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엿이나 먹으라지.”
한 명의 신입이 사표를 던졌다. 석 달의 조금은 힘들었던 수습 기간을 끝내고 두 달 전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 직원이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과는 다르게 뭔가 강단이 있는 친구였다. 그러니까 같은 일을 처리하고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더라도 신입의 눈빛은 남들과는 달랐다. 그것을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규칙”이라고 생각했다. 신입의 삶에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는 것이다. 그 규칙이 있어서 그녀의 눈빛은 항상 선명했으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 출판사의 규칙과 스스로 가지고 있던 규칙의 간극이 좁아지지 않으리라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다섯 달 만에. 그 간극 앞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규칙을 포기했겠지만 신입은 그렇지 못했다. 신입은 자신의 규칙을 처절하게 지켰지만 그 결과는 사표였다.
25살. 피 끓는 청춘인 신입에게 출판사는 그런 곳이었다. 지독히 일이 많은 곳. 책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창작물을 펴내는 곳이지만 정작 직원들에게 창작 따위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하길 원하는 곳이다. 그리니까 창작을 하면서 창작을 무시하는 그런 모순이 공존하는 곳. 그래도 수당이나 보너스는 나름 두둑하게 챙겨준다. 일을 한 만큼 적당한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서 나에겐 꽤 괜찮은 일자리였다. 더군다나 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 따위는 영 익숙하지 않으므로. 난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게 편했다. 출판사의 규칙에 순응하는 것이 나의 규칙이었다.
이곳의 일이라는 게 단순하다. 잠자코 자리에 앉아 묵묵히 눈앞의 일들을 하나하나 해치우면 된다. 하나의 일이 끝날 때마다 제 때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난 그걸로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 이건 평범하지만 내 인생의 아주 중요한 사이클이다.
내 앞에 쌓여있는 무료한 것들을 단순하게 해치우고 적당한 돈을 받아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 이건 아무도 느끼진 못하지만 지구는 계속 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꾸준하게 흘러가는 것. 꾸준하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것 만으로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 사람에 건 사물에 건 우리가 꾸준함을 보여주기란 정말 쉽지가 않으니까.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요. 이건 인생을 좀 먹는 일이라고요. 하루에 8시간씩 책상에 앉아서 서점들의 재고 따위를 체크하고 있는 내 인생이 너무 비참해요.” 내가 뽑아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신입은 허무한 듯 말했다. 그녀는 뭔가를 크게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서 찾아냈던 그 규칙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아간 출판사에 분노했다. 그 분노는 어쩌면 세상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눈 앞에 출판사라는 직장이 보였고, 그게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신입은 나의 인생을 꾸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출판사의 책상에 앉아 서점의 재고를 확인하는 일과 주어진 것들을 소가 꾸역꾸역 여물을 먹듯이 하나하나 지루하게 해치워내는 내 일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곤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나는 문을 박 차고 떠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마도 그녀는 몇 번이고 더 자신의 규칙을 세상에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오늘처럼 분노하겠지만 그 분노는 결국 포기로 바뀔 것이고 결국 커다란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아가겠지,라고 생각했다. 잘 살려고 하면 자꾸만 삐걱거리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곳이 세상이니까.
“아직 인생을 제대로 모르는 거야. 지금 같은 불경기에 이것저것 따지며 일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편집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고작 다섯 명 밖에 되진 않았지만 다른 직원들도 그 말에 대체적으로 수긍한다는 듯 다시 자기 일에 몰두했다.
나도 다시 책상에 앉아 희형의 원고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시에 퇴근하려면 오늘의 분량을 해치워야 했다. 그래야 월급을 받을 것이고, 그 돈으로 맥주를 마실 테니까.
원고를 교정할 때 나는 주로 생각 같은 걸 하지 않는다. 교정이라는 일이 내 생각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기도 했지만 자칫 생각을 하다 보면 일의 진행속도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자꾸만 일이 더뎠다. 아마 사표를 던지고 나가버린 신입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자꾸만 내 일상성을 흔드는 일이 많다.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슬그머니 내 삶에 들어온 희형도 그렇고, 자꾸만 잔잔한 내 마음에 물결을 일으키는 소리도, 그리고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사표를 내던진 신입도.
그럼에도 나는 꾸역꾸역 내가 할 일을 해치웠다. 소가 여물을 먹듯이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장을 봤다.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 장을 본다. 싱싱한 음식재료들로 냉장고를 채우는 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마라톤을 하기 전에 좋은 러닝화와 트레이닝복 따위를 완벽하게 갖춰 놓은 그런 기분이다. 샐러드를 만들 야채 몇 가지와 참깨 드레싱, 오렌지 몇 개와 양파와 버섯을 조금 샀다. 그리고 정종 한 병과 스카치 블루, 여섯 개 들이 맥주도 한 팩. 위생 얼음 한 봉지까지.
“기분이 어땠어?”
희형은 요리를 하고 있는 내 등 뒤에서 말했다. 나는 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양파를 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내가 대답을 하고 있지 않을 때 그녀는 다른 질문으로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나를 잘 기다려준다. 언제나 그렇다.
“글쎄. 별다른 기분이 생기진 않던데. 다만 그 뒤에 당신의 원고를 편집하는 일이 조금 더뎌졌을 뿐이야”
대답을 하고 나는 버터를 팬에 둘르고 양파를 볶았다. 양파를 볶는 달달한 냄새가 부엌 가득했다. 오늘 출판사에서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가 물어본 것이다. 신입이 사표를 내면서 “엿이나 먹으라지”라고 말했을 때 나의 기분을. 그녀는 항상 나의 감정 변화에 많은 집중을 한다. 함께 사는 내내 말이다. 그녀가 나의 집에 얹혀살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집안의 모든 생활비는 내 월급에서 나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을 미안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양파를 볶던 팬에 밥과 버섯을 넣고 좀 더 강한 불로 계속해서 볶았다. 간이 잘 돼서 꽤나 괜찮은 볶음밥이 완성됐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는 내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뭔가를 생각했다. 뭔가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정작 그게 무엇인지는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아주 작은 변화의 씨앗이 내 속에서 막 싹을 틔운 것 같았지만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채지가 쉽지 않았다.
다만 나는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라고 어렴풋하게 느꼈다.
식사를 마치고 그릇은 정리한 뒤 우리는 거실에 앉았다. 아직은 잠을 자기엔 이른 시간이었고 우리 집엔 티브이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녀는 맥주를, 나는 스카치 블루를 언더락으로.
“그 신입은 그래도 선택을 망설이진 않았네.” 소파에 몸을 더 깊숙이 파묻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망설이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애초에 그녀에겐 맞지 않았던 일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말했다.
“애초에 맞지 않았던 일라고?”
“응. 망설임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바랄 때 시작되는 거야. 뭔가 이루길 바라고, 그것에 자신의 어떤 걸 걸어야 봐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오히려 사람은 망설이게 돼.”
“어째서 바라는 것 앞에서 망설인다는 거지? 나는 바라는 것 앞에서 망설인 적이 없는데.”
“불안하거든. 사람은 원래 불안해. 덜컥 원하는 것이 내 눈 앞에 있으면 도리어 의심을 하게 되는 거야. 저게 진짜일까? 내가 잡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그 불안이 무언가를 망설이게 만들지.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사표를 던졌다는 건 애초에 출판사 일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는 거야. 마음이 없었던 거지. 아니면 자신이 뭔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나는 살짝 취기가 올랐다.
“당신은 한 번도 망설여 본 적이 없었어? 그것이 진짜일까 의심되고, 그래서 불안해져서 결국 망설여질 만큼 바라는 일이.”
그녀는 눈을 감으며 천천히 달콤하게 말했다. 희형의 말은 입자가 되어 귀를 통과해 나에게 들어왔다.
“모르겠어.”
“그럼 뭐랄까. 바꾸고 싶은 일이라던가 아니면 정말이지 후회되는 일이라던가. 그런 건?”
“사실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러니까 난 뭔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 건지도 몰라. 선택할 필요가 없으니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바라는 일이나 후회되는 일도 생기지가 않았어. 조금은 시시하지?” 하고 나는 대답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했지만 정말이지 시시한 삶이었다. 변화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는.
후회라는 것이 뭔가를 행하거나 행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것일 텐데 내가 살아온 삶은 그런 망설임과 행함이 없는 삶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조금 다르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조금은 더 욕심을 내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그렇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는 게 문제지. 애초에 열정이라는 게 없는 건지도 몰라. 지금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으니까. 당장 내가 오늘 술에 취해 잠이 든 뒤 내일 아침에 깨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난 별다른 아쉬움이 없는걸. 그러니까 내가 살아온 방식이 그래. 조용히 살아가다 보면 세상이 나에게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줘. 그러면 난 그걸 묵묵히 해나가는 거지. 하고 싶다거나 해야만 한다거나 그런 일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그 일에 내 감정을 이입시킬 필요는 없어. 기뻐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어. 다만 조금 아쉬운 건 세상에 나에게 어떤 흐름을 통해 알려 준 일들이 반드시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야. 내가 아니어도 세상은 흘러간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건 약간 슬플 테니까.”
아쉬움.
어쩌면 내 삶에 아쉬움이라고 부를 만한 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람이가 죽고 난 후, 나는 모든 만남에서 망설였다. 그러므로 온전히 다가가지 못했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괜찮아. 당신이 내일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그녀는 손을 내 가슴으로 옮겨 놓으며 말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나에게 뭔가 망설여질 때면 그땐 나에게 말해줘. 당신이 나에게 뭔가 망설인다면 나는 꽤 기분이 좋을 것 같아.”
그녀는 말을 하고는 묘하게 웃었다.
“난 도무지 당신이란 사람을 잘 모르겠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없는 동안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또 왜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둬. 나도 당신 옆에 잠시 머물다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당신도 그렇고.”
우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지만 술을 마셔서 그런지 잠이 오지는 않았다.
“노래가 듣고 싶어.” 그녀가 말했다.
“어떤 노래?”
“당신이 듣고 싶은 노래.”
나는 일어나 비틀스의 Hey jude를 틀었다. 나는 비틀스가 비틀스라서 좋다. 두 명은 죽었고, 두 명은 아직 살아있어서 더욱 좋다. 과거를 말할 수도 있고, 미래를 상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희형은 노래를 들으며 담배를 피웠고, 난 희형이 내뿜는 담배 연기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헤이, 주드
그다지 나쁘게 생각하진 말게
슬픈 노래를 좋은 노래로 만들어 보자고
잊지 말고 그녀를 자네의
깊은 자리로 들여 보게나
그러면 좋아지기 시작할 거네
내가 좋아하는 한 구절이다.
……그러면 좋아지기 시작할 거네.
집에 있을 때 희형은 속옷을 입지 않는다.
브래지어는 물론이고 팬티도. 헐렁한 반바지에 큰 박스티 셔트를 입고 있다. 그녀의 작고 단단한 유두가 옷 위로 살며시 비친다. 의자 위 웅크려 앉을 때는 헐렁한 반바지 사이로 그녀의 새하얀 허벅지와 검은 음모가 가끔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가 신경 쓰지 않으므로 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는 속옷은 가식이라고 했다. 자신의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해서 입는 것이라고. 그래서 집에선 속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도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난 속옷을 꼬박꼬박 입는다. 그녀는 두 개고 난 한 개이니 나에겐 그다지 불편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규칙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는 나만의 규칙이 있다.
서로의 규칙들은 꾸준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굴려가는 것이다.
행여 그것이 자신을 숨기는 가식이라 할지라도.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