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극펭귄 Jan 01. 2017

멀미

멀미


자궁은 나의 바다이자

나의 하늘이고

나의 땅이었다.

그리고 자궁이 곧 나였으므로,

내가 바다이고

내가 하늘이고

내가 땅이었다.


얼마 후 세상에 나와

다른 바다

다른 하늘

다른 땅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바다도 아니고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니었다.


그때부터였다.




연말연초라는 시간은 그래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 최소한 그런 점에선 의미가 있다.

물론 2016년 12월31일 11시59분부터 2017년 1월 1일 1시 15분까지

-그러니까, 카톡이 메세지 폭주로 정지된 시간동안-

잠깐 생각해본다고 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기는 어려웠다.

다만 갑자기 둘러본 풍경에서 멀미를 느꼈을뿐이다.


나와 내가 속해있는 곳이 같다면 멀미는 없다.

멀미는 나와 내가 속해있는 곳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다.

객체로서의 나, 디아스포라, 뿌리없는 식물, 우주의 먼지...

그렇게 生의 본연적인 멀미가 찾아온다.

어떻게본다면 나를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멀미는 좋은 신호라고 볼 수도 있다.


내가 내 발로 걷고 있다면 멀미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정신을 잃은 채로 어딘가에 타서 이동하고 있다.

그러다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이런 날에, 갑자기 창문을 열어보곤 깜짝 놀라는 것이다.

앗, 내가 어느새 이렇게 멀리까지 왔다니!

그런데다가 전혀 내가 의도한 방향이 아니었다니!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내 발로 땅을 딛고 걷겠소.


그러나 여전히 이 구름 저 구름을 타고 있다.

그게 이데올로기인지 아니면 생계를 위한 수단인지 뭔지 몰라도

삶의 다양한 층위들은 이미 나에게 걷기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나에게 뿐만아니라 어쩌면 세상은 이미 선물을 잃어버린 술취한 산타처럼

사람들에게 줄 지면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보따리속에 남아있는 마지막 선물은 자기 발로 걷고 있다는 착각뿐일지도.


사실 나는 인생에 대한 추측에 불과한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제법 단정적이고 비관적으로 정리하려 했으나

글을 쓰면서 틀어놓은 오스카 피터슨의 연주가 너무나 좋은 관계로

보싸노바 리듬처럼 마무리하고 싶어진다.


만약 내 발로 스스로 걸어가려는 시도가

오직 방황과 추락만을 예정하고 있다면,

어디든 내가 속한 곳이 그저, 가끔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흘러나오는 곳이기를

그래서 춤이라도 출 수 있기를


그러니까 그,

새해에는.

작가의 이전글 Gymnopedie no.1 : 개구리 여행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