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현_너를 닮은 사람
‘너를 닮은 사람.’
먼저는 드라마였다. 고현정과 신현빈이 나온 동명의 드라마. 나는 드라마를 보기 전에 이것저것 찾아보는 타입이기에 이 드라마가 한 소설가의 소설집 중 하나의 단편에서 시작된 것을 알게 되었다. 드라마의 유보라 작가는 단편 소설을 만나 16부작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익숙한 상황과 이름들이지만, 드라마와 소설은 모두 같지 않고 어떤 면에선 전혀 같지 않다. 별 볼일 없던 것을 드라마는 별 볼일 있게 하는 법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장치들로 소설에서 그리 부각되지 않았던 인물들이 드라마에선 드러났고, 그것은 극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서로가 ‘너를 닮은 사람’이라 여기고 지나갔다면 어땠을까. 애초에 너를 너를 닮은 사람이라 지나치고 말 관계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희주는 해원을 사랑했던 것 아닐까. 가난과 사랑과 억압의 욕망이 뒤섞여 서로 상처입히고 만, 잘못된 욕망의 발현. 수치가 되고 굴욕이 되었던 가난에서 제 힘 하나 없이 벗어나서도 수치와 굴욕이 끝나지 않았던 그녀에게 가난의 모습을 하고도 빛이 날 수 있었던 두 ‘청춘’이 다가와 그녀는 사랑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부모처럼 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그녀를 누가 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는 욕망해서는 안 될, 구(해)원이 되고 싶었을지도.
이 책 속에는 원작 소설과 드라마 사이에 크게 다른 지점들도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고 전반적으로 이 작가의 책에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가난이다. 그리고 폭력. 지극지긋한 가난과 지긋지긋 가족의 폭력. 그의 소설에는 사는 게 구질구질한 이가 합법적으로 사라지기를 희망하며 양장 제본이 되기를 선택하기도 하며, 버려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납치된 아이들,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의 이야기에는 모두 떠나고, 죽고, 돌아오는 이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와 사람들, 남은 사람들이 있다. 이건 비현실이 아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들. 어쩌면 사람을 살리는 것은 작은 다정의 이어짐일지도 모른다.
‘지나간 미래’는 끔찍했으나, 지독한 현실 같았고, 그렇지 않길 바라는 디스토피아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가까운 미래 혹은 이미 벌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가의 글은 선뜩하고 느린 듯 느껴지다가도 속도감이 밀고 들어온다. 뒤이어 이어지는 이야기도 그렇다. 이 소설에는 일종의 반전이라면 반전이 있다. 그리고 그게 종이처럼 자꾸 찢기려 한다. 록산게이는 어렸을 때, 경험한 피해 경험 이후 자신의 몸을 하나의 무기처럼 몸을 키웠다. ‘이곳에서 얼마나 먼’의 제인은 예쁜 얼굴로 사랑을 독차지하고 부모처럼 키워준 나의 아빠와 불륜이나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피해 경험자였다. 그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땀 흘리며 식당에 있는 그 ‘뚱뚱’한 여자의 삶이 불행하다고 혹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빠가 죄값을 치르지 않아 화가 난다. 죽음이 처벌은 아니니까.
나는 이 작가의 글을 더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암담한 미래에 눈을 질끈 감게 되어버릴 것 같아서. 그럼에도 만성적인 불안과 함께 살아내기를 하면서 이 소설을 끝내 써내고, ‘이제 한 시절의 문을 닫는다’는 작가의 말에 온기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의 원 제목은 <실수하는 인간>이다.) 드라마 덕에 몰랐던 이의 어떤 고단한 시절을 통과하는 과정의 것을 만났다.
<너를 닮은 사람>, 정소현,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