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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09. 2020

겨울, 이별

이소라-겨울, 이별


겨울, 이별 듣기


 나는 항상 그를 기다리게 하곤 했다. 그는 여전했고 달라진 건 나뿐이었다. 그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 드는 걸 보고 걸음을 옮겼다. 항상, 30분씩 늦었다. 그 겨울엔. "진아." "응." "진아." "왜?" "진아." "할 말 없거든 부르지 마." "진아." "또 부르면 화낸다?" "부르면 안 돼?" "안돼." "왜, 왜 안돼?" "넌, 안돼." 난 안된다고. 금세 떨어지고 마는 고개. 내 머리 위에 얹어지는 의 손가락이 느껴졌다. 마디마디, 너무 가느다란 의 손가락. "진아." "나랑 이름 바꿀래? 내 이름이 그렇게 좋아?" "사랑해." 고맙게도 시간이 멈춰주었다. 째깍거리던 시곗바늘도 3시 20분에서 멈춰주었고 의 뒤를 지나던 한 무리도 멈춰주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그 역시, 멈췄기 때문이다.




 그의자에 기대 있었다. 딱딱한 의자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사잡지얼굴이 가려져 있어 눈이 감겨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잠이 든 것 같았다. 내가 왔음에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그를 불렀지만 그는 미동도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숨을 크게 내쉬더니 잡지책을 탁자 책장에 꽃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 "나 먼저 커피 마셨어. 너 시켜." "그래." 난 손을 흔들었다. 곧 종업원이 와서 메뉴판을 건넸고 난 그가 좋아하는 커피를 시켰다. 그는 항상 커피 두 잔은 마시고서야 일어선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그의 앞에 두고 갑자기 마시기 싫어졌다고 말하곤 했다. "넌 왜 이렇게 항상 늦어?" "미안해." "맨날 미안하다지." "미안해, 정말." "다음에 다시 볼 때 또 늦으면 다신 안 볼 거야." "응." 그는 기대고 있 등을 떼어 일어섰다. "화장실 갔다 올게." 의 앞으로 커피잔을 내밀다 내 손에 가둬두고 향을 맡았다. 

 가방 안에서 편지를 꺼냈다. 에게 줄 거라고 밤새 썼는데 전해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흰 봉투 안에 든 핑크빛 편지지가 선명히 드러났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져 다시 가방 안에 넣고 말았다. 가방 안에서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너, 차갑게 말하는 너, 오늘 떠나는 너. 사랑하지만 보내줄게. 아니, 그냥 모른 척할게. 잘 가라고 말할 거야. 안녕, 잘 가. 행복해야지. 다음에 다시 만날 땐 정말, 늦지 않을게]라고. 외울까. 막상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면 어떡하지. 이까짓 것도 못 외우니. 넌 그 말만 하면 돼. 안녕, 잘 가. 또 보자. [겨울 눈이 투명하게 춤추네 너무 평화로운 오후 초라한 얼굴로 난 시린 눈을 감추며 이별해 안녕 떠난다며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들로 슬프게 해 안녕 떠난다면 조용히 눈을 감아줄게 나를 너무 아프게 만드네 영원히 묻어 둘게 겨울 위에] "뭐하냐?"

 난 메모지를 반으로 접볼펜과 메모지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내가 둔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몇 시 비행기지?" "너 지금 물은 것 까지 합하면 정말 백번이야. 1시 30분 비행기. 알면서 왜 자꾸 물어? 비행기도 밀릴 까 걱정이야?"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떠나는 날까지 꼭 그렇게 평소처럼 대답해야겠냐고. 갈 거면 좀 따뜻한 모습으로 떠나 주면 안 되나. "그건 왜 안 물어봐? "응?" "언제 오냐고." "언제 와?" "나 참... 그건 300번이겠다. 야." "응?" "너 결혼하는 건 봐줘야 하는데. 못 가도 네가 이해해. 연락은 하고." 연락은, 너만 잘하면 된다고. 난, 결혼 같은 건 생각 없다고. 나는 입안에서 맴도는 그 말들을 씹고, 씹고. 결국 아무 말도 하못했다. 시간이 흐르는데, 또 한마디 더하면 그때 식당에서처럼 그가 말없이 나가버릴까 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무슨 말이든 해야지 라고. 이러나저러나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그 생각을 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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