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형 Oct 13. 2019

이상 <날개> 읽기

책이다 라이브 독서모임 13회차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1. 이상의 생애

본면 김해경(金海卿). 일제 강점기의 시인, 작가,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로 일제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이자 아방가르드 문학가로 평가받는 인물임. 보성고보 재학 중 화가 지망생이 되었으며, 1925년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유화 <풍경>이 입선하였음. 이듬해인 1926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부에 입학하여 이를 수석 졸업하였으며, 졸업기념 사진첩에 처음으로 이상(李箱)이라는 별명이 드러나게 됨. (친구인 구본웅에게 선물로 받은 화구상자가 오얏나무로 만들어진 상자였기에 그 뜻을 ‘오얏나무 상자’로 풀이함)


졸업 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 받았으며, 이후 조선건축회의 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기도 하였음. 1930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일반에게 홍보하기 위해 펴내던 잡지 《조선》 국문판에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데뷔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 《12월 12일》을 필명 이상(李箱) 아래 연재하였으며,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가역반응〉 등 20여편을 세 차례에 걸쳐 발표하였음.


1931년 이상은 폐결핵 감염 사실을 진단받았고 병의 증세는 점차 악화되었음. 1933년 직책에서 물러난 뒤, 요양 중 알게 된 기생 금홍과 다방 제비를 개업하며 동거하였음. 같은 해 잡지 《가톨닉청년》에 〈꽃나무〉, 〈이런 시〉 등을 국문으로 발표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이태준의 도움으로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했지만, 독자들의 거센 항의와 비난으로 인해 15회를 끝으로 연재를 중단하게 됨.


이후 1936년 구본웅의 알선으로 창문사에 근무하면서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 창간호를 편집 발간했으며, 단편소설 〈지주회시〉, 〈날개〉를 발표하면서 평단의 관심을 받았음. 이후 1937년 2월 사상 혐의로 동경 니시간다 경찰서에서 피검된 후 한 달 정도 조사를 받다 폐결핵 악화로 보석으로 출감한 뒤,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28세를 일기로 사망함.


2. 이상에 대한 평가

한국 근대문학사에 가장 큰 충격과 당혹감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 기성 문학의 형식 파괴와 난해성으로 인해 ‘문단의 이단아’로 평가받는 동시에, 의식의 흐름 기법을 도입한 ‘한국 최초의 초현실주의 작가’로 추앙받기도 함. 이처럼 그의 문학이 다양한 평가를 받은 이유는 그의 작품 기법이 전통적인 문법을 탈피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폭넓은 의미망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임.


3. 이상 문학에 대한 평가

그의 문학에 대한 평가는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음.

(1) 형식적 방법에 대한 연구 : 언어 문체론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으로 이상 문학의 독특한 언어체계와 특징을 해명한 연구 방식. 

(2) 정신분석학적 방법 : 작가의 내면 의식을 조명한 것으로 이상이 가지고 있는 리비도적인 충동, 유아기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정신적 상처가 그의 작품 속에 어떻게 용해되어 나타나는가를 밝히고자 함.

(3) 해석적 방법 : 작품의 내용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 이상의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자아와 세계의 단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


4. 도입부 문장 읽기

(1)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 매춘부인 아내에 빌붙어 살아가는 룸펜 지식인인 ‘나’는 정상적인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인간이라 할 수 있음. 이 문장(질문)은 박제된 동물처럼 사고력과 행동력을 상실한 주인공의 무기력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음.

(2)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 구시대적인 관습에 반발하고 20세기적인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을 표현. 모더니즘적 소설을 추구한 이상의 입장이 반영된 문장.


5. 줄거리로 소설 읽기

(1) 도피적 삶 : 소설 속 ‘나’의 삶은 매저키즘적 삶이라 할 수 있음. 이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 자아를 지탱해 나갈 수 없는 사람이 안정을 느끼기 위하여 부담스러운 자아를 떨쳐버리고, 자기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나 권력에 복종하고자 하는 노력을 가리킴. ‘나’는 외부와 격리된 채 하루종일 골방에 틀어박혀 무위도식하는 인물이며, 돋보기로 휴지를 그을리는 장난을 하거나 손잡이 거울을 마시거나 화장품 냄새를 맡는 ‘유아적인’ 정신 상태에까지 물러나 있는 상태임.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그날을 그저 까닭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나’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의식마저도 사라진 진공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자기 자신의 생산 없이 모든 선의 원천을 외부에서 찾는 ‘수용지향형’ 인간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음. 물론 그 ‘외부’란 그의 아내이며, 그에게서 우리는  이런 관계에 대한 아무런 회의나 불만을 찾을 수 없음.


Q. 나는 어떤 때 행복한가? 어떤 때 불행한가?


* 에리히 프롬의 성격유형론 : 그는 성격유형을 비생산 성격유형과 생산 성격유형으로 구분하였음.  비생산 성격유형은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하는 것으로, 수용(receptive), 착취(exploitative),  저장(hoarding), 시장(marketing) 지향이 여기에 속하며, 생산 성격유형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려고 노력하는 인간발달의 이상적 상태를 말함.


가. 비생산 성격유형

  a. 수용지향적 성격 : 자신이 원하는 것. 즉 사랑, 지식, 만족등을 외부적 원천인 타인에게서 얻기를 기대하는 유형. 사랑하기보다 사랑 받기를 원하며, 외부적인 지원이 없이는 아주 작은 일도 할 수 없다고 느낌. 

  b. 착취지향적 성격 : 타인에게서 수용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힘 혹은 책략으로 탈취하는 유형. 이런 유형의 사람에게는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탈취한 것이 그냥 주어진

것보다 훨씬 가치있음. 

  c. 저장지향적 성격 : 자신이 저장하여 자기수중에 가지고 있는 것에서 안전을 느끼는 유형. 자신 둘레에 장벽을 쌓고 내부에만 많은 것을 축적하며, 외부침입자로부터 그것을 보호하고 가능한 한 지키려고 함. 

  d. 시장지향적 성격 : 피상적 품질에 가치를 두는 성격유형. 이런 사람에게 개인의 성공 혹은 실패는 자신을 얼마나 잘 파는가에 의존되며, 개인의 성격은 단순히 팔려는 상품이 됨. 그러므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개인의 인간적 자질, 기술, 성실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훌륭하게 포장되어 있는가임.


나. 생산 성격유형

  생산적 성격을 지닌 사람은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외부 환경과의 교류시에도 정확한 지각 능력을 바탕으로 주변 환경을 왜곡하지 않음. 또한 지각된 내용에 자신의 창의력을 덧붙여 풍요롭게 만듦.


Q.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2) 무지한 삶 : 그렇다면 주인공이 아내의 직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이 가능할까?


아내에게 직업이 있었던가?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중략) 아내에게 내객이 많은 날은 나는 온종일 내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야만 된다. 불장난도 못 한다. 화장품 내음새도 못 맡는다. 그런 날은 나는 의식적으로 우울해 하였다.


이러한 ‘나’의 모습 역시 매저키즘의 행동방식으로 설명 가능하다. 다시 말해, 강력한 힘(아내)에 자신을 굴복하여 자신의 모든 힘과 긍지를 포기하고 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유를 상실해 버린 ‘나’는 아내는 물론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도 벗어난 상태인 것.


Q. 나는 누구인가?


(3) 자아회복의 단초 : 위와 같은 삶을 살아가던 ‘나’는 손님이 다녀간 뒤 아내가 돈을 주기 시작하면서 아내의 직업에 의문을 품기 시작함. 그리고 아내에게 왜 돈이 많은가를 연구한 끝에 그 돈이 ‘실없는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까닭모를 내객들이 놓고 가는 것’임을 깨닫게 됨. 그리고 자신에게 아내가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일종의 ‘쾌감’ 때문이 아닌가 어렴풋이 짐작함.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 - 그 이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쾌감이라면 어떤 종류의 쾌감일까를 계속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불 속의 연구로는 알 길이 없었다.


결국 ‘나’는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 밖으로 나오게 됨. 머리맡에 모인 돈을 아무에게라도 줌으로써 쾌감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 이러한 외출의 과정은 자아의 각성 과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나’가 수용지향적 성격의 인간에서 생산지향적 성격의 인간으로 발전해 나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음.


Q. 나는 무엇을 통해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가?


(4) 그리고 자아찾기 :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내가 병에 걸린 자신에게 감기약이 아닌 수면제를 먹여왔다는 사실을 알게 됨. 이는 아내가 ‘선’이 아닌 ‘위선’의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며, 그는 이로부터의 탈출을 외치게 됨.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6. <날개>의 의미

(1)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의 심리는 비인간화된 사회구조 아래서 야기되는 소외의식이 대부분을 차지. 이들의 소설에는 생활공동체 개념의 분열, 개성 없는 군중과 소외된 개인, 공간적 방향성의 상실 등이 나타나며, 이상의 소설은 그러한 인물과 환경의 상호작용보다는 인물 내면의 의식을 형상화하는데 치중했다는 것이 특징임.

(2) 우리는 이를 한 개인이 아닌 작가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도 읽을 수 있음. 나라를 일제에 강탈당한 1910년에 태어난 뒤, 줄곧 일제강점기를 자라온 이상에게 조국의 현실은 어쩌면 당연시되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음. 그러나 아내의 실체를 파악하고, 날개가 돋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자식이 속한 식민지라는 현실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작가의 염원을 담았다고 볼 수 있는 것.


* 위 내용의 핵심은 장병호 비평가의 ‘닫힌 시대 지식인의 초상 - 이상의 <날개>에 나타난 소외의 의미’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