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단 메일_임지은 ‘언니,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
이번 언니단 메일은 <연중무휴의 사랑>의 임지은 작가 글이었는데, 메일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했다.
“나중에서야 그때 실은 무척 절박했다고 고백하던 언니를. 이십대가 바글대는 어학원에서 분투하던 삼십대 초반 언니의 마음 같은 걸 생각하면, 냉방이 너무 강한 카페에 카디건 하나 없이 앉아 있는 것 같아져.
언니, 고작 어학원에서 만난 내게 어떻게 그런 사랑을 줬어? 자기도 개힘들었을 거면서?”
상황이 너무 다르지만, 내가 살아온 어떤 한 시절이 오버랩되었다. 나 빼고 모든 사람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알아서들 하고 있다고 생각되던 때, 그러려니가 아니라 나도 너무 잘 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면서도 멈추지 않고 늘 무언가 하면서 매일을 노력할 때. 나는 좋은 운동 속에서 좋은 활동가가 되고 싶었다. 운동의 시작이 나의 어깨에 보이지 않던 짐을 내리게 하고, 내 가슴을 옥죄던 것들을 풀어헤치게 했기에, 그러니까 나를 행복하게 했기에. 그런데 그 행복 속에서도 어떤 날은 아팠나보다, 라는 걸 시간이 지나 그 시절을 나오니 하게 된다. 그러니 나의 미래는 똑같이 아픔을 반복하지 않게 사랑에 대해 연구할 수밖에.
“누가 어릴 적 자기를 챙겨줬다면 많은 게 바뀌었을 거라고, 언니 참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꼭 어린 여자들을 도와줄 거야, 좋은 언니가 될 거야. 거 보란 듯 언니는 나 혼자는 발도 못 들였을 곳들에 나를 데리고 다녔지. 언니가 잔소리와 함께 건네주는 봉투엔 내가 맛있어했던 과일 따위가 들어 있었고, 그런 걸 우물대며 나는 결혼도 하기 전에 친정이 뭔지 알 거 같아졌어.”
내가 임지은 작가가 말하는 언니의 어떤 면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그런 언니가 없었어서. 물론 언니든 오빠든 엄마든 아빠든 없어도 나 혼자여도 불안하지 않게 살 수 있는 걸 더 바라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도 언니도 오빠도 선생님도 어른도 친구도, 누군가 내 곁에 서로 신뢰하고 힘을 줄 수 있는 이들이 필요하다고 믿기에. 그리고 내게는 이 역할을 언니나 여성이라 불리지 않는 이들이 좋은 친구와 선배와 동료가 되어주었기에 내게는 페미니즘이 모두의 페미니즘으로 고민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어쩌면 먼저 산 여성은 뒤에 태어난 여성의 이름을 불러주려고 언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언니답게 나는 내 동생에게서 열심히 내 이름을 지웠다고. 첫 책에 그럴듯하게 쓰면서 언니를 생각했어.”
그렇게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라고.
그러니, 나는 사랑을 멈출 수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