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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우리를 위하여

7장 미운 오리 새끼 - 약함에서 피어나는 자존감

by 유혜성

7장 미운 오리 새끼 - 약함에서 피어나는 자존감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에서 ‘나도 백조였다’로


가끔 거울 속의 내가 낯설다.

마음 한편에서 결핍과 열등감이 조용히 말을 건다.

“왜 나만 이렇게 뒤처지고, 어색하고, 모자랄까.”


그럴 때면 마음은 문득 아이가 되어 속삭인다.

“나는 어쩌면 미운 오리 새끼인지도 몰라.”


누구에게나 한 번쯤 스쳐간 문장,

약한 마음이 만들어낸 진실한 고백이다.

사람들 틈에 서 있어도 나만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는 듯하고,

함께 웃고 있어도 어딘가 어긋나 있는 감정.

그럴 때 우리는 조용히 묻는다.

“나도 백조가 될 수 있을까?”


오늘, 그 물음의 오래된 대답을 꺼내보려 한다.

〈미운 오리 새끼〉는 단순히 못난 오리가 아름답게 변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이미 백조였던 존재가

스스로를 오리라 믿었던 시간의 이야기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미 내 안에도 백조의 깃털이 숨어 있다는 것을.

다만 그걸 잊은 채, 오리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이 동화는 위로가 아니라,

약함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하는 여정이자,

우리 안의 자존감과 성장을 비춰주는 마음의 거울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조용히 말한다.

약함은 결핍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낮은 자존감은 빛을 알아차리기 위한 그늘이라고.


이 글은 그 여정을 따라가며,

당신 안의 미운 오리 새끼가

자신의 깃털을 발견하는 순간을 함께 기록하고자 한다.

창작 배경과 줄거리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43년, 한 편의 짧은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제목은 〈미운 오리 새끼(The Ugly Duckling)〉.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못생기고, 어색하고, 어딘가 다른 아이”라 여겼다.

신분과 외모, 출신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던 사회 속에서

안데르센은 늘 ‘낯선 자’였다.


그의 동화에는 언제나 그런 고독이 스며 있었다.

그러나 그 고독은 패배의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의 발견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농가의 마당, 낡은 오리 둥지 속에서 알이 하나씩 부화하던 여름날.

노란 오리들이 차례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사이,

마지막 한 알이 유독 늦게, 그리고 힘겹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른 새끼들보다 몸집이 크고, 깃털은 회색빛이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넌 우리랑 달라.”

어미조차 잠시 멈칫했고, 형제들은 장난처럼 그를 밀쳐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다름’이라는 이유로 세상 밖으로 밀려났다.


어린 오리는 결국 무리를 떠나 숲을 헤맸고,

차가운 호수와 눈 덮인 들판에서 긴 겨울을 홀로 견뎠다.

굶주림과 외로움 속에서 그는 매 순간 되뇌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지만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얼음이 녹은 물 위에서 그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낯선 형체, 그러나 분명히 아름다운 존재.

그는 오리가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백조였다.


안데르센은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스스로를 향한 믿음은 가장 먼 여정이며,

진정한 자존감은 ‘남과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고.


나는 미운 오리 새끼를 사랑한다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를 이렇게 읽는다.

“못난 아이가 결국 아름답게 변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건 그 ‘변화’의 순간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 미운 오리 새끼가 겪었던 약함과 흔들림,

그 끝없는 의심과 외로움의 시간을 사랑한다.


그 약함 덕분에 그는 더 오래 고민했고,

더 깊이 자신을 바라보았으며,

날개를 펴는 그 순간을 누구보다 뜨겁게 맞이할 수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백조였지만,

그 사실을 몰랐기에 성장의 기적이 가능했다.


우리는 흔히 강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사실 인생을 바꾸는 힘은 ‘강함’이 아니라 ‘약함’에서 나온다.

약함은 무너짐이 아니라 시작의 문이고,

낮은 자존감은 스스로의 빛을 알아차리기 위한 그늘이다.


결핍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넘어짐 속에서 일어나는 힘,

그건 강한 자만의 특권이 아니라 약한 자만이 아는 탄생의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미운 오리 새끼를 사랑한다.

그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모자람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존재,

어둠 속에서도 자기 빛을 잊지 않으려 애쓴 존재.


결국 이 이야기는 백조가 된 누군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약함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존재의 고백이다.


그리고 그 고백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괜찮아, 너는 원래부터 백조였어.”

마음의 거울 - 자존감과 나를 바라보는 법


〈미운 오리 새끼〉는 사실 자존감의 이야기다.

백조였던 존재가 스스로를 오리라 믿으며 살았던 시간,

그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지나온 마음의 풍경과 닮아 있다.


자존감은 남이 채워주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피어날 때만, 진짜 힘을 가진다.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은 이렇게 말했다.


“자존감은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존중감이 함께 자라는 내면의 뿌리다.”


그가 말한 ‘효능감’은 내가 내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고,

‘존중감’은 그 선택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태도다.


결국 자존감은 ‘나를 믿는 용기’와 ‘나를 받아들이는 따뜻함’이 함께 자랄 때 완성된다.


나를 깨닫는 순간 - 존재와 인식 사이에서


〈미운 오리 새끼〉는 존재와 인식의 이야기다.

본래는 백조였지만, 스스로를 오리라 믿었던 한 존재의 서사.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말했다.


“진정한 존재란, 스스로의 가능성을 자각하고 선택하는 데서 시작된다.” -<존재와 시간>


〈미운 오리 새끼〉는 바로 그 진정성의 이야기다.

그는 백조가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 모습을 깨달은 것이다.

이미 백조였다는 사실을 ‘안’ 순간, 세상도 그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삶의 변화는 언제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엇이 되고자 애쓰기보다,

이미 내 안에 있는 본래의 나를 인식할 때 세상은 조용히 달라진다.


타인의 시선 - 오리 무리의 이야기


나는 미운 오리 새끼만큼이나 ‘오리 무리’도 마음에 남는다.

그들은 평범했지만, 불안 때문에 잔인해졌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두렵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건 군중의 본능이다.”


오늘의 사회도 다르지 않다.

외모, 출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밀려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그 배척은 타인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자기 안의 결핍이 드러난 모습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오리 무리의 불안과 두려움까지 이해하려 한다.

그들 또한 인정받고 싶었던 존재였을 뿐이니까.


나의 이야기 - 미운 오리 새끼로 살던 시간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완전히 낯선 세계의 초보자였다.

선생이었고 기자였고 교수였지만,

운동 현장에서는 그 어떤 타이틀도 통하지 않았다.


나보다 어린 동료들이 팀장이 되고, 사장이 되었을 때

나는 그 밑에서 묵묵히 배우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어울리지 않는,

조금은 ‘이질적인 오리 새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이 싫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단련시켰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내가 세우고 싶은 건 센터가 아니라 기초였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직접 마주하는 현장에서,

회원들의 호흡과 체온을 느끼며 천천히 배워 나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근육보다 더 단단한 마음의 코어를 길렀다.

때로는 지쳐서 무릎을 꿇기도 했고,

내 선택이 틀린 건 아닐까 의심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금 나는 필라테스를 가르치고, 글을 쓰고, 상담을 한다.

하루하루의 수업과 문장 속에서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 붙이며,

나만의 백조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미운 오리 새끼를 사랑한다


그는 약했지만, 그 약함 덕분에 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는 흔들렸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자기 길을 발견했다.

그는 낮은 자존감을 가졌지만,

그 덕분에 존재의 의미를 더 깊이 물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오리 무리들도 사랑한다


그들의 불안과 조급함, 그 안의 상처까지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때는 미운 오리 새끼였고,

그 시절을 지나야만 자기 깃털의 빛을 알게 된다.


어쩌면 나 역시 그 무리 중 하나였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열등감과 질투, 부러움의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의 빛을 외면하거나 몰래 비교했던 시간들.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타인의 성공 앞에서 스스로를 작게 만들던 때가 있었다.

그건 내 안의 또 다른 ‘미운 오리’가 조용히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마음은 가끔 불쑥 찾아온다.

함께 출발했던 이름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때,

평단의 찬사와 함께 수상 소식이 들려올 때면

내 안의 오리가 속삭인다.


“나는 아직 멀었어.”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걸어온 길과 내가 걸어온 길은 다를 뿐,

그 차이는 패배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한 길을 걸으며 그곳의 정상에 섰고,

나는 여러 길을 돌아다니며

조금 더 많은 풍경을 본 사람으로 남았다.


누구에게나 봄은 다르게 온다.

비교를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내 안의 백조가 조금 더 자란다.

그건 부러움이 잦아든 자리에 피어나는,

조용한 자존감의 날개다.


우리는 모두 한때는 미운 오리 새끼였고,

어쩌면 지금도 그 무리와 함께 살아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괜찮다.

누군가의 빛을 부러워하는 마음조차,

결국은 내가 빛나고 싶다는 또 다른 표현이니까.


그 마음을 밀어내지 말고, 조용히 안아볼 것.

그 순간, 당신의 깃털은 조금 더 하얗게 자라날 것이다.


비교를 멈추는 용기.

그 자리에 자존감이 자라는 법이다.

함께 나누는 작은 질문


당신의 마음속에도 ‘미운 오리 새끼’가 있지 않나요?

자존감이 낮아 작아졌던 순간,

혹은 스스로의 빛을 발견한 기억이 있나요?


그 순간을 짧은 문장으로 남겨주세요.

당신의 고백 하나가 누군가의 새벽을 비추는 하얀 깃털이 될지도 모릅니다.


한 줄 메모

“자존감은 남이 세워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깨닫는 순간, 이미 백조가 된다.”



참고문헌

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미운 오리 새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7, 민음사, 2016.

(원제: The Ugly Duckling, 1843)

2. 옌스 안데르센(Jens Andersen),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새로운 삶》, 송철복 옮김, 현실문화, 2008.

3. 나다니엘 브랜든(Nathaniel Branden), 《자존감의 여섯 기둥》, 안진환 옮김, 한국경제신문, 2018.

4. 나다니엘 브랜든, 《자존감의 심리학》, 이지연 옮김, 다산초당, 2016.

5.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 2006.

6. H. C. 안데르센 센터(H. C. Andersen Centre), 《미운 오리 새끼 (1843)》 해설 자료집, 덴마크 남부대학교, 온라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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