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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우리를 위하여

1장. 어린 왕자의 여우와 장미 - 외로움 속의 사랑

by 유혜성

1장. 어린 왕자의 여우와 장미 - 외로움 속의 사랑


어린 왕자의 여우와 장미를 사랑한다


나는 어린 왕자를 사랑한다.

그의 순수한 눈빛 속에 숨은 외로움을,

그리고 그 외로움을 비추던 여우와 장미까지도.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인다.

“나를 길들여 줘.”


그 말은 언제 들어도 마음을 간질인다.

어릴 땐 그저 귀여운 대사처럼 들렸지만,

이제는 다르게 들린다.

그건 누군가의 품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고백,

소유가 아니라 관계의 책임을 청하는 목소리다.


길들여진다는 건, 누군가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일.

사냥꾼에게 쫓길 수 있는 약한 존재가

사랑과 신뢰의 울타리 안에서 비로소 안도하는 일.

그래서 길들임은 곧 사랑이다.


사랑은 완벽한 힘이 아니라,

서로의 약함을 맡기는 용기다.

어쩌면 여우의 “나를 길들여 줘”는

이 말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당신 안에서 나를 잃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조금은 불완전해지고, 조금은 흔들리더라도

그 안에서 함께 숨 쉬고 싶다는 뜻.

그건 두려움이자, 동시에 가장 용기 있는 부탁이다.


이 장의 이야기는 바로 그 용기에 대한 고백이다.

불완전하기에 더 절실하고,

외로움 속에서 더 깊어지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



어린 왕자의 여행길, 우리 삶의 거울


어린 시절 <어린 왕자>는 예쁜 문장들로 가득한 책이었다.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나는 그 문장을 필사하며 마치 다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펼친 그 책은 전혀 달랐다.

같은 문장인데 마음에 닿는 온도가 달랐다.

이토록 같은 문장이 다른 깊이로 다가오는 경우도 드물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기보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야 할 이야기에 가깝다.

아이였을 때는 그 안의 ‘순수’를 읽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 순수가 견뎌야 했던 외로움의 무게를 읽었다.


어쩌면 생텍쥐페리는 처음부터 어른에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별과 장미, 여우의 언어로 말했지만,

실은 인간의 고독과 사랑, 그리고 관계의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었으니까.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 시절의 나로는 결코 닿지 못했던 문장들이

지금의 나를 향해 조용히 문을 연다.

그래서 이 책은 ‘성장하지 않는 동화’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성장하는 동화다.


어린 왕자는 작은 별 B-612에서 혼자 살았다.

허영과 변덕으로 자신을 흔들던 장미에게 상처받고 별을 떠난 그는

왕, 허영가, 술꾼, 사업가, 가로등지기, 지리학자를 차례로 만난다.

그들의 세계는 권력과 인정, 도피와 욕망, 돈과 의무로 빽빽했다.

모두가 분주했지만, 정작 마음은 서로에게 닿지 못했다.

그 그림자는 곧 어른이 된 우리의 얼굴이었다.


긴 여정의 끝에서 어린 왕자는 깨닫는다.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사랑은 시간을 들여 길들여질 때 특별해진다는 것을.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약함을 알아보고 그 약함을 책임지는 일임을.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함께 감당할 때

비로소 사랑은 자라난다는 것을.


그의 여행은 외로움에서 시작해, 관계의 의미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도, 불완전한 우리 모두가 걷고 있는 여정이다.

여우가 전해 준 것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여우를 만난다.

그리고 여우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뜨거운 고백을 남긴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이 한 문장은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사랑의 본질이 단 한 줄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건 기다림의 문장이다.

사랑은 ‘만나는 순간’에만 생성되지 않는다.

그 순간을 향해 다가가는 시간의 떨림 속에서 이미 시작된다.


기다림은 설렘이면서 두려움이다.

‘혹시 오지 않으면 어쩌지’, ‘혼자만 애타는 건 아닐까’

그 불안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약함을 배운다.


하지만 여우는 말없이 알려 준다.

그 약함이야말로 가장 용감한 감정이라고.

기다림은 겉보기엔 연약하지만,

실은 가장 강한 마음만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사랑의 진짜 언어를 가르쳐 준다. 사랑은 만나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서로를 배워 가는 과정임을.


누군가를 길들인다는 건 단순한 애착이 아니다.

그건 “너를 책임지겠다”는 조용한 약속이다.

기다림과 책임, 그 두 단어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랑은 완벽해서 특별한 게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함을 함께 견디며 자라날 때

그 사랑은 비로소 단 하나가 된다.


여우의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는

사랑의 시간표를 다시 쓰는 문장이다.

“너를 기다리는 모든 순간이 이미 사랑이다.”

그래서 이 말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예고된 그리움이다.


장미가 남긴 것


어린 왕자의 별에 홀로 피어난 붉은 장미.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까다롭고 변덕스러웠다.

사소한 바람에도 쉽게 토라졌고,

그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어린 왕자는 결국 장미를 두고 떠난다.


그러나 멀리 와서야 깨닫는다.

우주 어디에나 장미는 있지만,

그 장미만은 단 하나의 ‘나의 장미”라는 사실을.


사랑은 특별한 존재라서 유일해지는 게 아니다.

함께 보낸 시간과 돌봄, 그리고 책임이 그 사람을 유일하게 만든다.


장미는 어린 왕자를 상처 입혔지만,

그 상처를 통해 그는 사랑의 깊이를 배웠다.

심리학적으로 장미는 관계 속에서 마주하는 불완전함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사랑은 더 단단해진다.


사랑은 완벽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약함을 품고도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용기다.

그 약한 마음을 끌어안는 순간, 사랑은 비로소 완성된다.

나의 삶 속 여우와 장미


나 역시 내 삶 속에서 여러 번 여우와 장미를 만났다.

어떤 이는 여우처럼 내게 기다림의 철학을 가르쳐 주었다.

사랑은 기다림 속에서 자라나고, 관계는 책임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또 어떤 이는 장미처럼 내 마음을 흔들고, 서운하게 하고,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바로 그 장미가 내 삶의 빛이었다.

그 상처가 나를 단단하게 했고, 그 흔들림이 나를 성장시켰으니까.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이렇게 말했다.

“관계란 타인의 얼굴 앞에서 피어나는 책임이다.”¹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품었던 감정도 바로 그것 아닐까.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책임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다.

여우의 기다림과 장미의 상처는

그 책임의 서로 다른 얼굴이었다.


오늘날의 여우와 장미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여우와 장미를 만난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불안해하고,

가까운 이들의 변덕과 상처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바로 그 경험들이 우리를 어른으로 만든다.

기다림은 신뢰를 배우게 하고, 상처는 공감을 배우게 한다.

여우의 기다림은 관계의 지속성을,

장미의 상처는 인간관계의 불완전함을 상징한다.


기다림과 상처를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성숙해 가는 또 하나의 연습이다.


여우와 장미가 남긴 빛


그래서 나는 여전히 어린 왕자의 여우와 장미를 기억한다.

그들은 이야기의 화려한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어린 왕자가 성장하도록 이끈 은밀한 동반자였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삶 곳곳에는 여우와 장미가 있다.

나를 기다리게 하고, 울게 하고, 웃게 하는 사람들.

그 약함과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운다.


사랑은 완벽한 순간에 머무는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불안과 상처를 끌어안는 연습이다.

그 연습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세계에 길들여져 간다.


사랑은 서로를 완성시키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함께 견디는 일이다.


함께 나누는 작은 질문


당신에게도 여우와 장미가 있었나요?

기다림 속에서 결국 소중한 것을 남겨 준 사람,

상처를 주었지만 그 상처 덕분에 사랑의 의미를 배운 사람.


그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때의 설렘과 아픔, 그리고 지금의 당신을 만든 그 시간들.

그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어 다시 바라볼 때,

당신의 삶에도 분명 단 하나의 장미가 피어 있었음을 알게 될 거예요.


마음속 여우와 장미의 이야기가 있다면,

이곳에 당신의 기억을 남겨 주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의 별빛이 될지도 모릅니다.


한 줄 메모

“사랑은 기다림을 견디는 용기이자, 그 사람에게 내가 건네는 조용한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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