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번이라 죄송합니다

16화 사랑이 환승하는 플랫폼

by 유혜성

16화 사랑이 환승하는 플랫폼 - 라디오헤드와 콜드플레이 사이


프롤로그


“이모, 그 김무성이라는 사람 있잖아.”


조카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빛은 놀랍도록 단정했다.

호기심과 의심,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애틋함이

한 줄기 빛처럼 섞여 있었다.


“도서관에서도, 영화관에서도,

심지어 집 앞 가로등 밑에서도 같이 있었다며?”


그녀의 목소리는 오래된 소설의 첫 문장처럼,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사람의 어조였다.


“그렇게 매일 붙어 다니던 사람이

졸업하자마자 아무 말 없이 떠났다고?”


조카는 고개를 기울였다.

“연락처도 안 남기고?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나는 웃었다.

오래된 필름 한 장이 돌아가는 것처럼, 조용히.

“그러게. 그 사람은 어느 날, 그냥 떠났어.

눈 녹듯,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조카는 입술을 꾹 다물더니,

마치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흠… 난 좀 알 것 같아.

이모가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분명 다른 남자들도 이모 좋아했을 거야.

근데 그 사람이 늘 옆에 있으니까

다들 ‘둘이 사귀나 보다’ 하고 물러난 거지.”


그녀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그럼, 김무성 씨는 연애의 가드맨이 아니라… 방해꾼?”


나는 잠시 웃음을 머금었지만

가슴 한쪽에서 작은 통증이 일었다.

“글쎄. 사랑은… 자리를 비워야 들어오는 법이거든.”


조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그 사람은… 이모한테 뭐였어?”


그 순간,

오랜 시간 닫아두었던 기억이

도서관의 형광등처럼 천천히 켜졌다.

지하 연구실의 겨울


그 시절의 나는

빛이 닿지 않는 지하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창문 하나 없는 연구실,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이 유일한 하늘이었다.

논문과 문장, 단어들만이 나의 동료였고

그 속에서 나는 하루를 견뎠다.


유일한 햇살은 점심시간,

잠깐 통유리창에 부딪히는 반짝임뿐이었다.

커피 자판기 앞에서 뜨거운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쥘 때,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컵 가장자리엔 늘 치아 자국이 남았다.

미처 삼키지 못한 문장들의 끝이, 거기 머물러 있었다.


그때의 ‘일탈’은

퇴근 후 도서관에 가는 일이었다.

세상의 소음이 가라앉은 저녁 여섯 시,

나는 가방을 둘러메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내 숨통이자,

세상과 이어지는 유일한 플랫폼이었다.

도서관의 공기


문을 여는 순간,

세 가지 냄새가 동시에 나를 감쌌다.

복사기 잉크, 레스비 캔커피, 그리고 - 그 사람의 향기.


그는 늘 같은 차림이었다.

위크엔드 회색 후드티, 아디다스 삼선 바지, 나이키 운동화, 검은 슬링백.

단정했고, 이상하게도 낯익었다.


일본에서 온 교환학생, 김무성

재일교포 3세.

그의 한국어엔 약간의 일본어 억양이 섞여 있었고,

그 어색한 발음이 묘하게 내 마음을 건드렸다.


책을 반납하면 내 맞은편,

창가에 앉으면 내 뒤,

화장실에 다녀오면 어느새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우연이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의 존재는 내 하루의 리듬이 되었다.


그날의 공기엔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가 깔려 있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그 노랫말처럼, 그의 침묵에도 목소리가 있었다.


조용하지만 중독적인,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머무는 사람의 기척.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더 선명하게, 그 계절의 빛을 기억한다.


가로등 밑의 첫 대화


그날 밤, 도서관 불이 꺼지고

형광등의 잔상이 아직 눈에 남아 있을 때였다.


나는 책을 품에 안고 골목길을 걸었다.

겨울의 공기는 희미한 잉크 냄새와 섞여 있었고,

등 뒤로 일정한 박자의 발소리가 따라왔다.


‘설마…’

겁이 나서 돌아보니

그가 있었다.

회색 후드티, 검은 슬링백, 낯익은 그림자 그대로였다.


“지금… 혹시 절 따라오는 거예요?”

내 목소리가 얇게 떨렸다.


그는 이어폰을 빼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집이… 같은 길이라서요.”


그 말은

낯선 언어로 건네는 인사처럼 서툴고,

동시에 따뜻했다.


그날 이후,

내 귀갓길엔 언제나 두 개의 발소리가 겹쳐 들렸다.

같은 간격, 같은 그림자,

같은 가로등 아래의 침묵.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엔 묘한 리듬이 있었다.

라디오헤드의 베이스처럼

낯설지만 익숙하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늘 같은 시간, 같은 방향에서 나타났고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걸었다.


아마 그는 그게 최선의 거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타국의 유학생으로, 언제든 떠나야 하는 사람으로,

함부로 다가설 수 없었던 마음.


그의 조심스러움이 그 밤의 온도를 만들었다.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의 다정함은

때로 가장 고요한 방식으로 스며든다.


그래서였을까.

그때의 나는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매번 다른 심장으로 집에 도착했다.


그건 아마도,

내 인생의 가장 조용한 시작음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음의 첫 박자는,

라디오헤드의 노래처럼

불안과 설렘이 겹쳐진 낯선 평온이었다.

라디오헤드와 콜드플레이 사이


우리가 서로에게 끌렸던 이유는

서로의 언어를 완벽히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재일교포 3세인 그는

한국어 초중급의 낯선 억양 속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골랐다.


나는 그 말끝을 따라가며

기초 일본어를 더듬었다.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반쯤 미완이었고,

그 미완의 틈새로 오히려 마음이 스며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말보다 음악으로 사랑을 배웠다.


어느 날,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책 위에 CD 한 장을 올려놓았다.

Radiohead 〈No Surprises〉.


그날 이후, 그 곡은

도서관의 공기처럼 내 하루에 스며들었다.


“A handshake of carbon monoxide…No alarms and no surprises…“

형광등 아래에서 실로폰 소리가 가볍게 흩어졌다.

논문 위에 떨어지는 빛의 잔결이

마치 음악의 파형처럼 느껴졌다.


그 노래는 자장가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세상에 대한 조용한 항의였다.

“알람도, 놀라움도 없이 살고 싶다.”

불안이 일상이던 시대,

그 노래는 피로한 영혼들의 무소음의 기도였다.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가 건넨 건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그의 하루와 고독의 일부였다는 걸.


며칠 뒤, 나는 답장처럼

Coldplay 〈Yellow〉를 내밀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밴드예요.”


그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말 대신 눈빛으로 “들어볼게요.”라고 대답했다.


“Look at the star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음악이 흐르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잠시 잊었다.

그 대신 숨결이, 리듬이, 별빛이 대화를 대신했다.


라디오헤드가 불안을 기록했다면,

콜드플레이는 그 불안을 빛으로 번역했다.

한쪽은 겨울의 숨, 다른 쪽은 봄의 빛.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잠시, 같은 박자로 호흡하는 별이었다.


그 시절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말 대신 음악으로, 확신 대신 주파수로.


1998년의 No Surprises가 “이제 그만”을 속삭였다면,

2000년의 Yellow는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했다.


그 두 노래 사이,

세상이 환승하듯 바뀌던 시절.

불안에서 희망으로, 침묵에서 사랑으로.

그 사이의 좁은 틈에서

우리는 서로를 들었다.


TMI - 시대의 사운드트랙

• Radiohead 〈No Surprises〉 (1998)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항의 노래.”
지친 세대의 숨소리를 음악으로 옮긴 밴드.

• Coldplay 〈Yellow〉 (2000)
“Look at the stars.”
새천년의 첫 고백, 별빛이 다시 사랑을 허락하던 시절의 사운드.

90년대가 불안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위로의 시대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교차점에서
불안과 빛 사이, 라디오헤드와 콜드플레이 사이에서
사랑이라는 음악을 들었다.

쪽지와 거리의 미학


그 시절, 도서관에는 ‘쪽지 문화’가 있었다.

노트 사이에 끼워진 메모 한 장,

커피 향보다 더 떨리던 손글씨 한 줄.


“제 스타일이라서요. 혹시 시계탑 앞에서 커피 한 잔 어때요?”


지금 생각하면 순수하고, 어설픈 구애였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 쪽지는 낭만이 아니라 번거로움이었다.


그걸 받는 순간,

누군가의 호감이 나의 일상이 되어버릴까 봐,

그게 부담스러웠다.


나는 언제나 쪽지를 받기만 했다.

읽고, 접고, 책갈피처럼 노트 사이에 끼워두었다.

그저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낭만적이었으니까.


누군가를 만날 여유도, 용기도, 흥미도

그 시절엔 없었다.

공부와 생계, 그리고 막연한 외로움만이

내 하루의 중심이었다.


김무성은 언제나 그 쪽지의 목격자이자 통역자였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잠시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다 돌아오면

그는 어김없이 말했다.


“어떤 사람이 또 뭐 두고 갔어요.”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엔 묘하게 눌러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는 마치 도서관의 보안요원 같았다.

책 한 권, 노트 한 장, 쪽지 하나도

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게 귀여웠다.

서툰 한국어로 질투를 표현하는 모습이

조금은 어설프고, 조금은 다정했다.


그는 늘 내 곁을 지켰고,

나는 그 존재를 하나의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방 사건, 우리 사이의 첫 온도


어느 날, 인생이 통째로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은행에서 막 찾아온 용돈 30만 원을

책가방에 넣어두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을 뿐인데,

돌아오니 가방이 없었다.


그 안엔 논문 초안, 하드디스크, 일기장,

그리고 그 시절 내 한 달 생활비 전부가 들어 있었다.


나는 복도를 달렸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같이 찾아봅시다.”


그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그 또한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난 일이라

무척 미안해했다.


우리는 건물 복도를, 계단 밑을, 화장실을,

거의 모든 층을 헤맸다.


몇 시간 뒤,

학교 건물 화장실 한 칸,

청소도구 옆에서 내 가방이 발견됐다.


돈은 사라졌지만

하드디스크와 일기장은 그대로였다.


그는 내게 가방을 내밀며 말했다.

“이건… 꼭 돌려받아야죠.”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심장을 울렸다.

눈물이 웃음으로 번지던 그때,

그의 손끝에서 전해진 온기가 내 손등에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학교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돈 잃어버렸잖아요.”

그가 계산을 하며 말했다.


유학생이었던 그에게도

그건 아마 작은 사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밥맛은 묘하게 달았다.

따뜻하고, 낯설고, 조금 설레었다.


매운 걸 잘 못 먹던 그는

떡볶이나 어묵볶음을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밀어주곤 했다.


나는 느끼한 음식을 못 먹는다고 하면서

돈가스나 치킨, 생선가스를 그에게 건넸다.


그 짧은 순간,

젓가락 끝이 스치듯 마주쳤고

식탁 위에는 묘하게 따뜻한 공기가 번졌다.


별것 아닌 장면이었지만,

그 순간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서로의 온도가

젓가락을 타고 천천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연애 아닌 연애,

누가 봐도 커플 같은 ‘썸’이 시작됐다.


도서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만 몰랐던 사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의 풍경이 되어 있었다.

가을의 끝자락,

은행잎이 노랗게 빛나던 캠퍼스 길.

그 위로 바람이 차츰 하얗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겨울이 코앞에 닿은 어느 날,

하늘은 낮게 깔려 있었고

눈은 언제라도 쏟아질 것처럼 가벼웠다.


우리는 코트를 여미며

따뜻한 김이 오르는 컵라면을 나눠 먹었다.

입김 사이로 웃음이 섞이고,

눈빛이 잠시 머물렀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라디오헤드와 콜드플레이 사이

불안과 빛, 현실과 설렘의 경계에서

서툰 화음을 맞춰가던 두 악기 같았다.


그리고 그 계절의 공기엔

언제나 첫사랑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크리스마스, 그리고 녹아버린 사람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연구실 동기들은 회식 약속을 잡았고,

친구들은 노래방과 술자리를 예약했다.


“너도 오지?”

“응, 좀 이따 갈게.”


나는 그렇게 말해두고

그날도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의 발걸음은

언제보다 설레고 조심스러웠다.


내 손에는 작은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밥을 사주던 그에게

조심스럽게 건네주고 싶었다.


감사의 표시이자,

아마도 마음의 고백이었다.


“오늘은, 그냥… 같이 케이크나 먹자.”

그 말을 마음속으로 수십 번이나 연습했다.

손끝이 시리도록 차가웠지만,

그 상자 속엔 내 온기가 담겨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도서관 불빛에 닿자마자 조용히 녹았다.


나는 습관처럼 그의 자리를 힐끗 보았다.

텅 비어 있었다.


시계는 아홉 시, 열 시, 열한 시를 지났다.

책상 위의 펜이 시계초처럼 덜컥 덜컥 굴렀다.

창밖의 눈은 그칠 줄 몰랐다.


“조금 늦나 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케이크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손끝의 냉기가 상자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결국, 도서관 문이 닫히는 시각이 되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자리엔 여전히 아무 기척도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가로등 불빛이 눈송이마다 반짝이며 떨어졌다.

그 길은 늘 그와 함께 걷던 길이었다.


“오늘은… 안 오는구나.”


작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이 내렸다.

하얗고 조용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눈이었다.


케이크 상자는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내 손끝은,

이미 파랗게 식어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쪽지도, 이메일도 없었다.


마치 눈처럼,

조용히 녹아 사라진 사람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도서관 불빛만 봐도 그가 떠올랐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문득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위로 겹쳐 흐르던

콜드플레이의 Yellow.


둘 다 같은 음악인데,

이상하게 서로 다른 계절의 냄새가 났다.


그는 겨울의 라디오헤드였고,

나는 봄의 콜드플레이였다.


같은 악보 위에 적힌 두 음표였지만,

끝내 같은 박자에 닿지 못한 사람들.


조카가 이 이야기를 듣고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왜 떠난 거야?”


나는 잠시 웃었다.

“글쎄,

사랑이란 게 가끔 그래.

도착하자마자 떠나는 플랫폼 같은 거지.”


그는 눈처럼 왔다가,

봄이 오기도 전에 녹아버린 사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녹아내린 자리엔

여전히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


2000년대 초, 스팸함에 남은 사랑


조카가 물었다.

“그럼 진짜 아무 연락도 없었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니, 나중에 메일이 왔었어.

근데… 내 실수로 스팸함에 들어가 있었지.”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다음 한메일을 썼다.

그리고 곧 세상은 네이버로 넘어가던 때였다.

사람들도, 사랑도 플랫폼을 갈아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메일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메일은 그렇게,

스팸함 속에 묻힌 사랑이 되었다.


얼마 뒤에야 알았다.

그가 급히 일본 교토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위독한 어머니, 갑작스러운 귀국,

그리고 학교 프로젝트 일정까지 겹쳐

한국을 떠나야 했던 상황이었다.


메일엔 서툰 일본어와 한국어가 섞여 있었다.


“미안해요.

갑자기 일본 가야 해요.

엄마 병원…

연락 못해서 미안해요.

나중에 교토에서 꼭 봐요.”


그 메일은 내가 보지 못한 시간의 편지였다.

스팸함 깊은 곳,

이미 계절이 바뀌고 눈이 녹은 뒤에야

나는 그 메일을 발견했다.


화면 속 잔잔한 문장을 오래 바라보다가

그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럴 수도 있지. 이게 순리지 뭐.”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애써 담담하게,

마치 그게 원래 예정된 결말이었던 것처럼.


그 후로 나는 도서관 대신 연구실에서 밤을 보냈다.

라디오헤드 대신 콜드플레이를 들었고,

우롱차 대신 블랙커피,

삼각김밥 대신 매점 빵으로 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네이버로 환승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일상,

새로운 나로.


그 시절엔 몰랐지만

그 ‘메일함의 전환’이

한 세대의 사랑이 바뀌던 신호였던 것 같다.

그즈음,

같은 연구실의 L 선배가 내 곁에 다가왔다.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어느 겨울날, 캠퍼스 벤치에서

그가 갑자기 말했다.


“혜성 씨, 나랑 결혼합시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 우리 사귀지도 않았잖아요.”


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꼭 사귀어야 결혼하는 건가요?

우린 이미 서로 잘 아는 동지잖아요.”


그 말이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웃음이 났다.

“결혼을 동지랑 해요? 선배, 그건 좀…”


그날의 공기는

웃음과 어색함 사이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고,

그렇게 그 ‘프러포즈’는

겨울의 해프닝으로 흩어졌다.


그다음 봄,

그 선배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나는 그 결혼식에 참석했다.


하얀 부케가 공중을 가르며

내 손으로 날아왔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나는 우정을 선택했다.


에필로그 - 조카의 한마디


“이모, 그럼 김무성 씨는 결국 어떻게 됐어?”


나는 잠시 웃었다.

“모르지.

다만 언젠가 메일함을 열면,

스팸함 어딘가에서

아직 읽지 않은 답장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조카가 킥킥 웃었다.

“이모, 실명 쓴 이유가 혹시 그거야?

진짜 ‘김무성 찾기 프로젝트’?”


나도 웃었다.

“아니, 그냥… 그 시절을 기록하고 싶었을 뿐이야.

우리 세대의 사랑은 타임머신 같으니까.”


우리는 결국,

서로의 받은 편지함엔 없었지만

서로의 기억 속엔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건,

읽히지 못한 사랑이라기보다

아직 삭제되지 못한 마음이었다.


TMI - 90s ‘한메일’에서 00s ‘초록창’으로


한메일 (한메일넷 Daum Mail)

1997년 5월, 국내 최초의 무료 웹메일.

‘1인 1 메일’ 시대를 연 상징적 서비스.

이후 브랜드명이 ‘Daum 메일’로 바뀌었지만,

90년대 추억의 시작은 언제나 @hanmail.net이었다.


다음 카페 (1999)

대학 동아리·동호회·지역모임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며

2000년대 초 커뮤니티 문화의 허브가 되었다.


네이버 포털 (1999)

1999년 6월 정식 개시.

2000년대 초 통합검색·뉴스·블로그·카페로 급성장.

‘초록창’으로 불리며 우리의 검색 습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싸이월드 (1999)

2001~2002년 ‘미니홈피’ 도입 후 폭발적 확산.

사진·BGM·방명록이 사람 사이의 감정을 기록하던 공간.


네이트온 (2002)

국산 메신저의 전성기.

회사·캠퍼스·사랑 고백까지

모든 대화가 실시간으로 바뀌던 순간.


키워드 요약

• 1990s 말 = 메일의 시대

한메일 주소 하나가 ‘첫 번째 연결’이었다.

연락의 기본은 ‘메일 + 카페 공지’.

느리지만 정성스러운 문장이 사람을 잇던 시절.


• 2000s 초 = 포털·메신저의 시대

네이버, 싸이월드, 네이트온,

MSN Messenger(1999)가

사랑의 속도와 형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상대의 ‘접속 중’ 표시 하나에

심장이 요동치던 시절.


그 시절의 사랑은 메신저보다 느렸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https://www.instagram.com/comet_you_

https://www.threads.com/@comet_you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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