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한강_작별하지 않는다

by 수수

5.18을 이야기했던 그는 4.3을 이야기하며 더욱 커져만 가는 고통의 세계를 껴안았나. 그런데 그는 사랑을 내보인다고 하니, 나는 그 희미하고 흐릿한 구름 가득한 바다 앞에서도 울고만 있을 수 없는 기분이 된다. 4.3은 제주에서만이 아니라 대구로 경산으로 또다시 제주로 또 어딘가로 흩어져 있다. 흩어져 점이 된 것들은 그 점으로라도 존재하기에 흩어짐을 모아내었다. 버릴 수 없었던 사람들 덕분에.


고통이 무서움은 고통이 너무 빠르고 너무 크게 확장된다는 것. 고통의 무서움은 고통을 받는 그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하나의 고통만으로도 충분이란 말을 붙일 수도 없는데, 그 사람의 곁으로, 곁으로 고통이 번진다는 것이다. 사라진 그를 대신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남은 사람들에게 고통은 박힌다. 보이지 않지만, 문신보다 더 깊이 살갗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인생이 본래 무엇이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남아 그를 대신하기라도 하듯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고통의 무서움은 그런 것이 아닐까,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교과서의 고통 같은 것에 아파하면서.


모든 것은 잊지 않고 찾아 헤매며 버텨온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해진다. 이제 더 이상 총질하지 않는다, 고 쓰지만 사실 머리 안에는 여전히 총질하고 총질 당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내가 사는 이곳은 어떤가. 총질하지 않는 이 나라는 살만한가. 보이지 않는 총은 사람들에게 겨눠지고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로 남겨진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것을 자살이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진다.


그 받아들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슬픔의 선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만지려는 욕망 속에서 바다 밑으로 묻어졌던 사람들이 있고, 다른 편의 욕망 속에서 해고 노동자란 멍울을 지고 생을 두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알고도 묵인해온 잘난 이들 속에서 피해경험자로서 지지와 치유 한 번 되어보지 못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의 선 위에 김기홍도 변희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미처 내가 알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명명되지 못한 이름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가 없다.


군부정권의 대장놀음 하던 이들이 여전히 잘 살아가고 많은 사람의 고개 숙임을 받는 것처럼, 쉽게 내뱉고 쉽게 밟고 쉽게 웃던 사람들 역시도 여전히 잘 살아간다. 그 쉬운 것들 앞에 놓였던 이들이 죽어가던 순간에도. 그러니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는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가 없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사력을 다한 작가의 현실과 소설과 꿈이 분리되지 않는 숨 가쁜 긴 글을, 긴 편지를 읽었고 그는 이를 사랑이라 부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역시도 사랑이라 불리 울 수 있는 ‘잊지 않음’을 가슴에 활활 붙잡고 사는 것이 아닐까. 기어이 오늘도 당신이 울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당신, 부디 오늘도 무탈하게 버텨주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장편소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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