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큐단편선_팔꿈치를 주세요
큐큐 퀴어 단편선 4번째 책 <팔꿈치를 주세요>를 읽었다. 나는 큐큐퀴어단편선을 빼놓지 않고 읽어왔는데, 시리즈가 더해질수록 더 좋아하게 되었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에서 좋아하는 최진영이 더해진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 조금 더, 그리고 정세랑이다!하고 펼쳐 다른 많은 작가를 인식하게 된 ‘언니밖에 없네’는 꽤 좋아했다. 그런 이 시리즈에 황정은 작가가 나타났다. 다른 작가들의 책도 읽고, 꽤 좋아하는 이도 있지만 이미 나에게는 황정은만으로도 이유가 충분을 넘어서 이 책을 만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6명의 작가 중 절반은 내가 이미 아는, 책을 읽어본 적 있는 작가들이었고 딱 절반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는 작가들이었고, 나는 이 책이 너무 좋았다. 너무 슬퍼서 울다가도, 좋았다.
이 책의 첫 소설은 황정은 작가의 소설이다. 함께 산 지 30여 년이 된 동성 연인의 이야기. 나이듦과 돌봄을 고민하는 나에게 이들의 이야기가 어떤 울림으로 오려나 생각하며 읽다가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한쪽은 어머니 또 한쪽은 딸이나 며느리로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식하곤 낮은 탄식과 함께 책 읽기를 잠시 멈췄다. 나는 또 울고 싶어졌기 때문에. 익숙하게 만나온 게 아닌 이야기.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너무나 익숙하게 존재하고 있을, 지금도 어디선가 살아갈 사람들. 누군가 간절하게 바라왔을 관계의 모습임에도 타인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예측에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사람들을 만났다. ‘고모들’이라 불리었던 여자 둘과 살았던 지영은 지금과 다시 영은에게 ‘이모들’로 불리며 29년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연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한쪽이 어머니? 혹은 딸이나 며느리 혹은 동생? 이라 질문받는 그들은 함께 살아온 지 29년 된 여성들이고, 연인이다. 보통의 삶들, 보통의 사람들. 탄식 없이 만나고 싶다. 눈물 없이 상상하고 싶다. 나와 우리의 삶으로. 여전히 울고 말지만. “너무 얇고 조그맣지만, 소중해. 사랑해.”라니, 낯간지러웠을 작가의 말이 황정은의 말이고, 그가 쓴 소설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고 나니 그 짧은 낯 간지러운 문장에도 어떤 사람들은 깨질까봐 겁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다시금 생각한, <올빼미와 개구리>
이는 <젤로의 변성기>와도 만난다. 다른 설정과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이라고 해야 할 서로 다른 두 사람이지만 이내 손깍지를 꼭 붙잡는 희강과 오선재처럼. 그러니까, 네가 사랑하는 소년 젤로는 너를 사랑해서 어른이 되어 버렸어. 젤로가 된 희강아, 네가 너의 마음을 알게 되고 어른이 되는 때가 올까, 과연. 안윤의 <모린>은 장애를 다룬다. 책 제목인 ‘팔꿈치를 주세요’는 이 소설에 나오는 말이다.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재활자립팀장인 영은과 자원활동가로 간 미란이 만난 날, 영은을 안내하기 위해 나선 미란과의 시작. “팔꿈치를 주세요.” 보이는 것들의 사람에겐 네? 되묻거나 어리둥절할 그 말이 시작이었다. ‘사실 그날부터가 우리의 1일이었다’고 시작이 된 날. 가장 많은 밑줄을 <모린>에서 그었다. 살면서 이런 글을 하나 쓴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시간이 삶에 어느 순간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까.
결국에는 서로가 조응되지 못한, 누군가를 오랜 시간 품어왔다. 영은의 말처럼 ‘걸릴 만큼 걸렸을까요. 그 물음을 너무 오래 품고 있었나 봐요.’ 그 물음은 물음표에서 마침표가 되었지만, 상대에게 가닿지 못하고 내게만 안팎으로 머무는 것이 되었다. 조지에게 이야기한 요제프의 말은 조지에게만이 아니라 내게도 눈물이 되었다.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는 때는 없는 그런 순간’에 대하여 나는 생각해. 그리고 조금은 알았다. 내가 그 말을 꺼낸 전후가 왜 뿌리가 흔들리는, 뒤바뀌는 기분이었는지. 내 것이 아닌 인생을 나의 일부로 안으려 했기 때문이란 걸.
그토록 생채기 내려고 작정한 사람들처럼 싸운 은영과 희율의 모습에 숨이 조금 막힐 때, 작가는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오랜만에 행복했다고 했다. 그의 글에 말이 안 되잖아, 생각하면서도 그걸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랑한다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상한 말이지만 상처와 사랑이 공존하며 뒤엉켜 있는 것 아니겠냐고. 김초엽 작가의 이야기는 정말 내용이 독보적이라 할 만한 작가야...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리고 그가 갖는 비독점적 연애에 대해 말했다. 일대일 관계라고 해야 할지 아닐지 모르겠는 이 관계들에 대해 그는 SF를 통해 완전한 자유를 주고 싶으면서도 너무 멀리 떠나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흔들렸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김지금의 질병에 나도 미뤄두고 미뤄둔 산부인과를 이제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몸에 있는 근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필요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팔꿈치를 주세요>, 황정은·안윤·박서련·김멜라·서수진·김초엽, 큐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