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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펭귄 May 05. 2020

날씨가 좋았어?

초여름 저녁 정도가 좋다. 카페나 식당의 테라스 자리에서 차를 마시거나 맥주 한 잔 하기엔.

오늘 햇살이 포근한 걸. 쉬어야겠다. 이런 적은 잘 없다.

오늘 바람이 선선한 걸. 놀아야지. 이런 적이 많다.

선선한 바람을 타고 가는 날, 사람이 바글바글한 정문으론 안 나갈래.

동문으로 나가서 걸어야지.

생각보다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았고

기대보단 좋은 추억을 만들지 못했지.

다른 선선한 날에

잠실의 아파트 근처를 걷다가

찻집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별 하나 없는 서울 하늘이지만

까페 조명이 별빛이라 그런가, 반짝반짝한 날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고민하지 않았다. 고마웠어 그날은.

석촌호수를 걸은 날도 있었지.

나는 금방 추워했어.

그래도 맥주를 마시고

생각보다 지저분하고 예쁘지 않은 이상한 터널같은 길을 지나(날파리가 엄청 많음)

롯데월드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들었지.

이게 내가 놀이공원을 즐기는 방식이라고. 저기에 앉아있고 싶진 않아.

햇살이 따뜻한 날은

오히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의 부족한 여유를 탓하기도 했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할 거 같아서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그래, 너는 뭘 생산했니?

해외여행가서는

햇살이 따뜻하다고 잠시간 앉아서 여유를 누리는 척도 해본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어디가야되는 거 아닌가. 속으론 조바심내고 있었다.

여유라는 게 결국은

누가 더 여유있는 척 할 수 있나 연기대결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연기대결을 할 수 있다는 게 또

진짜 여유일지도 모르지.

오늘은 따뜻했는지 선선했는지

뭐 어땠는지도 몰랐다네.

그런데도 이렇게 날씨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까.

밖에 한 번도 안 나간 인간이 말이야.

잘했어 아주.

뭔 소린지도 모를 글을 쓴 점이 특히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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