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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27. 2020

그 말을 믿는가

어반자카파 - 널 사랑하지 않아

 "우리 언제 헤어지는데?" "헤어지고 싶을 때?" 의미 없는 대화의 연속은 곧 그와 나의 절정이 무너져 내림을 예고한다. 우리는 끝없이 오를 것 같던 화살표의 정점에서 추락을 보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는다. 리고 다급하게 무너지는 어깨를 추스른다. "고맙지?" "고마워." 스멀스멀 피어나는 담배연기. 나는 벗어날 수 없는 기침에 감정을 맡긴다. 울어도 좋고 고개를 숙여도 좋고 이제 그만 펴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도넛 만들어 줄래?" "넌 천사 좋아했잖아." "마지막인데 네가 파닥거리는 꼴은 볼 수가 없어. 웃기잖아, 하하." 하하. 그가 웃는다. 내가 만들어낸 도넛인지 천사의 링인지가 동아리방의 천장에 피어올랐다. 나는 가라앉는 연기 에 갇힌 그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날 사랑했다는 말, 믿은 적 없어."  말을 하며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고 문고리를 잡았다. 웃음이 터져서 거짓말은 할 수가 없었던 나는 마지막 순간에 뻔히 들킬 거짓말을 뱉었다. "믿고 싶게 했던 네 노력 잊지 않을게." 나는 울며 웃고 있었다. 총소리인가, 나는 무언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에도 돌아보지 않았다. 바보 같기는, 그가 들고 있던 책이 손에서 떨어졌으리라.


당신은 누군가 당신을 대신해서 저 문을 열어봐 주길 기대한 적 있는가. 꿈처럼 스르르 들어가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 적 있는가. 당신이 원했던 것을 말할 용기는 있었나.

"다른 사람을 사랑해." "날 사랑한다며." "너도 사랑했어." 그가 내 입술에 키스했다. 그는 나를 안고 사랑했었다고 말했다. 미안하다고도 했다.


 차라리 그때 그를 죽여버릴 걸. 그가 뱉은 말을 모두 쓸어 담아 함께 파묻어 버릴 걸. 나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의 자취방에 들어가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그의 담뱃갑 속에 꼬부라져서 잠이 들었다. 나는 이 이별이, 이런 쓰레기 같은 감정이 빨리 날아가버리길 기도했다. 그랬다. 애써 달려가 보면 그는 이미 언덕 너머 내리막길 끝 골목길 안으로 사라진 후였다. 헉헉 거리며 그를 쫓아가는 나의 흩날리는 머리카락은 시간이 흐를수록 헝클어지고 내 입술은 바짝 말라 그의 키스를 받아줄 수도 없을 테지.  

"나는 너를 믿고 싶었어. 너의 그 말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어반자카파 - 널 사랑하지 않아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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