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화분 돌보기
*부드러운 BGM과 함께 읽어주세요 :)
우리 집에는 늘 크고 작은 화분이 가득하다. '플랜테리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도 전부터 우리 집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 개수가 족히 100개는 될법한 화분들은 모두 우리 엄마의 작품이다. 한때는 12개의 율마 화분이 마당 담장처럼 베란다를 두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난꽃 향기가 아침 거실을 가득 채운다. 요즘은 다육이에 푹~ 빠지신 엄마 덕분에 온 세상 다육이는 종류별로 우리 집에 다 있는 것 같다.
엄마의 작은 정원은 늘 우리 가족과 함께했는데, 어릴 적 몇 번 해외를 오가며 이사를 해야 했을 때 엄마는 그동안 정성 들여 키워오셨던 화분들을 미련 없이 친구들에게, 동네 이웃들에게 나눠주셨다. 늘 곁에 있던 식물들을 마치 집안의 병풍 취급했던 내 마음이 다 아팠고 아까웠지만, 엄마는 늘 '또 키우면 되지' 하고 고이고이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시던 식물들을 보내셨다. 짧게는 몇 개월부터 길게는 몇 년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돌보던 아이들을 보내는 마음에 아쉬움이 왜 없었을까. 나라면 키운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마음에 뿔이나 언제든 또 내 손에서 떠나버릴 존재들을 키우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엄마는 늘 그 헤어짐을 아쉬워하기보다는 또다시 금세 풍성하게 오늘의 정원을 만들어내셨다. 새로이 이사한 집에서는 늘 한 달을 넘기지 않고 어김없이 또 작지만 싱그러운 정원이 마치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리를 잡았고, 그제야 새집은 우리 집이 되었다.
어린아이들을 둔 가정이 이사가 잦다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대부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어려서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시절도 지금 돌아보면 부모님의 고생이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 했을 때마다 집안 사정은 더 안 좋아졌을 것이고, 점점 자라는 아이들의 뒷바라지는 아무리 강한 부모도 지치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고, 힘들고 또 힘들었을 그때에, 우리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매일 돌보아야 할 이들을 더 늘리셨는지, 지금은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To plant a garden is
to believe in tomorrow.
정원을 가꾸는 것은
내일을 믿는 것과 같다.
-Audrey Hepburn
우리 엄마 딸이라 그럴까, 어릴 땐 관심 없던 화분 속 작은 존재들이 서른 즈음에는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사무실에서 잠시 쉴 때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며 엄마가 어느 출근길 챙겨주신 작은 다육이 화분 몇 개는 몇 년째 내가 온전히 책임지고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작은 회사에 일하고 있는지라, 사무실의 이전이 잦았다. 지난 7년간 무려 4번의 이전을 하는 동안 나의 작은 다육이 화분들은 낯선 곳에서도 늘 거기 있던 아이들처럼 잘 적응해 내 곁을 지켰다. 내가 물 주고, 바람도 쐬어주고 볕이 좋은 곳을 찾아 놓아줬지만 '내 곁을 지켰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말로 그 작은 식물들을 돌보는 일이 나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도 감사할 때가 있지만,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 자체가 마치 전장을 누비는 것 같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한숨을 푹 쉬고 돌아본 창가에는 늘 나의 작은 식물들이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 화분들에 위로받기보다는 살아있으니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먼저였다. 엄마가 챙겨주신 화분이기도 했고, 일단 살아있는 작은 존재이니까 죽게 놔둘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의무적으로 물을 주고 볕이 좋은 곳에 놓아주었다. 그렇게 몇 개월. 우리 엄마가 우리 집의 화분들에게 쏟은 관심과 정성에 티끌도 못 미치는 돌봄이었지만, 어느 날 무심한 얼굴로 출근한 이른 아침, 작은 다육이 하나가 햇살을 받아 빛나는 꽃을 피워 나를 맞아주었다.
다육이 꽃이 그렇게 앙증맞고 예쁜지 그날 처음 알았다. 집에서도 종종 보았는데, 엄마가 이것 좀 보라며 예쁜 다육이 꽃들을 참 많이도 보여주셨는데... 내가 직접 물 주고 키워온 꽃은 마치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특별했다. 그날 아침은 왠지 다 괜찮을 것만 같았다. 아침 햇살 아래 저렇게 작고 앙증맞은 꽃이 빛나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기만 한 세상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괜찮을 거라고,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아무리 힘든 날을 보내더라도, 잊지 않고 늘 적당한 물을 주고 햇볕 아래 놓아주면 언젠가는 또 꽃이 필테니까.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것. 좋은 날에도, 그렇지 않은 날에도 나를 잃지 않고 일상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나의 작은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새싹 틔우는 봄도, 다 떨구는 가을도. 모두 다 나의 작은 정원 안에 있고, 나의 정원을 돌보는 나도 햇살 아래 꽃처럼 매번 다시 피어날 테니까.
@TUW 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