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가 매일 사라지고 있다

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by 최전호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타인의 것으로 채우는 것이다.

TV 뉴스에서도, 스마트폰의 액정 위에서도 하다 못해 이제는 거의 사라져 버린 종이 신문의 지면에서도 자신의 삶을 감춘 채 타인의 삶을 관망한다. 그리고는 자조석은 웃음을 날려댄다. 대부분은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들이다. 사람들은 원래 그렇다. 타인의 불행한 삶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라고 착각한다. 속물스럽게도 타인의 힘겨운 삶에서 스스로의 삶에 대한 위안을 찾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단 낫지 않느냐며 스스로의 삶을 자위하고 그런 타인의 삶의 굴곡이 자신에겐 오지 않을 것처럼 으스댄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영영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반대의 삶의 어두운 그림자가 자신에게 드리울 때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때, 우리들의 주변엔 아무도 없다. 나를 향한 타인의 자조석인 웃음만 있을 뿐. 우리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건 이제는 특별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은 결국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처음”의 것이 요란스러울 뿐 그것이 반복되면 그건 그저 그런 일이 되어버린다.

누군가가 삶을 비관하고 스스로의 빛을 꺼버려도 이제 사람들은 무심하게 채널을 돌리거나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내려 버린다. 그리고는 연예인의 근황이나 주식 시장의 등락을 나타내는 복잡한 그래프에 눈을 돌려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그들이 삶을 버티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의 유일한 방법이 침묵이었던 것처럼 누구나 스스로의 삶을 지탱해가는 각자의 유일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는 것일 테니까.

세상 그 누구도 한 사람의 유일한 도피처엔 돌을 던질 수는 없다.


삶을 힘겹게 하는 건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삶의 희로애락에 엉겨 붙어 불현듯 찾아온다. 우리들은 가끔 그것을 예상하긴 하지만 대부분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어째서 우리는 스스로의 고난엔 무뎌지지 않는 것일까? 타인의 고통처럼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경험이라면 이제는 예상하고 대비하고 조금은 쉽게 견뎌낼 수 도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불행의 목록을 수첩 위에 나열해 놓고 순위를 메기는 것은 어쩌면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상황마다 다를 것이며, 때론 계절마다 달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록을 만든다 해도 해결책이 제시되는 건 아니니까.

불어오는 따듯한 봄바람이 누군가에겐 예리한 검처럼 날카로울 것이고, 마음까지 얼려버릴 정도로 차가운 시베리아의 칼바람도 때론 그럭저럭 견딜 수 있다. 그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마음의 상태가 외부 상황을 받아들이는 필터가 되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새하얀 구름 위로 올려놓기도 한다.

나는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이었다. 철저히 세상에 장벽을 치고는 내 공간 안으로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 안에서 난 몸을 웅크린 채 계속해서 스스로만 바라봤다. 장벽 밖 세상은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그런 쇼윈도 안의 세상이었다. 난 그 벽 너머로 혼자 서 있었고.

마음의 필터가 단단하게 굳어져 장벽이 돼버리고 나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을 힘겹게 하는 요소는 하나 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세상을 그럭저럭 살아간다. 아니 살아내고 있다. 고난에는 여전히 무뎌지지 않았지만 그 역치 점이 상당히 강해진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나에게 오는 모든 것을 흘려보내고 난 장벽 뒤에 숨으면 된다. 고통이라는 건 이상하게도 혼자 있으면 견딜만했다.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기쁜 일도 누군가 봐주지 않는다면 그 크기가 줄어들고, 슬픔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하루에 사십 명이 넘게 자살을 한다,라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나눠주는 조간신문의 한 귀퉁이에 나왔다. 사십 명이라니. 어쩌면 내게 사십 명이라는 사람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말을 섞어본 사람들보다 많은 숫자일지도 모른다. 만약 한 사람의 세계를 그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로 한정한다면, 매일 내가 살아온 세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지하철 안이 아득해졌다.

‘나의 세계가 매일 사라지고 있다.’

나는 옆 자리에 앉아있는 아저씨에 묻고 싶었다. 매일 그렇게 나의 세계가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오늘 무얼 해야 하느냐고. 무얼 해야 나의 세계가 사라진다고 해도 지금처럼 아득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내가 묻는다 해도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결국 자신만의 유일한 방법으로 간간히 세상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타인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 따윈 결코 큰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렇게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나는 결국 어떻게든 세상은 돌아간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쌓여갈수록 세상은 오히려 그것만큼 더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결코 멈추지 않은 채.


나는 내 삶이 평범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느낌이기 때문에 확실히 내 삶이 평범하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느낌이라는 건 대부분 매우 정확하므로(적어도 나의 경우엔 말이다) 지금 나의 삶은 대체로 평범하다,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대체로 평범.

말을 하고 보니 무슨 기상캐스터의 일기예보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내 삶이 대체로 평범하여 한 곳에 자리를 잡은 채 전혀 움직이질 않으니 일상 위에는 뽀얀 먼지가 쌓여간다. 세상은 넓었지만 내가 사용하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만나는 사람도, 먹는 음식도, 심지어 하루 종일 내가 내뱉고 있는 말들도 거기서 거기였다. 하지만 먼지가 쌓여가는 삶에도 일련의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규칙이 깨어지가라도 하면 쌓였던 먼지가 뿌옇게 떠올라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작은 세계는 조그만 충격에도 송두리째 흔들려 버리고 만다. 그만큼 나는 나약하다.


소리는 내 평범한 삶의 규칙을 깨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이 아직까진 좋다, 나쁘다의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소리가 일으킨 요동에 내 삶에 쌓여있던 먼지는 뿌옇게 떠올랐고, 그때마다 난 도무지 앞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종(사실 요즘은 너무 자주) 바에서 소리를 만나서 그녀와 한마디라도 말을 섞게 되면 그 순간 내 삶의 평범함은 깨어져 버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세상이 나에게 안심하라고, 조금만 더 견디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는 건 결국 거짓 위안이었던 거죠. 그 모든 걸 견디고 난 뒤에도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소리는 오늘도 여전히 취해 있었다. 나도 정말 술을 많이 마신다고 생각했지만 소리를 비하면 나는 아직 한참이나 멀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부터 저렇게 취해있으니 말이다. 소리는 자신이 휴학생이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용돈을 받고 있으니 일 이 년쯤은 이렇게 술만 마시고 지낼 거라고 말했다.

소리는 쉽게 눈에 띄는 여자는 아니었다.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딱히 예쁘다,라고 말 하기는 다소 어려웠지만 계속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녀가 취하고 있는 건 대부분 평번한 것이었다. 입고 있는 청바지도 평범했고, 속이 비치는 얇은 마 소재의 하얀색 셔츠와 그 안의 까만색 나시도 그녀가 입고 있으니 너무나 평범해 보였다. 신발은 탐스의 굽이 낮은 단화를 신었는데 그녀의 얇은 다리와 잘 어울렸다. 그녀는 키가 162센티 정도로 적당했다. 힐을 신는다면 꽤 키가 커 보이겠구나 생각했지만 그녀는 높은 힐을 신은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불만이 가득한 소리에게 물었다. 그녀는 바에 들어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인사도 없이 덜컥 저런 말을 나에게 내뱉었던 것이다.

바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직은 봄인데 벌써 에어컨이라니,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의자의 등받이에 걸쳐 놓았다. 소리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의자를 빼내어 소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친구가 결국 학교를 그만뒀어요.” 소리는 크게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흐음.” 하고 나는 대답했다. 아마 그 뒤에 그녀가 이어서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 무척 화가 난 사람처럼 연거푸 맥주를 들이켰다.

“친구가 학교를 그만뒀다고? 왜?” 결국 참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왜 그만 다냐고요? 뻔하잖아요. 거지 같이 비싸기만 한 등록금 때문에. 그것 만큼 가르쳐주는 것도 없으면서 등록금은 왜 그렇게 비싸기만 한 건지.”

“음...”

요새 대학생들이 지나치게 비싼 등록금 때문에 많이 힘들어한다는 사실은 이미 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너무나 흔해져서 동정과 분노마저 무뎌져 버렸다.

“오늘 날씨가 유난히 덥네. 그래도 아직은 봄인데 말이야. 요샌 도무지 봄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어. 봄이 어느 순간 아무도 모르게 깊은 동굴로 숨어버린 것 같아.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말이야지 결심을 하고선 말이야.” 하고 나는 화제를 돌려 말했다.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난 소리의 친구의 정확한 사정을 알지 못했으니까.

“그 친구요. 정말 성실한 친구였어요.”

그녀는 내가 에둘러 넘겼던 화제를 다시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았다. 나는 결국 오늘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겠구나, 생각했다. 다시 나의 평범한 삶의 소리에 의해서 깨지게 되는 것이다. 무튼 그런 혼란스러움이 싫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소리가 나에게 건넨 파동이 어디까지 퍼져가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매일 저녁 늦게까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강의에는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지각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거기다 학점도 나보다 훨씬 좋았고. 그런데 결국 견디지 못하고 오늘 학교에 자퇴서를 썼어요. 등록금을 한 달이 지나도록 마련하지 못했던 거죠. 학교 원무과에서도 더는 기다려줄 수가 없었나 봐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는 등록금은커녕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힘들었으니까. 자퇴서를 내고 터벅터벅 걸어 저를 만나러 오는 친구를 한참이나 바라봤어요. 그런데 더 슬픈 건 그 친구가 고개를 숙였다는 거예요. 매일 몸이 힘들어도 한 번도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던 친구가. 항상 당당하게 앞을 보며 걸었던 그 친구 가요. 아저씨. 돈이 없으면 공부도 못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이제 잘 살게 됐다고, 이제는 선진국이라고 여기저기서 떠들어 대는 데 그 많은 돈들은 다 누가 가져간 거예요? 왜 정말 열심히 살았던 그 친구가 고개를 숙여야 해요?”

소리는 숨도 쉬지 않은 채 나에게 말을 쏟아 냈다. 나는 그녀 앞에서 입을 떼지 못했다. 그건 적어도 내가 고민해본 부분은 아니었다. 아버진 나와 헤어질 때 어느 정도의 돈은 주셨었고, 난 적어도 그런 부분에서는 아무런 고민 없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소리의 친구처럼 학창 시절 등록금과 생활비를 직접 벌어서 충당해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난 아무 미련 없이 학교를 그만뒀을 것이다. 당시 대학 교육은 나에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대학은 나에게 장벽 밖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졸업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아요. 내가 학교를 그만둔 그 친구 때문에 슬퍼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럼 뭣 때문에 이러는 건데?”

“나 때문에요.”

“너 때문이라고?”

“응. 학교를 그만둬야 할 사람은 차라니 내쪽이니까. 난 학교에서 아무런 목표도 찾지 못하고 비겁하게 도망친 휴학생이잖아요. 적어도 학교는 나보다는 그 친구에게 필요한 건데. 공부를 하고 싶었던 친구는 학교를 떠나고, 나는 남아있잖아요. 그저 우리 집이 그 친구 집보다 잘 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래도 그건 네 잘못은 아니잖아.”

“아니요. 내 잘못이에요. 그리고 아저씨 잘못이기도 하고.”

“내 잘못이라고? 그건 너무 억지...”

“맞아요. 아저씨 잘못도 있어요.” 소리는 내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아저씨도 어른이잖아. 이 빌어먹을 세상을 살고 있는 어른. 친구가 돈 때문에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세상을 만들어버린 어른.”

소리는 분하다는 듯 이를 악 물고 말했다.

“뭐 일단 나도 어른이긴 하니까. 내 잘못도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내가 그런 세상을 만든 건 아닌데...”

태풍이 지나가버린 것처럼 나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헝클어져버렸다. 정말 나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인가? 얼굴도 한 번 본 적이 없는 소리의 친구가 등록금 때문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그건 정말 소리의 말처럼 이 빌어먹을 세상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세상에 난 깊이 관여하지 않고 살고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 세상의 하나의 부품일 것이다. 나라는 부품이 중요하건 중요하지 않건 말이다.

어른이라는 이유 만으로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고 때론 납득되지 않는 비난을 감당해야 하기도 한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내가 깊이 관여했건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관심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리의 말이 완젼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결국 그것도 마음의 문제이지 않느냐,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 등록금 때문에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세상도, 아니면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모의 돈을 흥청망청 사용하며 살아가는 세상도, 이별 때문에 인생을 져버려야만 하는 세상도, 거짓말로 연명해 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나라를 이끌어가며 떵떵거리는 세상도, 사람의 가치가 돈으로 평가되고 그것 만큼만 대우를 받는 세상도, 티브이를 틀면 돈을 빌려주겠다는 광고들만 넘쳐나는 세상도, 결국 그건 세상의 문제가 아니고 내 마음의 문제라고.

그것들에 분노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저항하는 것도, 그리고 장벽을 쌓아 올리고 도망가는 것도 모두 다.

결국 그 모든 것은 상실이다.

상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해서 상실이 치유되는 건 아니니까.

한 번 삶으로 침범한 상실은 지겹도록 달라붙어 나로 하여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니까.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세상은 흘러가고,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가게 돼 있어. 이렇게 매일 맥주나 마시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녀가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면서 물었다. 두세 번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려 했지만 라이터가 켜지지 않자 이내 신경질 적으로 라이트를 테이블 위에 던져 놓았다. 나는 의자의 등받이에 걸쳐 놓은 재킷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그녀의 담배에 불을 붙여 줬다.

“자주 생각해. 아니 거의 매일매일.”

“그래요? 왜?”

“살아갈 이유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나도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며 대답했다. “사는 게 너무 평범하거든. 매일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들이야. 전혀 특발할 게 없는. 그러니까 오늘 쨘, 하고 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세상은 조금도,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죽음이라는 게 멀리 있다고 생각되지가 않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만 바뀌면 바로 앞으로 달려갈 것처럼 엔진을 으르렁대는 내 앞의 자동차들처럼 죽음은 꽤 가까이 있는 거지.”

“평범하다는 거, 다르게 생각하면 그래도 잘 살고 있다는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이야 죽음이라는 것도 평범함 속에 있는 거야. 전혀 특별할 게 없는 거라고. 있잖아. 우리나라에서도 하루에 사십 명의 사람이 자살을 한데.”

“사십 명이 나요?”

“응. 물론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모두가 정말 견딜 수 없는 슬픔이나 시련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건 아닐지도 몰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죽을 이유가 많은 사람은 죽지 않아.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이 죽는 거지.”

“그럼 아저씨는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녀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말했다.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매일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정확하게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비슷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것 마냥 떠들어 대지만 정작 자신이 왜 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 나도 그렇고.”

“아저씨 말을 역시 항상 어려워요.”

그녀는 맥주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어려운 말(그녀가 듣기엔) 때문인지 몸에 열이 난다는 듯 하얀색 셔츠를 벗어 옆 의자에 올려놓았다. 유일하게 남은 검은색 나시가 소리의 몸매를 드러냈다. 탄탄해 보이는 몸매다.

“그래도 아저씨랑 이야기하면 뭔가 조금 풀리는듯한 기분이에요. 속에 꽉 막혔던 것들이 뻥 하고 뚫리는 것 같은.”

“우리가 맥주를 마시고 있어서 그런 거야. 나 때문이 아니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싱겁긴. 아저씨도 한 번 찾아봐요. 살아가야 하는 이유.”

“글쎄. 그게 말처럼 쉬운 거라면 진작 찾았겠지?”

그 모든 건 결국 마음의 문제니까, 라는 마지막 말을 나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도 함께 맥주를 마셨고 담배를 피웠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료하다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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