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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24. 2020

골목길 그 아이

가을방학 - 속아도 꿈결

 부모님도 일하러 가시고 언니들도 학원에 가 버린 오후 시간. 나는 혼자 베란다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보거나 옆집 친구와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먼저 들어가 버리면 마루에서 얼마 전 tv에서 본 발레리나 흉내를 내다가 발이 아파서 주저앉아 문질문질. 할머니가 주고 가신 복주머니를 책상 서랍에서 꺼내 구슬을 잔뜩 쏟아붓는다. 문단속을 하고 신발을 단단히 신고 타다다다 계단을 내려와 현관을 나선다. 오늘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 볼까. 세탁소 골목은 지난번에 갔었지. 그럼 더 멀리 가보자. 큰 집들이 많은 저쪽 골목이 좋겠다. 큰 집은 큰 대문을 가졌다. 큰 나무도 있고 커다란 개도 산다. 그런데 우편함은 크지 않다. 편지의 크기는 같아서일까? 나는 복주머니 안에 든 구슬들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한 발로도 뛰었다가 두발로도 뛴다. 나무 끝에 매달린 열매를 따려고 손을 뻗었다가 아뿔싸 발을 헛디뎠다. 허리에 찬 복주머니가 입을 벌리고 구슬을 쏟아냈다. 다그르르르르 골목 아래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구슬들이 보석처럼 흩어져 여기저기 숨어든다. 괜찮다, 이제 외롭지 않아. 구슬을 다 찾을 때까지 나의 여행은 계속된다. "엄마가 오늘도 너무 늦었지, 오늘 뭐하고 놀았어?" "어~ 재밌는 거."


산책이라고 함은 정해진 목적 없이
얽매인 데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갈 것

누굴 만난다든지 어딜 들른다든지
별렀던 일 없이 줄을 끌러 놓고 가야만 하는 것
가을방학 - 속아도 꿈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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