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연연하는 그림일기 - 시도한 것
나는 무엇을 시작하든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고 트랙의 반이라도 갔다면 그것은 내 인내심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는데 대부분이 헛짓거리였다. 그건 내가 그 시도를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헛짓거리’라 말하는 건지도 모르지만(하하).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되거나,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거나, 파일럿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변화와 변화에서 오는 새로운 자극이 부담스러웠다. 성격 테스트지에 늘 등장하는 ‘새로운 도전,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 관련한 질문들 앞에서 나는 늘 망설였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어서, 나는 도전을 좋아하나, 아닌가, 좀 더 익숙한 환경을 선호하긴 하지 라며 적당한 자리에 체크했다.
회사 생활을 하는 내내 어떻게 이렇게 하루하루 새로운 이슈가 터지는 것인지, 동료들끼리 ‘에브리데이 뉴데이’를 인사처럼 외쳤다. 매일이 새로운데 또 새로운 것이 온다? 재밌네, 참 재밌어.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될 테니, 라며. 그리고 어쩌겠는가, 나는 월급쟁이니 가자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가끔, 우리도 회사의 시행착오를 보며 왜 돈을 써가며 이 헛짓거리(재등장)를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것인가, 우리의 시간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오늘부터 여러분이 오를 사다리는 수직으로 된 것이 아닌 횡으로 갔다가 두 칸을 뛰어올라야 하는 사다리입니다, 같은 것 말이다.
우리를 괴롭게 했던, 말없이 사라진 파일럿 프로그램들은 연말 보고 때 다시 등장한다. ‘Lesson learn’ 슬라이드에 ‘좋은 시도이긴 했다’ 그리고 곧 슝 사라진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자네? 좋은 시도였다고?
아이디어 회의 때는 투명한 주먹을 휘두를 때도 있다. 현실 가능성을 앉은자리에서 급히 결론 낼 수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속으로 헛 주먹질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저 나는 만면에 아쉬움과 미소가 공존하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종종걸음으로 회의실을 빠져나오곤 했다.
나무가 서 있는 강변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리다 말았다. 그릴 정도의 실력이 되는가 하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기본기 다지기가 더 필요해 라며 물러섰다. 더 연습해서 그려야지. 스케치북을 넘길 때마다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보며 아쉬운 마음에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다 망한 것들만 있는 건 아니지, 라며 나를 위로해 본다. 그러면서 도전하는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게으르고, 생각 없고, 추레하고, 후진지 알았다. 그럼에도 용기를 냈었고, 시도한 것 자체가 놀라운 것임을 깨달았다.
나의 도전은,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도장을 꽉 찍어 준 것이다. 찍힌 도장이 나를 만들고, 내 주변을 만들고, 다음을 기약하게 한다.
브런치에서의 첫 연재, 그림일기는 머어어얼리 까지 가보자.
오늘의 그림일기 끝(배경화면: 요시고 사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