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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펭귄 Jan 25. 2018

잃어버린 계란볶음밥을 찾아서

1

신발을 처음 신어 본 고양이가 어색하게 걷는 영상을 봤다. 발바닥으로 직접 땅을 딛지 않으며 걸어보는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기들은 뭐든지 손으로 만져보려 한다. 그러면서 만져선 안 되는 것들도 배워간다. 뜨거운 것, 날카로운 것, 뾰족한 것, 더러운 것. 아기에게 현실이란 손과 발이 닿는 곳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말을 배운 다음에는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저게 뭐야?'라고 물어보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것의 이름을 알면 아는 것으로 분류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삶은 손과 발이 닿지 않는 '이름'들로 둘러쌓이게 되며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상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렇기에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주변에 떠돌아다니는 여러가지 '이름'들의 실체를 잘 아는 것처럼 굴어야 한다.


나는 얼마전부터 이 '이름'들 사이를 떠도는 것을 다소 어색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있던 단순한 반복 작업을 실수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수많은 지폐를 세다가 갑자기 몇 장까지 셌는지 까먹은 것이다. 열심히 지폐를 세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슬그머니 지폐를 다시 넘기기 시작했지만, 사실 세고 있지는 않다. 그런 내모습이 신발을 처음 신어 본 고양이의 걸음걸이처럼 이상해 보일까봐 두렵다.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자신있게 행동할 순 없을까. 그러나 나는 손과 발이 닿아본 적 없는 어떤 것들의 중력에 얽매여 겨우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2

어린시절 내가 좋아하던 노란색이 있다. 저녁이 되기 전, 오후 끝무렵의 햇살이 불투명한 창문을 투과하면서 만들어내는 실내의 나른한 노란색이다. 방 안의 노오란 대기 상태는 이대로 있어도 좋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가 아직 모르는 무언가가 세상엔 있지만 굳이 그것을 몰라도 상관없다는 느낌의 긴장없는 신비감을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바닥 색깔이 계란볶음밥처럼 돼서 좋았다.


이제 나는 세상에 호기심이 없다. 알고 싶은 새로운 것은 없지만 알아야 할 것은 많다. 출근할때 방 안의 블라인드를 올려놓고 퇴근하면 블라인드를 내린다. 블라인드가 마치 돛같다. 퇴근하고 나서야 돛을 펼치고 항해를 떠난다. 그러나 밤은 어둡다. 나는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고 관능적이지 않은 글을 쓰며 표류한다.


방바닥은 타버린 프라이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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