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을 꼬박 채워 살았던 주거 공동체를 나와서 혼자 살기 위한 집을 구했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은 원룸이 아닐 것. 낡아도 좋고, 가전제품 옵션이 없어도 좋으니 무조건 원룸은 아닐 것이었다. 사실 2년 짧으면 1년마다 이사를 해야 하는 무주택 유목민에게는 짐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풀옵션 조건이 우선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선택을 택하지 않았다. 풀 옵션 조건으로 방값이 높아지는 것보다 같은 가격이라도 더 넓은 집을 구하고, 필요한 가전제품을 중고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혼자 살 ‘방’을 구하는 게 아니라 혼자 살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혼자’ 살 집이 아니라 누군가를 들일 수 있는 공간을 전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당시 연애하던 이는 같은 시기에 혼자 살 집을 구했는데, 우리의 조건은 완전 반대였다. 그는 풀옵션 원룸을 구했고, 나는 그 조건이 아니면 됐다.
그렇다고 비싸고 좋은 집은 쳐다볼 사정이 못 되었으니, 집을 선택하는 조건은 굉장히 협소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원룸이 아닌 저렴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그 집은 1층에 집주인이 사는 건물의 2층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2층에 있는 두 개의 집 중 하나였다. 친구가 물려준 싱글 침대와 책상을 한쪽에 두면 그만한 여분의 공간이 나오는 정도의 작은 방이 두 개 있고, 주방 겸 거실 그리고 세면대 없는 작은 욕실이 있던 집이 나의 새로운 주거공간이었다. 싱크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노옵션의 집은 중고 가게를 둘러보며 산 가구와 가전제품들, 선배가 물려준 세탁기, 옷가지들과 책들로 채워졌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6만원. 작은 방 2개와 거실 겸 주방, 욕실이 있는 남산동 집에서 1년을 살며 사계절을 보냈다. 지금 사는 집에는 에어컨이 있지만, 이때만 해도 에어컨이 없었다. 주거공동체 살적에도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선풍기만으로 여름을 나고, 옷을 껴입으며 겨울을 보냈다. (수면양말이 필수인 삶) 혼자 살기 시작한 이 집에도 주거공동체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이 찾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가 대구에 올 때면 숙소로 제공이 되기도 했다. 혼자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누구와의 합의 없이도 친구나 애인이 집에 오고, 자고 갈 수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밥을 해 먹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맞이하고 데이트를 했다. 또한 같이 공부를 하고, 모임을 가졌다. 최대한 싼 집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기에 내가 살던 집은 작고 조촐한 공간이었지만, 우리의 우정과 사랑을 나누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1년을 살고 이사를 한 것은 혼자의 삶에서 다시 누군가들과 같이 사는 삶이 되어서였다. 혼자 살던 나는 함께 활동을 하게 된 친구에게 같이 살래요? 제안을 했고, 우리는 그렇게 같이 살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서울에서 지내던 동생이 대구로 이주하기로 하면서 같이 살기로 결정했기에 나와 내 원가족인 동생, 그리고 이미 같이 살고 있던 친구까지 세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 친구와는 남산동, 율하동, 지금의 집이 있는 신암동까지 세 곳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이전의 주거공동체와는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사는 공간을 이룬 나와 함께 그 거주의 역사를 같이 나눈 사람이기도 했다. 현재는 하우스메이트가 동생이고, 그 친구는 혼자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과거 함께 살았던 하우스메이트라는 공통성으로 가끔 만나 셋이서 식사를 하곤 했다. 물론 개별적 관계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말이다. (지금은 그 친구와 글쓰기 모임도 한다)
물음표집에서 나와 혼자 살아갈 집을 구할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누군가와 함께 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년간 주거공동체에서 살면서 너무 즐겁고 만족했던 터라 앞으로의 삶을 상상할 때도 누군가와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전제되어 마음속에 존재하는 선택지였지만, 그 당시에는 우선 혼자서도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셰어를 염두하고 있진 않았었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는 않기는 쉽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곡절이 있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재미와 새로운 경험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와 생활을 공유하는 같이 살기를 시작하게 했고, 친구가 되게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예전이라면 같이 살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전혀 다른 삶과 가치관을 가진 동생과도 같이 살게 했고, 너무 다른 영역에 있던 사랑하는 친구들과 동생이 만나게 되기도 했다. (여전히 우린 너무 다르지만, 나의 친구들과 동생이 서로를 알게 되고 만나게 된 것이 내게는 행복이고 행운이라 생각되는 지점이다)
새로 생긴 이런저런 상황들로 남산동 집에서 나와 새로운 집을 구했다. 이사간 곳은 동구 율하동. 율하역에서 10분 정도 걸어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새로운 터전은 오래된 2층 단독주택의 2층 집이었다. 남산집과 마찬가지로 주인 할머니가 1층에 거주하고 있었고 우리는 2층에 세 들어 살았다. 서로 다른 크기의 방 세 개에 작은 거실하나, 남산동보다 넓은 욕실과 분리된 주방 공간이 있던 집. 이때도 집을 구하는 기준은 똑같았다. 최대한 저렴하면서 넓은 집일 것. 도배를 새로 한 집이었지만 오래되고 낡은 집이었기에 저렴한 가격에 그 집을 얻을 수 있었다.
옥상 바로 밑 집이라 여름이 되자 너무 더웠고, 지쳐 쓰러지기 전 중고 에어컨을 구입했다. 집 크기에 비해 작았던 거실이었지만, 그 집에서도 친구들과 도란도란 모여 앉아 같이 밥을 해 먹고, 내 방문을 열어 벽을 스크린 삼아 영화를 보았고, 명절에는 모여 명절 음식을 먹기도 했다. 내가 없는 동안 나의 방은 친구들의 세미나를 위한 모임 장소가 되기도 했다. 집의 모양도 위치도 달라졌지만, 내 생활은 그대로였고 내가 친구들과 보내는 것 역시도 그대로였다.
남산동 집에 들어와 함께 살았던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혼자 살던 집이 너무 안정적이어서 ‘이 사람은 준비된 사람이다’고 느꼈다고 했다. 완성되어 있는 사람이란 느낌이 늘 있었다고 했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있는 게 아니라 그걸 준비하고 노력해서 만들어 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나를 설명하는 데에 적합한 하나의 표현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다.
그렇게 세 사람의 새로운 집이 되었던 율하동 집에서는 안타깝게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수리를 했다고 했지만, 그 집에서 겨울나기는 너무 추웠고, 최악이었다. 벽에 슨 곰팡이가 모른 체 무시하고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추웠던 2월, 급하게 집을 알아보았고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모든 집들 중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원의 오래된 신암동의 한 아파트가 우리의 새로운 집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별로 비싼 금액이 아닐 수 있고 실제로 주변 아파트 중에서 가장 싼 집이었지만, 늘 그보다 훨씬 저렴한 집을 구해 살았던 나였기에 그 집은 내게 마지노선으로 최대치 집세인 곳이었다. 직전 집에서 너무 추웠던 터라 주택과는 비교가 안 되게 따뜻하고 아늑했던 아파트를 망설임 끝에 선택했다.
그 집은 분리된 방이 두 개, 미닫이문으로 구분하여 방으로도 쓸 수 있고 거실로도 쓸 수 있는 공간, 작은 주방 공간, 욕실과 베란다로 이뤄졌다. 이사 때 우리는 여전히 셋이었기에 동생과 친구가 각각 분리된 방을 사용하고, 두 방에 내 짐을 나눠 넣은 나는 거실에서 생활했다. 나는 여전히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 한 2년의 계약이 끝나고 새로이 갱신할 무렵 나와 동생은 그 집에 계속 남고, 친구는 독립(이라고 우리는 표현했다)하면서 거주 공간의 구성원 변화를 갖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원하고 필요했던 상황과 선택들로 펼쳐진 결과들이었지만, 여전히 그 선택과 과정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완벽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너무 부족함이 많았다. 서로가 지키기 위한 규칙들을 명확히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한 사람은 원가족이고, 한 사람은 같이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그런 것들을 하기 오히려 어렵게 하는 지점이 있기도 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당연하게도 갈등을 빚기도 했고, 어려움들이 존재하기도 했다. 나도 그들 사이에, 그들도 나와 다른 상대방 사이에 낀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균형을 지키기 위해 남 몰래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 마무리 되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완료형이 아닌 끊임없는 진행형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배운 점들이 있고 얻은 것들이 있다.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 하나의 공간을 꾸려가고 만들어가는 것은 무수한 약속과 쉽지 않은 합의의 연속이지만, 도전해볼만 하다. 다 됐고, 혼자 살면 그만, 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수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같이 살아가는 일 역시 여전히 꿈꿔볼만 한 일이다.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서로에게 필요한 거리를 익히면서도 서로에게 필요한 온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안전이 되고 울타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 다른 우주를 껴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