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_스토너
‘스토너’는 굉장히 세세하게 설명하듯 그러면서도 물 흐르듯 쓰인 소설이다. 글을 읽다보면 머리에 이미지가 그려질 것 같다. 가난한 시절을 아주 짧은 문장과 담백한 설명으로 그려내는 것을 읽고 처음부터 울컥하며 읽었고, 마음을 빼앗겼다. 스토너의 생애사, 그의 죽음까지 다룬 이 소설은 그가 불쌍하고 답답한 사람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는 농사를 지어야할 상황에서 대학에 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으며, 한평생 영문과에서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때론 무기력했지만 때론 열정적이고 기쁨에 차 교수로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는 아주 뛰어난 리더나 인정을 받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종신교수로 안전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갔다. 그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는 지적 교류와 마음을 나누는 사랑을 경험해보았고, 인생의 희노애락을 가졌다. 그러니 그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꿈을 이루었고, 하고 싶은 일에 빠져 있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을 때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다른 누구 못지않게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당신에게”라는 문장이 너무 와 닿고 좋았는데,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겠는가.
그의 죽음을 보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더라도 혹사하거나 과한 어떤 움직임과 에너지를 사용한 후 혹은 가난과 싸우고 버티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 제목처럼 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나와 또 그런 우리들을 생각했고. 개인이 아픈 몸을 갖게 되는 것은 온전히 그 개인의 문제일까? 개인의 탓일까. 사실 나는 스토너를 보면서 저리 살아온 사람이 어찌 안-아플 수가 있나? 싶기도 했다. 물론 아프지 않고 살 수 없는 삶에서 건강함만이 기준이 아닌 다른 몸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하고 싶은 것 혹은 해야하는 것들 속에서 사람이 과한 움직임과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삶, 그 안전망과 안정적 요건들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고민해야함을 스토너를 보면서도 생각해본다.
아, 그리고 이 책은 스토너를 쭉 따라가는 시선이기에 그의 배우자인 이디스나 그녀의 통제에 놓였던 그레이스를 볼 때는 좀 슬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부모의 특히 아버지의 통제 속에 있던 이디스가 가졌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던 문제들은 좋은 방식으로만 표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태도는 스토너뿐 아니라 그레이스에게도 전해졌고, 결국 그레이스는 원치 않는 임신과 결혼을 하면서 어머니와 원가족의 집이라는 감옥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그 이후의 그레이스는 알콜 중독 등의 문제를 갖게 된다. 무엇보다 이디스와 그레이스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 신뢰와 자기애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그 지점들이 너무 슬펐지만, 이 소설상으로는 특히 이디스를 아무렇지 않게 만나기가 좀 힘들었다. 이 소설의 세계관이 여성 시선에서 다시 쓰여진다면 어떨까. 이디스와 그레이스의 이야기 역시 더 풍성하게 확장되지 않을까? 그럼 우린 그녀에게 짜증이 나는 게 아니라 그녀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