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아키라_우리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우정과 사랑은 그러데이션이다.’ 우정과 사랑의 명확한 경계란 것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의 경우는 그 명확성에 대해 잘 모르겠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럼 에도 우리는, 나 역시 우정과 사랑이 구분되기도 한다. 많은 우정 속에서도 누군가를 안고 싶다 여겨지는 것은 모두에게 존재하기 마련이어서.
오타니 아키라의 짧은 단편 모음집은 그러데이션 같은 여자들의 관계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사랑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짧은 소개나 책 제목, 저자를 보고 너무나 퀴어 소설인 줄 알았는데, 역시나 너무나 퀴어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다만 우리가 이 여자들을 소설에 많이 만나왔는가는 다르지만. 또 누군가는 이건 너무 특이한 이야기들인걸?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그게 너무 좋았다.
영역도 다양해져서 다분히 일상적 시간에서 SF 판타지까지 날아가 버린다. 사실 너무나 짧은 소설이라서 뭣 좀 진행해보자, 싶으면 끝이 나서 싱겁다고 여겨지기 일쑤지만 생각해보면 그 싱거운 결말은 결국 열린 결말 같아서 상상력이 퍼져나가기 좋아진다.
삶의 많은 부분을 이성애자로만 살다가 비이성애 세계에 살아가고 동성의 사람에게 빠지고 보니 이 짧은 소설들이 살갗에 들러붙듯이 와 닿기도 했다. 이성애자인 걸 알면서도 헤테로녀를 좋아하는 동성애자 사와노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닌 걸 알면서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혼자 두근대는 그 마음을. 그건 너무 잘 아는 마음이라 사와노에게 그만해! 말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이내 이입되고 만다. 그 로맨스의 그림자를, 조용한 시그널을 발견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날 좋아하는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사와노의 생각이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치하루와 사와노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랑의 연적? (풉) 짝사랑 실패 동지? 친구? 지인? 우리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인어가 되어 저수지 어딘가에 살아가 삿쯩을 만나지 못하는데도 가끔씩 놀러 가서 삿쯩이 좋아하는 라멘 면을 던져주는 ‘나’와 삿쯩. 이제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남편에게 성폭력이라 명명되어야 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경험 받게 된 여성이 있다. 그리고 그의 남편은 집 안에서 일하는 가사 돌봄 노동자에게도 똑같은 폭력을 저질렀고, 그 노동자에 의해 죽임당한다. 남편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여성이 죽였다는 것이 너무 분해 자신이 더 많이 찌르고 감옥에 갔다. 세월이 지나 할머니가 되어 출소하는 주인 여자를 기다리는 여자. 이 여자들의 관계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모두가 젊어지려 할 때, 나이든 미래의 자신의 얼굴을 택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 사람을 뭐라고 부르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반전에 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스펙트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이 든 여자들, 못생긴 여자들, 성매매 경험 여자들, 성관계가 없는 여자들, 성폭력 피해를 가진 여자들, 돈이 없는 여자들, 나이가 너무 어린 여자들, 다양하게 존재하는 이 수많은 여자의 이야기를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으려는 세상의 시선에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여전히 우리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당신을 생각하면 쓸데없어진다.’ 살아가는 데에는 낭비가 필요할 때가 있다. 망가지고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계속 곁에 있어 주는 사랑스러운 낭비. 시로타 누리는 맞춤 신발을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섹스와 연애 같은 낭비의 극치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자신은 쓸데없는 행동이나 의미 없는 짓 따위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쓸데없어도, 좋아하고 또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의 인정과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우쨌든 요즘 용기가 나의 화두인 듯 싶고.) 스스로도 납득 할 수 없는 마음이나 이유들에 대해 너무 맞는 거였다. 납득 할 수 있는 것이 좋은 것과 동의어는 아니니까. 그러니 지금 내 마음이 쓸데없고 납득 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답은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답이 아니라 수많은 질문들 앞에 서성거리는 우리를 그 자체로 사랑한다면, 괜찮을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쓸데없다고 여기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 그 쓸데없는 것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