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풍부한 여성영화의 세계

손희정_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by 수수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책 제목이 너무 좋다. 표지도 너무 좋다. 어떤 이야기를 만날까? 두근거리게 하는 제목과 표지는 그 자체로 좋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여성영화의 세계라니! “이거잖아. 내가 기다려온 게 이거잖아. 믓찌다, 믓쪄!” 절로 립제이 언니(멋있으면 언니)모드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개봉작 한 편에 집중해서 글을 쓰려 했다는 저자는 필로를 훑고, 인터뷰를 준비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영화 한 편만이 아니라 감독들의 작품 세계 ‘자체’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감독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그 이후가 궁금해지는 만큼이나 그 이전도 궁금해지게 된다. 그가 어떤 지점에서 변화했는지, 혹은 이전부터 놓지 않고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지기 때문이고, 또 그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1부는 2019-2020년 장편 개봉작 기준이기 때문에 2021년으로 그리고 2022년 올해로 오면 더욱 더 확장된 그 유니버스를 만날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완성된 리스트가 아니다. 우리는 계속 독자적이면서도 서로가 연결된 세계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아, 얼마나 두근거리는 일인가. 1부의 13개의 영화 중 4개의 영화를 보지 못한 나는 일단 여기부터도 설렘이 시작되어서 일단은 개봉 당시 봐야지, 하고는 시간이 흘렀던 ‘보희와 녹양’을 꼭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내용도 그렇고 이 책 속 저자의 글이 너무너무 좋았다. (고 생각하고는 그런 글들이 어디 이거뿐이랴 싶어진다) 보지 못한 영화도 그럴진대, 내가 본 영화의, 그리고 좋아했던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야기는 얼마나 두근두근 이야기가 됐는지. 이야기를 잘 다듬고 쓴 저자 덕분에 내내 설레고, 또 눈물짓고, 두 손에 힘을 꽉 담기도 하면서 읽어나갔다.


“영화 전체의 에너지는 이 여성이 클리셰가 되기를 거절하는 순간, 더 이상 시선의 대상이기룰 원치 않고 대신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자 하는 그 순간에 집중되죠.” (아녜스 바르다)


7년에서 약 20년의 시간동안 작품을 만들어온 감독들의 찬란 이야기 이후 이 책은 그 전부터 이 유니버스가 가능할 수 있었던, 먼저 세계의 시작을 열고 만들어온 감독들과 영화사를 다룬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이야기를 만나니 여성영화의 역사가 분투하며 달려왔음을, 그리고 이렇게 연결되어 있음을 물씬 가득 채우도록 느끼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배우에게 관심이 생기면 그의 작품을 찾아보곤 했던 경우가 더 많았던 나에게 개인적으로 2010년 후반부터 2020년대의 여성 감독들의 영화는 바로 그 감독들의 세계를 똑똑-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장이 되어주었다. 이 책은 거기에 더하기가 되어 확실의 도장 쾅! 찍는 것 같았고.


이 책을 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이라서 나 같은 사람은 즐거웠을 것 같은데, 대부분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면 그에게 이 책은 어떨까?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영화를 몰라서 이입 되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 책 속 글과 감독들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와, 이 영화 궁금하다! 보고 싶다!” 생각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겠는가,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같이 영화보자고 꼬셔야지)


그리고 여기까지, 손희정 ‘작가’의 단독저서를 모두 읽었다. 너무 좋으네:)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손희정,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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