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계속해서 말했지만 난 사람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누구나에게 있어서든 처음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할 터인데, 나는 그 처음이 어긋나 버린 것이다.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어린 시절 엄마는 날 낳다 죽었고, 아버진 그러므로 날 사랑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을 갈구하거나 마땅히 받아야 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원망하진 않았다.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게 내 인생이었던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혼자였으니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도무지 어떤 것인지 잘 몰랐을 뿐이다.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해 선 아쉬움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가지고 있었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 아쉬워하고 갈망하는 것이다. 반대로 애초에 가져보지 못한 것에는 그런 감정을 가질 여력이 없다. 아이스크림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이는 무더운 여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혼자 지냈다. 가람이를 만나기 전까지. 그리고 가람이가 떠난 후 처음 그랬던 것처럼 다시 혼자로 돌아갔다.
나는 관계 맺음을 원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사실 무엇보다 혼자가 편했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연애를 했다. 인생에 나에게 던 저준 숙제를 하나씩 해치우듯 남들이 하는 연애를 흉내 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도 남자였으므로 본능적으로 여자를 원했으며 그건 누군가로부터 배우지 않는다 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썩 나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이성을 좋아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단계가 진척되다 보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만족감을 찾아버린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두려움일 수도 있다. 관계의 결속은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남기고 간 흔적은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두려움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유가 전자였 건 후자였 건 나의 연애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시작도, 끝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 놓아버린 관계는 나에게 아무것도 건네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굳이 밀어내지는 않았지만 온전히 마음을 나누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연애를 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녀들의 옆에 있었다, 라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
나의 첫 번째 여자는 고등학교 문학반 선배였다. 문학 담당이었던 담임 선생님은 지독히도 말을 하지 않는 나를 억지로 문학반에 집어넣으셨다. 말을 하지 않을 거면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라면서. 그래도 학교에 왔으면 뭐라도 하나 배워서 가야 된다고 하셨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몇 안 되는 선생님 중 한 분이셨다. 나는 어느 부서에 들어가던지 별로 상관없었기 때문에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 읽는 거라면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꽤나 좋아했었다. 책을 읽는 건 누군가와 같이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문학반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긴 생머리에 항상 말끔히 잘 다려진 교복 블라우스를 입고 다녔다. 지금 막 새 블라우스를 사 입고 온 것처럼 그녀의 블라우스는 언제나 새하얗게 빛이 났었다. 매일 블라우스를 다리려면 꽤나 부지런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실제로 그녀는 꽤나 부지런했다. 문학반 모임에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으며, 읽어야 할 책은 언제나 기간 내에 읽어왔었다. 그런 그녀의 부지런함의 일부분이 바로 잘 다려진 블라우스였다. 그런 그녀의 잘 다려진 블라우스를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오로지 그것 때문에 문학반 모임에 가는 게 즐거울 정도로 말이다.
그녀는 책을 볼 때는 안경을 끼었는데, 평소엔 안경을 끼지 않았다. 두 모습 모두 꽤 괜찮았다. 쉽게 말해서 무척이나 예쁜 여자였다. 그리고 가방엔 꼭 문학책을 한 권씩 넣어 다니며 어디서든 시간이 나면 책을 읽는 문학소녀였다.
우리는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책에 대한 토론을 했었다. 선생님은 주로 고전들을 많이 읽게 하셨다. 아무래도 현대 문학은 별로 읽을만한 게 없어서 말이야, 라는 말을 하시면서.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못했지만 대부분은 동의했었다. 책장에 꽂혀있는 고전문학책은 손에 잡히는 어떤 것을 꺼내어 읽어도 모두 괜찮았었지만 현대문학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 많았으니까. 선생님의 그런 말을 들으면서 왜 그럴까?라는 고민을 많이 해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지금 세상은 지극히 배가 부르다는 것. 배가 부르면 글을 써지지 않는다, 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그래서 인류의 풍요와 함께 예술은 점점 쇠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겉만 번지르르해지고 속은 텅 비어있는 깡통처럼.
한 번은 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토론을 하는 시간이었다. 매번 선생님이 함께 참석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선생님이 참석하지 않는 날이면 대부분의 선배들은 옥상에 담배를 피우러 가거나 매점에 뭔가를 사 먹으러 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동아리교실 구석진 곳에 숨어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그러니까 그런 날 성실한 자세로 그곳에 있던 사람은 그녀와 나뿐이었다.
그때 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매점을 가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귀찮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소설이었다. 물론 그런 위대한 소설을 읽고 그냥 마음속으로 느끼면 되는 거지 귀찮게 이런 토론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도 있었지만 이것도 엄연한 문학반의 룰이기 때문에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룰 안에 갇힌 사람이었다. 그 룰이 무척이나 귀찮았지만 그렇다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녀와 나 두 명이서 토론을 했으므로 차리리 만담에 더 가까웠다. 우리는 커다란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개츠비의 사랑을 지지하는 편이었고, 나는 그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했다. 이 소설에서 나에게 아쉬운 점 한 가지는 바로 그 부분이었다. 개츠비의 사랑은 마지막이 너무 비참했다는 것. 사랑의 모습이 서로에게 항상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개츠비는 데이지와 자신의 사랑의 간극을 눈치챌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사랑을 맹신한 나머지 데이지의 사랑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난 그런 점에서 개츠비가 바보 같다고 했고, 그녀는 그것이 바로 개츠비의 사랑이라고 했다. 고작해야 고등학교 1, 2학년의 대화였지만 나름 진지했었다. 그건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라는 위대한 소설이었고, 그 주제는 사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츠비와 그의 사랑 앞에서 그 누가 진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담배를 다 피운 남자 선배들이 돌아왔다. 그리곤 그런 지루한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하며 프로야구나 만화책 이야기로 주제를 바꿔 버렸다. 토론이 끊겼으므로 결국 개츠비는 나에게 바보 같은 사람이었고, 그녀에겐 열정적인 사랑을 가진 남자로 남게 된 것이다.
다음 날 그녀는 나에게 스콧 피츠제랄드의 “밤은 부드러워”라는 소설책을 빌려주었다. 한 번 읽어 보라며. 그러면 개츠비의 사랑이 다시 보일 거라고. 하지만 난 그 책을 읽지 않았다. 나에겐 스콧 피츠제랄드는 “위대한 개츠비”로 충분했다. 다른 어떤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녀가 책을 빌려준 2주 뒤, 난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면서 책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 날 우리는 키스를 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만으로 충분했던 나와, 내가 “밤은 부드러워”를 읽음으로써 개츠비의 사랑을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와의 키스는 애초에 거짓이었다. 그녀와 날 이어준 것은 스콧 피츠제랄드의 소설이었지만 난 “밤은 부드러워”를 읽지 않았으므로 우린 진실된 관계가 될 수 없었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의대에 진학을 했다.
그토록 문학을 좋아하던 그녀가 의대에 진학을 한 건 뭔가 이율배반적이었고, 어쩌면 그녀에게 스콧 피츠제랄드는 그저 이미 죽어버린 한 명의 소설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약간은 허무했다.
후로 그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가방 안에 소설책을 넣고 다니진 않을 것이라고 씁쓸히 생각했다.
나는 그럭저럭 공부를 해서 대학에 진학을 했다. 전공은 문학이었다.
본래 성실했던 나에게 수능이라는 시험은 적당했다. 아무리 암기식의 문제는 배재했다고 떠들어 대도 수능은 어디까지나 암기 시험이다. 책상에 앉아 선생님들이 중요하다고 떠들어대는 부분에 밑줄을 긋고 그걸 외우면 된다. 그럼 비슷한 문제가 수능에 나온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정답이라 생각되는 번호에 마킹을 하면 끝. 물론 암기가 나쁜 건 아니다. 한 번 머릿속에 들어온 사실은 더 이상 모습을 바꾸지 않으므로 그것만큼 확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라던지,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따위의 문제들은 학생도 힘들게 하고 타인의 생각에 점수를 매겨야 하는 채점자에게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 난 우리 과의 조교였던 두 번째 여자를 만났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던 담당 교수님은 당신이 쓰고 있던 소설의 맞춤법의 교정을 그녀에게 맡기셨고, 나에게 그녀를 도와서 함께 해보라고 하셨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 하시면서. 나는 역시나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한국말은 무척이나 잘 하셨지만, 한글 맞춤법은 초등학생 수준이었으므로 그녀와 나는 며칠 밤을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작업을 해야만 했다. 생각보다 너무 엉망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8살이 많았다. 짧은 단발머리에 타이트한 청바지에 티셔츠를 주로 입었다. 그리고 입에는 항상 담배를 물고 있었다.
밤샘 작업을 하는 날이면 그녀는 내내 계속해서 교수님 욕을 했다. 잘 씻지 않아 냄새가 난다느니, 매번 성적인 농담을 한다느니, 이런 맞춤법도 모르면 유치원부터 다시 다녀아 한다느니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작품만을 놓고 본다면 소설은 정말이지 꽤나 괜찮았다. 적어도 무언가 하나는 배울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난 그저 묵묵히 맞춤법 교정을 했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교수님이 한심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잘 갔고 아까도 말했지만 작품 자체는 꽤나 괜찮았다.
나는 그녀의 담배에 불을 붙여줬다. 그녀는 계속해서 담배를 피워댔고, 난 그녀가 세 개비의 담배를 피울 때쯤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식이었다. 틀린 맞춤법을 세 개 정도 찾아낼 때쯤 그녀는 담배를 한 개비씩 피운 것이다. 하루의 작업이 끝날 때쯤이면 연구실의 재떨이는 담배꽁초로 한 가득히 되었다. 그리고 연구실 안은 마치 너구리를 잡기 위해 불이라도 피우는 것처럼 하얀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담배를 피워댔다. 그만큼이나 교수님의 맞춤법은 엉망이었단 말이다.
그때쯤 그녀도 소설을 한 편 쓰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는 나에게 소설의 초고를 던져주며 한 번 읽어보라고 했다. 이게 뭐냐 물으니 그녀는 그냥 쓰레기야,라고 대답했다.
그녀처럼 소설의 여자 주인공도 계속해서 담배를 피워댔다. 밥을 먹고 담배를 피웠고, 물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화장실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고 지하철 역을 벗어나자마자 담배를 피웠다. 심지어 키스를 하면서도 남자와 섹스를 하면서도 여자 주인공은 계속해서 담배를 피웠다.
“여자 주인공이 너무 담배를 많이 피우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담배를 피우다간 정말이지 금방 죽어버릴 거라고요. 이거 담배만 피우다가 단명하는 여자가 세상에 엿을 날리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그녀의 소설 초고를 읽고 내가 말했다.
“그게 왜?” 그녀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대답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선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세상이잖아. 세상이 엿 같다고. 맞춤법도 엿 같고. 맞춤법을 교정하고 있는 나도 엿 같고. 맞춤법 따위나 교정하려고 내가 힘들게 공부를 한 건 아닌데 말이야. 그러니 어떡하겠어. 담배라도 열심히 피워야지.”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는 라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멀쩡히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투명한 노란색의 라이터가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나 담배를 많이 피우는 건 좋지 않는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엿 같은 세상이라…”
난 테이블 위의 투명한 노란색의 라이터를 집어 그녀의 담배에 다시 불을 붙여주었다. 라이터엔 [미스 다방]이라는 상호가 적혀있는 것이었다.
“미스 다방이 어디예요? 요즘에도 다방이 있나?” 나는 라이터를 자세히 살펴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뭐 어딘가에 있으니까 그 라이터가 이곳까지 흘러왔겠지. 세상엔 여전히 다방을 좋아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테이블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카페보다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다방이 더 인간적이지 않나?” 그녀는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날리며 말했다. 그녀가 내뿜는 담배연기도 어느새 이미 채워진 하얀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카페를 누군가와 함께 가본 적이 없어서 난 잘 모르겠네요.” 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넌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불만이 없는 거야? 엉터리 맞춤법을 찾아내고 있는 건 그저 시간을 죽이는 일이라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이 일이 그녀의 남은 수명을 계속해서 없애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얼굴을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면 계속해서 담배를 피워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마 반 반일 것이다.
“글쎄요. 사실 딱히 다른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할 일도 없어요. 그래도 요즘은 시간이 빨리 가서 좋아요. 낮에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저녁에 교정작업을 하고.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맥주를 한 잔 하고는 잠을 자는 거죠. 매일 별 다를 게 없는 규칙적인 생활이라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대신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게 된다는 점은 안 좋지만요.” 난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래?” 그녀는 내가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작업을 하는 내내 난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그녀도 나와 대화를 하느니 담배나 피우자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 날 저녁은 뭔가 좀 달랐다. 그녀는 약간 들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약간은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평소와 그녀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오늘은 내 생일이야.”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마치 화장실 좀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것처럼 건조하게 툭 내뱉었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난 그녀를 한 번 힐끗 바라봤다.
“그냥 그렇다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말했다. “사실 아직까지 특별하게 생일을 보내 본 적이 없어. 가끔은 어, 생일이었었네. 하고 그냥 지나친 적도 많아.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좀 우울하네.” 그녀가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올라간 그녀의 팔 때문에 티셔츠 아래 그녀의 뽀얀 배가 보였다. 담배가 피부색을 검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우는 대도 피부는 저렇게 하얗다니.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피부였다.
“오늘은 좀 쉬지 그랬어요. 그래도 생일인데……”
나는 작업을 하고 있던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그녀의 눈을 자세히 바라봤다. 깊은 눈이었지만 눈 앞에 뭔가 얇은 막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얇은 막은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장벽 같기도 했다.
“생일이란 게 참 묘해. 사실 내가 태어난 것에 대해서 난 아무런 노력을 한 게 없는데 말이야. 그런데도 내가 축하를 받잖아. 여기저기서 생일 축하해 라는 말 따위를 해줘. 별다른 의미가 없는 선물들을 받기도 하고. 정말이지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말이야.” 그녀는 물 컵 안의 물을 벌컥 마셨다. 컵 안, 물 위에 떠있던 담뱃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나는 내 노력으로 태어난 게 아니니까. 거기다 나의 탄생이 누군가의 불행이 될 수도 있고.” 말을 내뱉고는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어 입에 물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나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어쩌면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엄마도 죽지 않았을 테고 아버지도 날 미워하지 않았겠지. 내 생일과 엄마의 기일이 같았기 때문에 난 생일을 챙겨본 적이 없었다. 사실 그게 슬픈 일은 아니었다. 그냥 그것에 대해서 나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에게 미안해하기엔 난 그녀의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못했으니까.
“모두들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치 영화 [트루먼 쇼]처럼 말이야. 생일 축하를 해주던 모든 사람들이 뒤돌아선 “아, 오늘도 할 일을 다 했구나. 뿌듯하네” 하면서 퇴근을 해버리는 거야. 그럼 난 갑자기 혼자 남겨지는 거지.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말이야. 덩그러니.”
“작년 생일엔 뭘 했어요?”
“작년 생일? 기억 안 나. 뭐 하루 종일 책이나 보면서 담배를 피웠겠지.”
그녀도 노트북을 덮었다. 오늘 작업은 이걸로 끝이었다. 교정작업은 기한이 정해져 있긴 했지만, 지키지 않아도 되는 기한이었기 때문에 그녀도 나도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다.
“나가요. 같이 맥주라도 한 잔 해요. 적어도 난 뒤돌아서 퇴근을 하진 않을 테니까.”
그날 저녁 우리는 학교 앞 바에서 함께 맥주를 마셨다. 내가 사려 했지만 그녀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지갑을 나에게 맡겼다. 자기가 정신이 없더라도 꼭 자신의 돈으로 술값을 지불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평소 강해 보이던 그녀와 다르게 그녀는 술이 무척이나 약했고, 그녀가 화장실에서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두 번 게워낸 뒤 우리는 술집을 나왔다. 그녀의 몸도 옷도 이미 엉망이었다. 나는 그녀를 업다시피 해서 겨우 그녀의 집에 데리고 갔다.
그녀의 집은 가구라고는 침대 하나만 덜렁 놓여있는 원룸이었다. 식탁 위엔 음식보다는 읽다 만 책들이 널려 있었고 담배꽁초가 가득한 재떨이가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맥주와 생수만 가득했다. 휴지통에는 라면 봉지와 나무젓가락과 그녀의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의자 위에 뒤집혀 놓여있던 책을 치우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면서 그녀와 그녀의 소설 속의 여주인공을 생각했다. 그건 소설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일기장 같았다. 그녀도 소설 속의 여주인공도 계속해서 담배만 피워댔으니까. 나는 의자에 앉아서 침대 위의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속이 좋지 않은 지 몇 번인가 몸을 뒤척이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세상이 엿같아서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다는 그녀의 당찬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고 그녀가 가여워 보였다.
나는 30분쯤 앉아서 담배 3개비를 피우고 일어났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였다. 내일 수업은 없었지만 교정 작업은 계속해야 했다. 내가 돌아가려고 몸을 일으켰을 때 침대 위에서 자고 있던 그녀가 일어났다. 이불을 뒤덮고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린 채로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가지 말라고. 외롭다고. 그녀가 워낙 작은 목소리를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가까오 오지 그녀는 다시 한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지 말라고. 그러더니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우는 이유가 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건 갑작스러운 울음이었기에 난 당황스러웠다. 속으로 두 번쯤 망설이다가 난 다시 가방을 내려놨다. 침대 위의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계속해서 울었다. 누군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펑펑 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티셔츠는 그녀의 눈물로 흥건해졌다. 그렇게 울던 그녀는 조용히 내 품에서 잠이 들었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잠이 깬 우리는 침대 위에서 섹스를 했다. 두 번. 아마 아랫집 개가 미친 듯이 짖지만 않았더라도 세 번, 네 번 하루 종일 그녀를 품에 안았을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나와 사귀는 내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루에 두 갑은 족히 피워대던 담배를 그렇게 갑자기 끊을 수 있다니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교수님 원고의 교정을 마칠 때까지 매일 저녁 섹스를 했고, 나만 담배를 피웠다.
2년 뒤, 그녀는 소설가로 등단을 했다. 그녀는 꽤 유명해졌고, 평범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 그녀는 우리 학교에서 강의를 하나 맡았었고 나는 그 수업을 수강했었다.
그녀는 강의 시간이 되면 출석부와 함께 빨간 말보로 담뱃갑을 들고 강의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어쩌면 여전히 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담뱃갑을 움켜쥔 그녀의 손가락이 무척이나 가여워 보였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