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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11. 2020

사랑하는 현우

새소년 - 고양이

새소년 - 고양이 듣기


 "그 집 고양이가 죽었대." 남편은 토스터기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튀어나온 식빵을 꺼냈다. "토스터기 새로 사야겠다." 나는 빵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우걱우걱 씹어먹는 모습을 보다가 다음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 주스를 건네며 물었다. "왜 죽었대요?" "글쎄? 옆집 남자가 그러던데? 죽었다고. 당신이 내다 버린 내 가죽잠바 말이야. 그 속에 있었대." 남편은 입가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손바닥으로 스윽 닦고는 싱크대 쪽으로 와 손을 털었다. 나는 몸을 돌려 프라이팬 위에 올려진 감자전을 뒤집었다. "감자전 먹고 갈래요?" "아침부터 웬 감자전?" "그 고양이 주려고 감자 삶다가 당신 전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고양이가 죽어서 소용없게 됐네요." 드르륵 의자가 뒤로 밀리더니 남편이 일어섰다. '이따 와서 먹을게.' 곧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다. 남편은 내 뒤로 와 어깨를 감싸 쥐곤 '께름칙해.'라고 속삭였다. 그때 기름이 튀어 내 소매 끝에 묻었다. 그러자 그 고양이가 생각났다. 윤기 있는 노란빛 털엔 어울리지 않던 흰색 반점. 물감이 튄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마치 내 소매 끝에 묻은 기름이 녀석의 흰색 반점 같아서 바지에 소매를 슥슥 닦았다. "고양이 이름 생각나요?" 넥타이를 조이던 남편의 손이 멈췄다. 짐짓 녀석의 이름이라도 생각하고 있는 건지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내 '아....' 하고 알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현우였지. 내 이름이랑 같았어. 잊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이름 옆집 남자가 지은 거야?"



'현우'는 암컷이었다. 옆집 남자가 '현우'를 집에 데리고 왔었다. 급한 일이 있어 집을 비우게 됐으니 하루만 맡아달라고 말이다. '현우'는 성가신 일 같은 건 없으니 하루만 봐 달라는 그의 말에 마침 남편출장을 가고 혼자 있어 적적하던 차에 현우를 안아 들었다. 거실에 내려놓자 접시에 담긴 사료를 금방 먹어치더니 접시 끝에 묻은 부스러기까지 핥아먹고는 창위에 올라가더니 로 얼굴을 가리고 잠을 청했다. 현우를 지켜보다 비가  것처럼 어두워진 하늘에 작은 방 창을 닫고 왔다. 그날은 우리 둘 다 내내 잠만 잤고, 성가신 일 없을 거라는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동이 틀 무렵이었을까. '현우'의 울음소리에 잠이 깬 나는 녀석이 있던 창틀로 시선을 돌렸다. 남편이었다. 남편이 창틀에 있던 '현우'를 들어 올려 가슴에 품었다. "당신 언제 왔어요?" 내 손이 남편을 향해 뻗어나갔으나 곧 허공에 멈췄고 내 말은 바닥에 떨어져 스며들었다. 남편은 자신에게로 파고드는 '현우'의 볼에 얼굴을 대고 있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현우야. 내 이름이랑 같지." 난 남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순간 나를 바라보는 '현우'의 눈을 보고 나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섬뜩함을 느꼈다. "어, 당신." "언제 왔어요? 들어가요." "이 고양이 현우야." "이 고양이는 주인이 있어요. 함부로 이름 짓지 말아요." "뭐 어때? 이름이 두 개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나를 닮았어. 창틀에 처박혀서 자고 있는 게 꼭 나를 닮았단 말이야." "그만해요." 난 남편의 등을 밀었다. 녀석을 남편에게서 떼어놓고 나는 남편과 함께 침실로 들어갔다. 아침 10시쯤 옆집 남자가 '현우'를 데리러 왔다. 제 주인에게 안겨 돌아가는 '현우'를 보면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 후 '현우'는 남편의 출근길을 동행했다. 남편의 뒤를 쫓아 담벼락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몇 달 뒤 남편의 오래된 가죽잠바를 내다 버렸는데 그 속에 '현우'가 있었다. 기분이 나빠져서 버리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다시 집으로 가지고 들어왔는데 그 후로 집 앞에서 몇 번이나 울음소리를 낼 때마다 삶은 감자를 내주면 한입에 물고 달아나곤 했다. 내 탓인가. 남편의 가죽잠바를 다시 내다 버린 것이 '현우'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현우'는 추운 새벽 그 속에 들어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내가 본 남편은 과연 누구였을까. 현우에게 주려던 감자와 감자전을 모아 쓰레기봉투에 넣어 집 앞에 내놓았다. 남편은 '현우'의 이름조차 잊고 있었다. 자신이 지어준 이름마저 말이다. '현우'는 자신에게 이름을 준 남편을 특별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현우'라는 이름을 가진 암고양이가 말이다.


그대는 정말
아름다운 고양이
그대는 정말
아름다운 고양이
빛나는 두 눈이며
새하얗게 세운 수염도

그대는 정말
보드라운 고양이
창틀 위를 오르내릴 때도
아무런 소릴 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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