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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채혜원_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by 수수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한국에서 페미니스트 저널 기자 및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도 일했던 저자가 베를린에서 경험하고 함께 만든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 활동 및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억압에 맞선 활동, 그리고 그 활동을 만들어간 사람들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여성’이란 말이 자주, 중요하게, 강하게 사용되는데, 이 책에서 ‘여성’은 여성, 레즈비언, 트랜스섹슈얼 및 인터섹스, 그리고 남녀가 아닌 제3의 성별을 뜻하는 논바이너리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women에 *별표를 붙인 의미로 다양한 젠더를 포괄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여성에게 향하는 모든 성적 폭력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지정성별 여성만이 아닌 가부장제 남성중심 이성애 정상성 사회만이 아닌 그 좁은 경계, 그 좁은 원을 넘어서서 다양한 존재들의 평등하고 안전한 삶과 폭력에 맞서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 등을 떠나 모든 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장소를 지향한다. 이에 어떤 형태의 차별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처럼)


특히 난민/이주 여성들의 현실과 당장 오늘 하루의 삶을 위협받는 상태를 바꾸기 위해 싸우는 투쟁들을 담고 있고, 다양한 가족구성권과 관계 맺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여전히 이성애 결혼제도만을 합법이라 칭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도 더 깊은 사유와 성찰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진하고 짙은 여성연대와 우정, 사랑의 시간을 만나면서 매우 부럽기도 하고, 지금의 친구들과의 관계, 더 나아가야 할 우리의 우정과 사랑, 지지와 연대에 대해 몇 번이고 생각하면서 뭉클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동시에 고민과 여러 생각을 갖게 되기도 했다.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가 반가워 함께 기록해둔다. “베를린에서 만난 특별한 여자들”이란 제목으로 말라라이 조야, 데보라 펠드먼, 마리아 슈라더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보라 펠드먼과 마리아 슈라더의 연관이 뭐냐면, 일단 나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도리스 되리 감독의 영화를 너무 사랑한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파니 핑크>로 개봉됐다.(이 영화 5월에 공방에서 보기로 함) 그 영화의 파니 핑크 주인공인 배우가 바로 마리아 슈라더이다. 그리고 마리아 슈라더가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가 있는데, 이 드라마 역시 너무 사랑하면서 본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의 원작 책의 저자가 바로 데보라 펠드먼이다. 이 드라마를 만든 과정들을 엿보면 드라마의 소재도 그러하여 뭔가 감동이 있는데, 베를린에 살면서 활동해온 여러 이야기를 한국에 전해준 저자의 책에 마지막 이야기로 이 여성들의 이야기가 실려 그 영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관객이자 시청자로서 반가워서 메모를 남겨둔다.


수많은 여성연대가 이뤄지고, 다양한 삶의 모양이 그대로 안전하게 지켜지고 이어나갈 수 있도록 싸우는 사회정치적 소수자 싸움을 매일 목도하는 한국 사회에서 더 깊고 더 넓고 그리고 더 풍성하게 여성*‘들’의 만남을 기대하며, 또한 나 역시 그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텔레파시 보내듯 온갖 힘으로 쏘고 싶다. 난 혼자가 아니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어떤 여자*도 혼자가 아니라고.


(개인적으로는 비서울 지역에서 비영리 등 등록된 단체로 활동하지 않는 작은 규모의 페미니즘 팀으로 몇 년을 보내면서, 그리고 한국의 주류 여성운동의 네트워크들을 보면서, 또 이 책을 읽으면서 포괄적인 여성 활동 공간으로 소환되지 않는 것, 크고 느슨한 네트워크에서 무엇을 합의하고 지켜낼 것인지 등에 대해 이전의 대구에서의 미투연대체나 범페미네트워크 등과 함께 연결 지어 혼자 또 이런저런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베를린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채혜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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