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_재인, 재욱, 재훈
정세랑 작가의 많은 책들이 보이는 특징이자 장점은 술술 잘 읽힌다는 거다. 그리고 그 책들 중 모든 것이 취향으로 맞아떨어지진 않았지만, 그의 책은 대체로 좋았다. 산책의 2월 책으로 정해진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정세랑답군, 하면서 술술 읽히는 책을 읽으며 음, 근데 이번엔 무슨 내용일까? 이 남매의 이야기는 어떻게 나아가려나?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오호라? 드디어 시작이군! 했던 것은 재인, 재욱, 재훈 세 남매에게 어떤 희한한 능력이 생기면서부터였다. 작가의 말에서 정세랑 작가는 고등학교 때 짝인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우연, 아주 조그만 초능력, 평범하고 작은 친절, 자주 마주치는 다정함’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자신의 친구인 재인과 재욱의 작은 일부인 부분과 동생인 재훈의 이야기를 가져와 완전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친구와 동생에게 전하는 애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주 흥미롭고 따뜻한 소설로 완성되었다. 재인의 이상한, 그러나 매우 강한 손톱으로의 변화는 룸메이트인 경아를 안전이별이지 못한 폭력으로부터 구해냈고, 엄마를 구해냈다. 재훈의 엘리베이터 초능력은 조지아에서 아무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지만, save 3답게 친구들을 습격으로부터 구해냈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재욱. 밑줄은 재인의 이야기에서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읽고 나선 어쩐지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다시 읽은 이야기는 재욱의 ‘구하기’ 이야기였다. 사막으로 파견을 나갔던 친구의 경험과 이름을 가져온 인물이었던 재훈은 어느 날부터 시야가 붉어졌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건 어떤 위험 신호, 그러니까 신뢰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이게 한다는 표시임을. 다른 남매들처럼 그에게도 도착한 의문의 택배는 레이저포인터였는데, 그는 그걸 사막에다 쏘다가 탈수로 쓰러져있던 어린이들을 구해낸다. 전쟁고아로 인신매매까지 당한 어린이들이 살고 싶어서 도망친 시작에는 재훈이 무심코 쏜 레이저포인터의 빨간 점이 있었던 것. 이 황당한 이야기는 소설에서만 가능하겠지만, 어쩐지 뉴스를 본 듯이 슬퍼지고 여러 생각이 들었기도 해서 재욱이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어디에서든 이걸 쏘면 알 수 있을 거야. 그때는 내가 그 빛을 따라서 찾으러 갈게.”라는 그 문장을 곱씹으며 눈물을 흘렀다. 재욱은 그 뒤 히얌과 수아드를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정세랑은 그들의 소식을 소설에 남겨둔다. 안전하게 제네바로 이동된 그들은 이후 런던으로 가게 되었고, 히얌은 간호사가 수아드는 인신매매 척격 인권운동가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수아드가 구조활동을 하면서 헬기와 차에 자신들을 구해준 우키와 산제이 이름을 붙이며 기억하고 살았다는 것을. 그들은 재욱과 산제이를 잊지 않고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아무것도 아닌 우연, 아주 조그만 초능력, 평범하고 작은 친절, 자주 마주치는 다정함은 작은 것들로 존재하지만, 누군가를 삶에서 구해내기도 하고 서로의 용기가 되기도 한다. 이 너무나 소설다운 소설은 그것을 가슴에 꼭 쥐게 한다.
<재인, 재욱, 재훈>, 정세랑 소설,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