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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형 Sep 29. 2019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기

책이다 라이브 독서모임 12회차


1. 밀란 쿤데라의 생애

체코슬로바키아 브륀 태생의 소설가. 1950년 당에 반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공산당에게 추방(이때의 경험은 그의 소설 <농담>의 주요 모티프를 이룬다)을 당했으며, 1956년 재입당이 승인되었으나 1970년에 또다시 추방당하게 되었다. 이후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그는 1981년에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며, 1993년부터는 자신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쓰는 한편, 이전에 체코어로 저술한 작품 또한 대부분 프랑스어로 직접 번역하였다.


2. 소설 속 철학 개념 살펴보기

(1) 니체의 영원회귀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p.9)



영원회귀란 말 그대로 세상 모든 것이 영원히 회귀한다는 믿음을 말한다. 자연의 모든 과정을 결정하는 유한한 수의 요인들이 존재하므로, 그 수의 가능한 조합들이 존재한다면, 이 수가 다 찬 뒤에는 이전의 조합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 니체는 이처럼 영원히 창조되며 영원히 파괴되는 세계를 ‘디오니소스적 세계’라고 이야기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초인)의 태도를 니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Q. 만약 삶이 끊임 없이 반복된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 소설 속 인물의 태도 :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으므로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주어지지 않는다.(p.357)


Q. 만약 삶이 한 번 뿐이라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2) 플라톤의 이데아

“그는 플라톤의 <향연>의 유명한 신화를 떠올렸다. 옛날에 인간은 야성을 동시에 지녔고, 신이 이를 반쪽으로 분리해서 그때부터 서로 반쪽을 찾으려고 헤맸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욕망이다. (중략) 그런데 훗날 그에게 숙명적인 여자, 자신의 또 다른 반쪽을 진짜 만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누구에게 호감을 주어야 할 것인가? 바구니 속에서 발견한 여자인가? 아니면 플라톤 신화의 여자인가? 그는 꿈속 여자와 함께 이데아 세계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p.384)


플라톤의 ‘이데아’란 사물과 사고들이 지닌 완전불변한 본질을 말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세상 만물엔 각각의 이데아가 존재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은 이데아를 베낀 일종의 복사물에 불과하며, 우리가 이를 ‘그것’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미 이데아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 소설 속 인물의 태도 : 그는 침대에 앉아 잠결에도 자기 손을 잡고 곁에 누워 있는 여자를 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느꼈다. 그녀는 아마도 아주 얕게 잠들어 있었던지 그 순간 눈을 뜨고 당황한 눈길을 보냈다.

“뭘 봐?” 그는 그녀를 깨우지 말고 다시 재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의 생각 속에 새로운 꿈의 씨앗을 낳게 할 만한 단어로 대답하려고 애썼다.

“별을 보고 있어.”

“거짓말하지 마. 당신은 별을 보고 있지 않아. 당신은 땅바닥을 보고 있어.”


3. 줄거리로 읽기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이다.” (밀란 쿤데라)


(1) 작품의 구성

작품은 총 7부로 나뉘며, 토마시의 삶을 보여주는 1부와 5부, 그의 연인 테레자의 삶을 보여주는 2부와 4부, 두 사람의 마지막을 그리는 7부가 한 축을 이루고, 또 다른 연인 사비나와 프란츠의 삶을 그리는 2부와 6부가 다른 축을 이룬다 .



(2) 무거움 vs 가벼움 (파르메니데스의 이분법)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둠,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찬 것, 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 극단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이 이론은 모든 것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는 극단적 이분법이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안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단 이 경우는 예외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p.13)


(3) ‘가벼운 사랑’을 추구하는 토마시와 운명론에 기댄 ‘무거운 사랑’의 테레자

우연히 간 보헤미아 술집에서 만난 두 사람. 토마시는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고, 곧 프라하로 찾아온 그녀와 함께 한다. 문제는 두 사람이 지닌 사랑의 태도가 극명히 다르다는 점에 있다. 의사인 토마시는 여자와 섹스는 하지만 결코 잠을 자지는 않는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여자들과의 섹스는 축구경기 관람처럼 포기할 수 없는 일이며, 그저 에로틱한 애정에 불과하다.



Q. 사랑 없는 섹스는 가능할까?


반면 보헤미아 술집 종업원인 테레자는 세상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매사를 비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서로 비슷비슷한 육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갇혀 있는 뻔뻔스러운 세계’를 살아가던 중, 토마시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토마시를 통해 아무 만족도 주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토마시의 가벼운 사랑, 즉 바람기로 인해 질투심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사랑에 대한 태도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의 삶이 늘 행복하지는 않았다. 권태를 느끼기도 했으며,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편(토마시)과 ‘잘 나가던’ 직장을 아내(테레자)로 하여금 떠나야 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서로에게 맞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은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 한 것이다.


Q. 토마시가 테레자를 만난 것은, 테레자가 토마시를 만난 것은 행운일까?

Q. 두 사람 삶의 결론은 해피 엔딩일까?


(4) ‘가벼운 사랑’을 추구하는 사비나와 ‘무겁고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프란츠

토마시의 옛 애인 사비나는 스위스 제네바로 망명해 아내가 있는 남자 프란츠를 만난다. 두 사람의 삶 역시 토마시-테레자의 관계처럼 상반된다. 공산주의 세계에서 이념을 강요받으며 자란 사비나는 억압된 세계에게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며, 아버지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프란츠는 관계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프란츠에게 ‘음악’이 해방이라면, 사비나에게는 야만적인 소음일 뿐이다. ‘행렬’은 프란츠에게 답답한 삶을 벗어나는 일탈이지만, 이를 강요받았던 사비나에게는 혐오의 대상일 뿐이다. 결국 사비나는 프란츠를 떠나고 만다.


이후 사비나는 토마시의 아들을 통해 토마시와 테레자가 오래도록 함께였으며 함께 죽음을 맞이했음을 알게 된다. 토마시와, 프란츠와 함께 더 오래 있었다면 그녀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그녀를 무겁게 짓누른다.


Q. 사비나와 토마시 혹은 사비나와 프란츠가 함께 더 오래 있었다면,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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