 죽음이라는 건 자신만의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도 경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험하는 그 순간과 삶의 끝이 동시에 다가올 테니. 그러니까 스스로의 죽음은 그것이 가볍던 무겁던 누구에게도 경험될 수 없는 것이다. 주변인에게 그 경험을 건넬 뿐. 가람이게 나에게 했던 것처럼.
가람이가 죽었다.
자살이었다.
“이젠 그만 하자고. 지겹잖아. 안 그래?”라는 짧은 유서인지 독백인지를 노트 위에 갈겨 적어놓고는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우리 학교는 4층 건물이었으니 가람이가 뛰어내린 옥상은 5층 높이었다. 5층이라는 높이는 사실 뛰어내릴 때 죽을지 살지 반반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도였는지 아니면 우연이었는지 가람이는 머리부터 떨어졌고 그래서 즉사했다. 선생님들은 소리를 지르면서도 이미 죽어버린 가람이 옆으로 모여드는 학생들을 통제할 정신도, 병원에 연락할 정신도 없이 내 옆에 나란히 서서는 가람이의 죽음을 나와 함께 바라만 봤었다.
난 순간 현실감각을 잃었다. 지금 내 눈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가람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가람이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말을 걸 것만 같았다.
“놀랐지? 이런 장난 한 번쯤 해보고 싶었거든. 와, 사람들이 정말 많이 몰려들었네. 이거 기분이 묘한걸?” 하고 말이다. 하지만 가람이의 죽음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가람이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영원히.
가람이는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전 마지막 순간 시디플레이어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옥상의 난간 위에 위태롭게 올라서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자신이 뛰어 내를 하얀 시멘트 바닥을 바라보면서. 내가 가람이의 생일날 선물해준 라디오헤드의 음반이었다. 마지막으로 듣던 노래는 creep. 가람이가 옥상에서 뛰어내린 뒤에도 creep은 시디플레이어에서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가람이는 creep의 어떤 구절이 귀에 흘러들어 왔을 때 뛰어내렸을까? 그게 불현듯 궁금하기도 했다. 후로 나는 creep을 수 없이 들었지만 여전히 어느 부분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라면 이 구절이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몇 번인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게 어떤 부분이었건 가람이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었다.
사실 난 라디오헤드의 노랜 creep 말고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아니면 아예 라디오 헤드라는 밴드를 알지 못하던가. 많은 사람들은 라디오헤드와 creep을 동일시한다. 라디오헤드로선 참 억울한 일일 것이다.
내가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처음 듣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동네 양아치 형에게 구석진 골목으로 끌려가 몇 대를 맞고 돈을 빼앗겼다. 그 형은 뺏은 나의 돈으로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더니 라디오헤드의 음반을 샀다. 그리고 한 달 뒤쯤 길 위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그 음반을 던져주며 말했다. “그 음반은 creep 빼곤 쓰레기야. “creep이라...” 형의 말을 한 번 되뇌고는 나는 creep을 수백 번 들었다. 그때의 그 형은 밴드를 만들어서 아직까지 작은 라이브클럽을 전전하며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시대를 주름잡았던 밴드들은 그들의 노래로 세상에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비틀스의 Let it be나 벤포드의 Still fighting it, 라디오 헤드의 Creep을 그 가사의 의미를 생각하며 흥얼거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그들이 세상에 뱉어낸 그 음악들은 실패한 음악인 걸까? 아무것도 모른 채 그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경멸스럽다. 그리고 힘들게 세상에 음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던 그들이 애잔하기도 하다.
다시 내 이야기를 하자. 자전적인 이야기밖에 써 내려가지 못하는 스스로가 애처롭긴 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이야기만 자꾸 우려먹는 것. 거기에 약간의 양념을 뿌려가면서. 소재가 자신이니 어려울 것은 없다. 다만 문제라면 문제일 것은 자꾸만 스스로를 포장하려 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원래의 자신보다 더 위대해 보이고 싶은 욕망. 그래서 거짓말쯤은 서슴없이 지껄여대는.
중학생 1학년 때 학교 교지에 소설을 쓴 적이 있었다. 도무지 말을 하지 않았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언가 무작정 써내려 나가는 것뿐이었고,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교지에 글을 써 보라고 하셨다. 너처럼 말이 없는 녀석은 차마 쏟아내지 못하고 맘 속에 담아둔 이야기는 많지 않으냐, 넌지시 물으셨던 것이다.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틀 만에 글을 써냈다. 그건 난생처음 겪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친구들과 학교 선생님 등을 등장하는 짤막한 소설이었다. 반응이 상당했었다. 내가 절대자가 된 듯했다. 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그때를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첫 창작이자 마지막 창작이었기 때문이다. 후론 그 어떤 새것도 써 내려가지 못했으니까.
나는 여전히 세상에 침묵하며 누군가의 것을 답습하듯 살아왔다. 창작이라는 건 한편에 제쳐둔 채.
나는 막막했다. 도무지 아무것도 ‘새 것’ 이 떠오르지가 않는 것이었다. 머릿속엔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지만 단 한 글자도 풀어내질 못했다. 단 한 글자도. 고통스러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놀랍도록 신비한 경험 뒤에 오는 세상의 끝 같은 고요하기만 한 적막.
현실과 인식의 괴리를 경험한 것이다. 도무지 이해시킬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존재한다는 것을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다. 무엇인가가 보여서 내가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희뿌연 연기를 잡듯 아무것도 잡히지가 않았다. 그렇게 나흘을 한 글자도 적어 내리지 못한 채 펜을 들고 앉아있던 적도 있었고, 새벽에 적은 글은 다음 날 모조리 지워버렸던 적도 있었다. 스스로에게 창작은 먼 곳의 이상향일 뿐이야,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그리곤 종국엔 결국 포기했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위로보다는 야유를 보낸다. 하지만 난 며칠을 책상에 앉아 써지지 않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얼마간의 야유가 편했다. 나는 창작보다는 야유에 익숙해졌다.
“그것을 하러 나는 왔다. 그것만을 생각하면 된다.”
헤밍웨이는 말했다.
헤밍웨이의 그것은 아마 글을 쓰는 것이었을 테지. 그는 일생을 정말 그것에만 바쳤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침묵한 채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사람에게 당최 글을 쓰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나처럼 말이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