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칠_보드랍게
영화 <보드랍게>는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의 제안이 만들게 된 시작이라고 했다. 자료를 살펴보며 고 김순악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김순악 할머니를 담은 영화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외 다른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본 영화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김순악 할머니 이야기를 담은 감독은 흔히들 생각하는 피해자화에 고정되지 않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인간으로서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고, 영화는 그런 지점에서 관객들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가난이 어떻게 ‘여성’을 ‘몸으로(만)’ 환원시키는지, 또 몸으로만 환원시킨 경험은 어떤 경험으로 누적되고, 또 다른 삶의 모양을 갖기가 어려운 요소가 되는지. 그 선택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빈곤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생에 납작한 영향을 잠시 주고 마는 것이 아니다. 빈곤은 먹고 사는 것만이 아닌 교육권 등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어떻게 박탈시키기 쉬운가. 또한 그 박탈이 만들게 되는 계속-누적의 박탈된 삶의 경험이 이후의 삶에도 어떻게 영향을 갖는지 영화는 김순악 할머니를 보며,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자녀들까지 이어져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 지점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영화를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다루는 ‘복합차별’에 대한 영화로도 읽게 되었다. 가난, 성별, 나이(청소년), 인종, ‘몸’에 대한 인식들이 어떻게 엮이고 서로의 작동 기제가 되는가.
또 ‘위안부’ 피해경험자의 삶이 위안부 피해자라 불리기까지의 삶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도, 다뤄지지도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그러니까 소위 생각하는 ‘순수한’ 피해자만이 아닌 모습들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놓치지 않고 볼 것인가에 대해서. ‘피해자다움’ 외 혹은 그 범주에서 벗어난 김순악의 삶은 마음대로 지워버리고, 가리면 끝일까. 또한 이것은 개인의 문제로 끝나고 말 일인가? 일본에 의한 ‘위안부’ 피해경험자였던 그. 아무렇지 않게 돌아갈 곳도 단 돈 얼마도 없이 유곽으로 팔려가야 했던 그. 그러나 자신 스스로 ‘마마상’이기도 했던 그. 그 여성의 자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의 억울함도, 그의 피해도 모두 때론 토해내는 울분이, 때론 자원이 되었던 것들. 영화에서 많은 이름으로 순악씨를 불렀듯이, 그가 불렸듯이 그 이름들로도 그녀의 삶은 단순하게 이야기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 이름 모두가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김순악의 삶의 어떤 시기를 피해자로, 어떤 시기를 가해자로, 어떤 시기는 옳고 어떤 시기는 그름으로 명백하게 나뉠 수 있을까. 이분법을 넘어서 우리가 놓쳤을, 혹은 쉽게 놓칠 사이사이의 이야기들을 흘러내리는 모래알을 손에 힘주고 쥐듯 잡고 싶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영화는 대구지역에서 미투운동의 고발자로 발화한 이들의 목소리를 얹는다. 시민모임과 감독은 2018년 미투 운동과 연결하여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할머니들이 없다면 끝나거나 사라지는 운동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이고, 해결되어야할, 연결된 성적 폭력에 대한 의제로 다루고 싶었다고 했다. 시민모임 활동가들과 미투 고발자들과 김순악 할머니의 때론 교차하고 때론 인터뷰로 이어지는 나래이션을 통해 김순악의 삶을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었고 동시에 김순악의 이야기들로 현재 미투 운동 발화자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더불어 성폭력 피해 경험뿐 아ㅓ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으로서 어떤 힘이 될 수 있는지 까지도. (이 지점에서는 최근에 읽은 정세랑 작가의 <재인, 재욱, 재훈> 소설에서 이야기한 다정함을 만드는 작은 친절, 그것이 사람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연대와 사랑을 떠오르게 했고)
“누구하나 보드랍게 이야기한 적 없다.”는 김순악 할머니의 곁에도, 또한 할머니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 자신이 말한 ‘보드랍게’ 기억될 지지자가, 치유의 동료가, 눈물 나게 하는 사랑이 존재하게 되었다. 질문 하나 안고 마무리한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보드랍게’ 힘을 주고, 받고, 곁에 설 것인가. 소리를 빽빽 질러대고, 찬거리에 서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키워나가고 나눠갈 ‘보드랍게’의 마음을.
#보드랍게 #박문칠 #김순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