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2층으로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소리가 들리다 잠잠해졌다. 나는 입안에 있던 밥을 넘기지 못하고 계속에서 위를 쳐다보다가, 문이 닫히는 소리에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나의 손에 빈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그만 먹겠다는 말에 누나는 내게 지팡이를 건넸다. 나는 소파에 앉아 누나가 설거지를 끝낼 때까지 텔레비전에 비친 나를 보고 있었다. 검은 화면에 비친 저게 나인가. 손을 들어 얼굴을 쓰다듬고 왼쪽 쇄골을 쓰다듬자, 그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달콤한 냄새에, 냄새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자 누나가 안매화가 바르고 있었던 빨간색 매니큐어와 같은 색의 찻잔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거 마셔볼래? 커피인데, 달고 맛있어.”
“괜찮아. 누나, 어떻게 된 건지 말 좀 해봐.”
누나는 카펫 위에 앉더니 내 발과 종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커피는 어쩌려는 건지 마시지도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집 앞 골목에서 오토바이 소리와 차 경적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치료사처럼 능숙하게 발목을 잡고 앞뒤로 움직이는 누나의 손을 붙잡아 떼어냈다. 누나는 찻잔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결론만 말하면, 아저씨는 떠났고, 아줌마는 정신을 놨어.”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좀 자세히……“
“그래서 우린 이제 자유야. 이제, 우리는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됐어. 지금 네가 저 문을 나서겠다고 해도 아무도 널 다치게 하지 않아. 아무도. 지우야, 누나는 말이야. 한정이가 죽고 두정이랑 세정이가 떠나고, 그리고 네가 저 방에 갇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때 ……결심했어.”
입술에 맺힌 커피를 누나가 손등으로 닦았다. 검은 눈동자가 주변을 천천히 응시하다가 나에게 머물렀다.
“여기 있기로.”
“뭐? 누나 말대로 이제 자유라며, 그런데 왜 여기 있겠다는 거야? 저 여자랑 여기 남겠다고?”
나는 누나의 팔을 붙잡았다. 빈 컵이 누나의 손가락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지우야, 아저씨가 우리한테 한 말, 기억나?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책임을 다하는 거야.”
“무슨 책임! 미친 소리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나가자. 어디든 가자고!”
누나는 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파 끝에 올려져 있던 옷 중에 연한 줄무늬가 들어간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꺼내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갈아 입어.”
1층 창고 쪽으로 가더니 짐 가방 하나를 낑낑대며 가지고 나오더니 내 쪽으로 밀었다.
누나는 가방 지퍼를 열고, 양옆을 젖힌 다음 속에 있는 것이 무언인지 보여줬다. 만 원짜리가 가방에 꽉 차 있었다. 이번에는 배낭을 가지고 나오더니 거기에 돈을 담기 시작했다.
“이건 세정이 거야. 네가 가져다줘.”
누나는 전화기 밑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강세정이라고 쓰인 반 접힌 메모지를 펼치니 주소와 연락처가 보였다.
“이 돈은 어디서 났어?”
“훔친 거 아니야. 훔친 건, 그 사람들이지. 세정이가 떠나기 전에 돈을 따로 두는 데를 알려줬었어. 그런데 내가 어쩌기도 전에 이 돈을 주더라.”
“……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나 지금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래, 돈이든 뭐든 다 좋아. 같이 떠나!”
“김지우! 같은 말 하게 하지 마. 네가 살고 싶었던 대로 살아. 내 부탁은 그게 다야.”
누나는 메모지 하나를 더 꺼내, 세정의 주소가 적힌 메모지에 끼워 내게 건넸다.
“두정이가 가겠다고 한 곳이야.”
“누나, 알았어. 내가 애들 찾고, 이 돈도 전할게. 그러니까 제발 여기 있겠단 말만 하지 마. 나가서 얘기하자, 우리 죽은 거 아니라고 살아 있다고. 같이 나가서……!”
누나는 듣기 싫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찻잔을 부엌 쪽으로 집어 던졌다. 곧 내 두 손을 부여잡고, 부탁한다는 듯이 힘을 주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깨진 잔을 줍기 시작했다. 2층 방에서 뭔가 벽에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양 손바닥에 모은 깨진 조각들을 쓰레기통에 무심히 넣었다. 그러다 깨진 조각에 찔리기라도 한 건지 손가락을 입속에 넣었다.
“가방 챙기고 있어.”
누나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아직 피가 새어 나오는 손가락을 티셔츠 자락으로 감싸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배낭에 돈을 나눠 넣고, 어깨에 둘러멜 수 있는 보조 가방에 옷가지들을 챙기고, 노트 여러 권과 볼펜 몇 자루를 챙겨 넣었다. 배낭에는 누나가 사 온 가방용 자물쇠를 걸고, 열쇠는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누나는 의료기구 용품점에서 사 온 발목 보호대를 채워주며 일어서서 걸어보라고 했다. 접이식 등산용 지팡이를 가방에 넣어주고, 어색하게 걷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이 슬퍼서, 나는 누나의 소원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병원이 정말 많다? 한정이를 데려가 달라고 그렇게 빌었는데. ……웃기지 않니? 나가서 돌아다니면, 여기 있을 때보다 더 심장이 조여와.”
누나는 절뚝거리며 걷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운동화에 밑창을 하나 더 깔고 나서야 조금은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았다.
“지우야. 밥 굶지 마. 배 안 고파도 때 되면 꼭 먹어.”
“알았어. 누나도.”
“너 이제 어른이야. 진짜 어른. 그러니까, 우리 서로, 너무 걱정하지 말자.”
나는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같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닿아있을 것 같았다.
나는 누나를 끌어안았다. 누나는 마지막으로 나를 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집을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세정도 이 기차를 탔을까. 몇 시 기차를 탔을까. 옆에는 누가 앉았을까. 배는 고프지 않았을까. 흔적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말자. 그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난생처음 기차에 올라 자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복도 쪽 자리를 확인하고 보조 가방과 배낭을 창가 쪽 자리에 포개 놓았다. 불안한 마음에 두 자리를 사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몸을 창 쪽으로 돌린 채 밖을 보았다.
세정의 주소와 전화번호는 이제 외울 수도 있었다. 찾아가서 무슨 말부터 할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부둥켜안고 울지도 몰랐다. 사실 우리는 눈물이 많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서로 겁쟁이라고 놀리면서 누가 겁쟁이냐고, 네가 겁쟁이네, 라고 서로 떠밀었다. 그러면 좀 어때서. 나는 돈이 든 가방에 손을 올렸다. 햇빛에 손등이 따가웠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바지와 같은 색깔의 야구 모자를 다시 한번 눌러썼다.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지만, 밤늦은 시간까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까 망설이다가 다시 돌아가기를 몇 차례, 더 이상 늦으면 잠잘 곳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아 골목을 내려가던 참이었다. 아직 수거해가지 않은 쓰레기 더미를 지나치는 세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는 세정을 앞에 두고 울 수가 없었다. 나는 나를 붙잡는 세정을 끌어안고, 어른처럼 등을 쓸어 주었다. 등을 토닥여주며, 그녀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쓰러진 간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세정이 눈물을 그쳤을 때, 나는 가방을 건넸다. 누나가 말한 대로 아저씨는 떠났고, 아줌마는 정신을 놨다고, 똑같이 전했다. 그녀도 나와 같은 질문을 했지만, 나는
아는 게 없어 답을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세정에게 두정의 소식을 묻자, 그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두정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언니가 연락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한번 통화하고, 그 뒤로 나도 못했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세정의 볼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나 이제 애 아니거든?”
“누가 너 애래? 근데 너 왜 이렇게 늦게 다녀?”
“나 검정고시 학원 다녀. 독서실도 다니고.”
“잘 생각했어! 진짜, 축하해.”
“뭘,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닌데.”
“아니야. 네가 시작했다는 건 합격한 거나 마찬가지야.”
우리는 각자 무릎에 팔을 괴고,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헤어지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나의 손에서, 세정의 눈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오빠, 어디서 지낼 거야?”
“이 근처 여관에서 자려고.”
“그래. 오빠, 내일 아침에 올래? 내가 아줌마, 아저씨한테 말해둘게. 나 딸처럼 생각해 주시고, 고마운 분들이야. 그리고 오빠, 주민센터에 가야 하는 거 알지?”
“그렇지. 오빠가 아직은 신분이 없다.”
나는 일부러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지만, 오랜 감옥 생활 끝에 출소한 사람처럼 변해버린 세상과 사람들이 무서웠다. 세정이 가방을 내려놓더니 철제 필통 아래쪽에서 네잎클로버 책갈피를 꺼내 내 손에 올려놓았다.
세정이 중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 사귄 친구 민아가 준 거라며 코팅된 네잎클로버를 가져온 적이 있었다. ‘네잎클로버는 행운이라는 뜻이 있대’ 세정의 말에 두정 누나는 ‘행운을 그냥 주기도 하네’라며, 앞뒤로 열심히 돌려보다가 끝에 구멍을 뚫고, 색실을 연결해 책갈피를 만들어 주었다.
“이거 기억나지?”
“당연하지.“
세상은 빨리도 변했고, 세정은 ‘그런 게 나왔어, 이제 이런 게 된대’라고 우리에게 알려줬었다. 우리는 세정이 비밀 노트에 그려줬던 핸드폰을 보며 신기해했고, 세정이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을 상상했었다. 세정이 그려준 세상과 내가 썼던 이야기는 얼마나 다른 걸까.
내 머릿속은 틈만 나면, 생각과 생각의 끝이 한데 묶여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만 가자.”
나는 바닥을 짚으며 일어섰다.
“오빠, 다리 괜찮은 거야? 병원 꼭 가봐.”
“잔소리쟁이들. 알아서 할게.”
“언니랑 나랑 똑같거든. 나 오늘 오랜만에 일기 쓸 거야.”
“와, 그 일기 이제 못 훔쳐봐서 아쉽네?”
세정의 집 앞에서 내일 보자고 인사한 후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녀는 한 계단 오르고 돌아보고, 한 계단 오르고 돌아보았다. 내가 머리에 뿔 났다고 두 손가락을 머리에 갖다 대자 세정이 하하, 하고 웃었다.
“오빠!”
“응?”
“오빠, 먼저 가! 내가 가는 거 봐줄 게.”
“됐거든? 들어가서, 방에 불 켜. 그럼 나도 갈 거야.”
“아니야, 오빠 먼저 가. 뒤에 누가 서 있는 기분,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오빠도 알았으면 좋겠어. 어서 가.”
세정이 현관문을 열고, 가방을 모두 집어넣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밖으로 나와 대문 앞에 섰다. ‘빨리, 빨리’라며 손짓하는 그녀의 재촉에 마지못해 뒤돌아 한 걸음 뗐다.
“오빠, 걱정하지 마. 이제 다 잘될 거야.”
내 뒤에 서서, 내가 해주었던 말을 돌려주는 세정을 보니 안심이 됐다.
“오빠도 이제 공부하고, 대학도 가고.”
“잔소리쟁이.”
골목 끝에 닿을 때까지 세정은 들어가지 않고 내 뒤를 지켜주었다. 골목 끝의 가로등 아래에 서서 숨죽였다. 대문이 열리고, 세정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기차를 타고 누나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누나가 좋아하는 장미를 담은 향수를 사서,
의기양양하게, 아니 철없던 때처럼 괜히 웃어 보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