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25도 소주가 그립다
“이모, 막사 알아?”
조카가 막걸리잔을 들어 보였다.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은, 달큼하고 부드러운 거품,
나는 그 잔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거, 우리 땐 선배들만 아는 비밀 레시피였어.”
조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금세 웃는다.
“그럼 이모 때는 주로 뭐 마셨어?”
나는 잠시 잔을 돌려보다가 대답했다.
“우린… 쓴 걸 마셨어. 25도 소주.”
조카가 놀란 듯 웃음을 터뜨렸다.
“25도? 그게 술이야, 독약이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인생의 맛이었거든.
달면 술이 아니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지.”
잔 속의 거품이 천천히 꺼지며
그 표면에 오래전 여름의 풍경이 비쳤다.
요즘의 술은 참 부드럽다.
탄산수로 중화된 위스키, 사과향이 도는 하이볼,
막걸리엔 사이다가 섞이고,
소주는 이제 16도까지 내려왔다.
모두가 말한다.
“숙취가 덜해서 좋아요.”
도수는 낮아졌지만,
마음의 도수도 함께 낮아진 건 아닐까.
한때는 쓴맛으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엔,
술 한 잔에도 철학이 있었고
취기에도 불안이 섞여 있었다.
우린 그 불안을 ‘청춘’이라 불렀다.
네가 태어나기 바로 전의 여름,
1999년이었다.
세상이 물에 잠기고, 도시가 장마에 삼켜지던 시절.
지하철은 멈췄고, 자동차는 둥둥 떠다녔다.
세상이 망하든 말든,
우린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지하 연구실에 모여 ‘용어사전’을 만들고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공간,
책장에 쌓인 먼지,
낡은 선풍기가 쉼 없이 돌아가는 소리.
세상의 속도와는 무관하게,
우린 문장 속에서만 살았다.
내가 맡은 항목은
거울 단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욕망의 삼각형,
니힐리즘, 그리고 은유와 환유.
그 다섯 개의 단어가 그해 여름 내 전부였다.
단어를 파고들수록
현실은 점점 멀어지고,
책 속의 세계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방학을 반납한 다섯 명의 대학원생.
우린 스스로를 ‘솔로레타리아’(솔로+프롤레타리아)라 불렀다.
자발적인 솔로이자, 선택적 백수.
사랑 대신 문장을 탐구하고,
세상 대신 개념을 해부하던 자발적 고립자들.
그 시절의 세상은 25도처럼 쓰고 뜨거웠다.
하지만 그해 여름, 우리가 마신 소주는 23도였다.
혀끝은 얼얼했고, 목구멍은 뜨거웠다.
도수 하나 낮아진 만큼,
열정은 조금 순해졌고,
불안은 조금 더 짙어졌다.
우린 그 23도의 온도로 살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논문을 쓰고,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자기만의 진심을 발효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우리는 아무도 몰래
쓴맛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인생의 예열’이었다.
지하 1층 연구실은 늘 눅눅했다.
형광등은 깜빡였고,
종이 냄새와 먼지가 공기 속을 천천히 떠돌았다.
커피 향이라기보다,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의 탄 냄새가 방 안을 채웠다.
동전 열 개면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커피 값은 아껴도 책값은 아끼지 않았다.
우린 월급 대신 장학금을 받았고,
명품 대신 철학서를 샀다.
라캉, 푸코, 바르트, 니체.
이름만으로도 세상이 조금은 견딜 만해지는 사람들이었다.
새 책을 사면 늘 투명 비닐로 곱게 싸 주었다.
그건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버티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비닐에 공기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게 눌러 씌울 때마다,
인생의 구겨진 면이 잠시라도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서관 신간 목록이 우리의 뉴스였고,
헌책방에서 절판본을 구했다는 소식은
누군가의 연애 소식보다 더 설레었다.
낡은 표지를 쓰다듬으며
“이 책도 결국 누군가의 청춘이었겠지.”
그렇게 말하던 시절이었다.
누군가 우리를 봤다면,
패기 없는 세대라 했을 것이다.
사랑 대신 사유를 택하고,
생활 대신 문장을 택한 청춘들.
남들은 우리를 ‘루저’라 불렀지만,
우린 그 단어마저
낭만의 또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르곤 했다.
그 시절의 우리는,
빛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반짝였다.
세상이 무너져도 연구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고,
어쩌면 그 어둠 속이
우리가 가장 선명히 빛나던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비가 며칠째 그치지 않았다.
캠퍼스는 흙탕물에 잠겼고,
지하 연구실은 곧 물에 잠길 것 같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이 속도라면 지하실까지 물이 들어올 거야.
그전에 책부터 옮기자.”
누군가의 말에 우린 일제히 짐을 챙겼다.
노트북, 서류철, 그리고
그동안 읽어온 철학자들의 책을 품에 안고 계단을 올랐다.
텅텅 울리는 발소리,
습기 찬 운동화 밑창에서 들려오는 미끄러운 마찰음.
비 냄새와 콘크리트 냄새가 뒤섞여
묘하게 살아 있는 냄새를 냈다.
5층에 다다랐을 때,
우린 문 하나를 밀고 들어갔다.
그곳엔 작은 옥상으로 이어지는 빈 공간이 있었다.
비가 쏟아져도 세지 않는 유리 천장.
좁고 습했지만, 이상하게 포근한 아지트였다.
누군가는 벽에 기대앉았고,
누군가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리 천장 위로
빗줄기가 번개에 반사되며 흘러내렸다.
그 아래에서 우리는,
세상이 망하더라도 여전히 살아 있는 청춘이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해 여름 우리는 모두 약간의 불안 속에 있었다.
IMF 이후의 세상은 어두웠고,
우리의 미래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비는 절망보다 낭만에 가까웠다.
유리 천장을 두드리던 빗소리 위로
누군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곧 합창이 되었고,
아카펠라처럼 빗소리와 어우러졌다.
우리의 목소리는 어딘가 불안했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잠시 후,
각자의 작은 고백들이 그 빗속에서 흘러나왔다.
L은 니체를 정복하겠다고 했고,
O는 시를 묶겠다고 했다.
E는 소설을 쓰겠다고,
R은 연애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시선이 모였다.
“넌?”
나는 대답 대신
천장을 가르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바람처럼 사라질 거야.”
천둥이 그 말을 삼켰다.
순간, 누군가의 손이 내 팔에 닿았다.
뜨겁고 불안한 체온이 전해졌다.
우린 서로를 보지 않은 채,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날, 유리 천장 아래서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지만,
우리의 젊음은 잠시 멈추어 있었다.
누가 봐도 루저였지만,
그 여름만큼은,
세상의 중심이 우리였다.
비가 그치자 도시는 다시 불을 켰다.
우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날의 밤은 늘 같은 말로 끝났다.
“한 잔만 하고 가자.”
어묵탕 하나, 소주 한 병.
다섯 개의 숟가락이 한 냄비 속에서 부딪히며
우정이 익어갔다.
L이 말했다.
“우정은 국물을 같이 떠먹는 사이에 생기고,
사랑은 마지막 한 숟갈을 양보하는 사이에서 자라지.”
우리는 웃었고,
그 웃음은 오래 남았다.
웃음 속엔 각자 꺼내지 못한 마음 하나씩이
조용히 숨어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마셨다.
한 병의 소주를 다섯이서 나누며,
쓴맛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그 쓴맛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진심 같았다.
쓴맛의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절의 도수는 아직 내 혀끝에 남아 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누군가는 시인이 되었고,
누군가는 소설가가 되었고,
누군가는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R은 기자가 되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는 세상과 연애할 거야.”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몇 해 뒤, 전화 한 통이 왔다.
밤길, 과속, 그리고 사고.
술이 섞인 밤이었다고 했다.
우린 믿지 못했다.
그럴 리 없다고,
그가 그럴 리 없다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끝내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사물함을 비우던 날,
먼지 냄새와 철제 서랍의 삐걱거림 속에서
한 권의 시집이 나왔다.
오규원, <한 잎의 여자>.
내가 그에게 빌려준 책이었다.
첫 장에는 연필로 적힌 문장이 있었다.
“비 오는 날, 천장을 바라보며 사랑에 빠진 날.
S가 떠나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먼저 떠날지도 모르겠다.”
종이의 결 사이로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가닥이 미끄러져 나왔다.
곱게 땋인, 낯익은 색이었다.
그건 내 것이었다
그해 여름, 연구실에서
갈라진 머리카락 끝을 다듬고 있던 내게
술에 취해 돌아온 그가 말했다.
“상처까지 끌어안는 너, 마조히스트 같다.”
그 말이 농담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웃음이 어딘가 비뚤게 느껴졌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가위를 들어
머리카락을 툭 잘라냈다.
“쓰레기 같은 글 쓰는 주제에…”
그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슬픈 눈으로 웃던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웃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연구실 문을 나섰다.
그는,
내가 흘린 한 가닥을 주워
시집의 심장부에 꽂아 두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말문이 닫혔다.
23도의 여름이 천천히 식어가는 소리가
내 흉곽 안쪽에서 오래 울렸다.
마치 자신이 사라질 것을 예감한 문장처럼,
그의 글이 내 안을 서서히 후벼 팠다.
그날 이후, 오래도록
비 내리는 소리만 들어도
나는 먼저 그의 웃음이 떠올랐다.
소주의 도수가 내려갈 때마다
세상도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25도, 23도, 20도, 그리고 지금의 16도.
도수는 내려가는데,
가격은 오르고,
감정은 얇아졌다.
쓴맛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린 덜 싸우고, 덜 고백한다.
부드러움이 미덕이 된 시대.
하지만 나는 가끔,
그때의 쓴 술이 그립다.
혀끝이 얼얼하던 그 맛,
그 한 잔 안에는
사랑과 분노와 고백과 침묵이
모두 녹아 있었다.
우리는 그 쓴맛으로
다음 문장을 배웠다.
“이모,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조카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나도 잠시 말을 접었다.
대신 잔을 들었다.
“책과 우정, 그리고 이름 붙이지 않은 사랑을 위하여.”
탁.
우리는 동시에 잔을 부딪쳤다.
조카의 잔엔 막사, 내 잔엔 소주.
단맛과 쓴맛이 맞부딪히며
잠깐, 시간의 층이 흔들렸다.
그 짧은소리 하나에
세기말의 여름과 지금의 가을이
겹쳐 앉았다.
그 시절, 술은 썼다.
그래서 기억은 달았다.
이제 술은 순하다.
그래서 가끔,
그때처럼 쓰디쓴 한 잔이 그립다.
25도의 불량한 청춘,
23도의 불안,
17도의 평화,
그리고 지금, 16도의 맑은 체념.
도수는 낮아졌지만,
그 여름의 쓴맛만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가끔 소주 한 잔과 어묵탕을 앞에 두면
교수가 된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우정은 국물을 같이 떠먹는 사이에 생기고,
사랑은 마지막 한 숟갈을 양보하는 사이에서 자란다.”
그 말이 유난히 따뜻하게 들리는 밤이면,
나는 문득, 그 시절의 불안이
왜 그렇게도 아름다웠는지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불안이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인 줄 몰랐다.
그저 막막했고, 흔들렸고,
내일은 늘 한 치 앞에서 안개처럼 흐렸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불안은 두려움이 아니라
무언가를 사랑하려는 마음의 전조였다는 걸,
세상을 이해하려 발버둥 치던 그 혼란이
결국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었다는 걸 안다.
세기말의 여름,
우린 모두 조금씩 불안했고, 그래서 뜨거웠다.
그 불안이 있었기에
서툰 사랑도, 미완의 문장도,
모두 다 아름다웠다.
이제야 알겠다.
그 여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여전히 끓고 있다는 걸.
TMI BOX
한국 소주의 도수, 그리고 시대의 농도 변화
1. 소주 도수의 역사 — “쓴맛에서 순함까지”
• 1920~1960년대: 증류식 소주가 주류였다.
알코올 도수는 30~35도 수준. ‘불타는 술’의 시대였다.
• 1970~1990년대: 희석식 소주가 등장하며 25도가 표준이 됐다.
“소주는 원래 독한 술”이라는 인식이 이때 자리 잡았다.
• 1998년: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 23도로 첫 등장.
도수 경쟁의 시작이었다.
• 2000년대 중반: ‘처음처럼’이 20도대로 리뉴얼되며
“부드러운 소주”라는 개념이 시장에 퍼졌다.
• 2010년대 이후: 저도주 경쟁이 본격화.
17도, 16도 제품이 주력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브랜드는 14도대 소주까지 출시하며 ‘순한 술’ 시대를 열었다.
• 최근: 역으로 24도 소주 같은 고도수 회귀 실험도 등장했지만,
대중은 여전히 ‘부드러운 취기’를 선택하고 있다.
2. 가격과 트렌드 — “도수는 내려가는데, 가격은 오른다”
• 1990년대: 소주 한 병 약 2,500원에서 3,000원.
한 병이면 다섯 명이 밤을 채웠다.
• 현재: 대도시 기준 4,000~5,000원대,
프리미엄 제품은 1만 원에 육박.
• 도수는 낮아졌지만 가격은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부드러움에는 기술과 감성의 비용이 붙었다.
3. 왜 이렇게 순해졌을까?
• 건강과 웰빙의 시대: 숙취, 부담, 건강 — 모두 ‘독한 술’을 밀어냈다.
• 새로운 음주 문화: 혼술, 여술, 대화 중심의 음주가 늘어나며
“술은 즐기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 마케팅 전략: 도수를 낮추면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젊은 층·여성층·신입 직장인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 기술의 발전: 낮은 도수에서도 ‘물맛’이 나지 않게 만드는
제조 기술이 소주 업계의 핵심이 되었다.
• 문화의 변화: 쓴맛의 상징이던 소주는 이제 부드러움의 상징이 되었다.
‘강한 사람’ 대신 ‘편안한 사람’의 시대.
4. 시대의 농도, 감정의 도수
• 25도는 열정의 시대였다.
쓴맛이 곧 진심이었다.
• 23도는 불안의 시대였다.
세기말의 물빛 속에서 청춘은 흔들렸다.
• 17도는 평화의 시대였다.
덜 취하고, 덜 싸우는 세대.
• 16도는 체념의 시대이자,
부드러움을 배운 어른들의 도수다.
대표 브랜드, 시대의 얼굴들
1. 진로소주
25도의 상징.
‘소주는 독해야 술이지’라던 시대의 자존심이었다.
2. 하이트진로 ‘참이슬’ (1998)
23도로 등장한 혁명.
세상에 처음 ‘순한 소주’라는 말을 알려준 브랜드였다.
3. 롯데 ‘처음처럼’ (2006)
부드러움으로 경쟁에 뛰어들다.
“처음처럼 맑고 순하게”라는 슬로건이 시대 감성에 맞물렸다.
4. 무학 ‘좋은 데이’ (2000년대)
지역 소주에서 전국 브랜드로 성장.
“순하고 달다”는 평가로 여성층과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5. 금복주 ‘대선’, ‘참소주’ (영남권)
여전히 20도대의 강한 맛을 지키며 ‘지역의 자존심’을 보여줬다.
6. 보해 ‘잎새주’ – 한때 ‘도시적 감성’의 아이콘.
부드럽지만 은근히 쌉쌀한 여운이 있었다.
7. 참이슬 후속 리뉴얼 (2010년대)
19도, 18도, 그리고 17도로 계속 낮추며 “순함의 기준”이 되었다.
8. ‘처음처럼’ 리뉴얼 (2010년대 후반)
‘여성도, 혼술도 부담 없이’라는 콘셉트로 세대를 넓혔다.
9. ‘좋은 데이 블루’, ‘진로이즈백’ (2020s)
각각 ‘더 순한 술’과 ‘옛 감성 복귀’를 내세운 상반된 실험.
10. 새로 (16도, 제로 슈거 콘셉트)
부드러움의 정점. 낮은 도수 + 깔끔한 맛 전략으로 젊은 층과 혼술족을 사로잡았다.
11. 14.9도 소주’ (최근 실험작)
거의 물처럼 순한 도수,
하지만 그 안에도 새로운 세대의 음주 철학이 담겨 있다.
진로가 쓴맛의 시대를 열었고,
참이슬이 순함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
부드럽지만, 여전히 쓴맛을 기억하는 세대에 서 있다.
소주의 도수가 내려갈수록
세상은 조금 더 순해지고,
사람들의 말은 조금 더 조용해졌다.
쓴맛이 사라진 시대,
우린 그 대신 ‘부드럽게 버티는 법’을 배웠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께
사랑하는 90년대 추억열차 탑승자 여러분,
그리고 이번 일요일에도 이 열차에 함께 올라탄 모든 분들께.
오늘의 주제는 불안과 청춘입니다.
우리가 그 시절 느꼈던 막막함,
잘 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던 마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전부였던 시절의 진심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불안이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었던 것 같아요.
무언가를 간절히 믿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닿고 싶었고,
그래서 우리는 쓰고, 기다리고, 꿈꾸었죠.
그때의 우리는 불안했지만,
그 불안 덕분에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삶이 조금은 느려져도 괜찮아요.
우리가 지나온 90년대의 속도는
이미 우리 안에 단단히 새겨져 있으니까요.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제 부모가 되었을 수도 있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듣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또 누군가는 여전히 삼촌이거나,
이모 혹은 고모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사랑을 시작했을지도,
어떤 분은 이혼, 사별의 슬픔을 통과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린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그 시절을 함께 겪고, 기억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은 세대의 동지들입니다.
그때의 우리, 불안했지만 서로를 믿었고
조용히 웃음을 건네던 그 마음이
지금도 여러분 안에 살아 있습니다.
오늘 밤,
그 시절의 불안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건배를 보냅니다.
그때의 청춘에게,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건배.
<90년대 학번이라 죄송합니다> 작가 유혜성 드림.
https://www.instagram.com/comet_you_
https://www.threads.com/@comet_you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