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서른, 아홉>

by 수수

<서른, 아홉>은 결국 돌봄에 대한 이야기였다. 친애하는 사이와 돌봄에 대해. 아주아주 친밀하고 아주아주 소중한 이가 죽음을 앞두고 그와 친구들, 가족들이 갖는 마지막 시간이 그려지는 드라마를 보며 매회 울었다. 지독하리만큼 이성애 서사와 정상가족에서도 탑오브탑 같은 원가족 서사를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입양가족이나 오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선택과 새로운 가족의 모양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하니까 그 부분은 조금 덜어내기도 해보면서. 나에게 누가 그래줄까, 보다는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비슷한 나이의 주인공들이었다. 서른 일곱의 나에게 서른 아홉의 그들은. 그러나 드라마 주인공들이 갖는 원가족이나 직업, 상황, 공간 등 자원은 너무나 다르기도 하고 그들의 주고받는 사랑이 너무 이상적이고 공감이 안 될 것 같아서 보고싶다 생각하고도 보지 않은 드라마였다. 결국 봤고, 매번 울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그러기도 했지만, 아픈 몸과 관계들, 나이듦 등은 내가 끌어안는 문제이기도 해서. 앞으로 다가올 조금 더 나이듦의 시간과 또 이별의 시간에 대해 같은 모양이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었고, 이해하고 싶었다. 신나는 시한부, 신나는 장례식일 순 없더라도 그런 바람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찬영이 자신의 죽음, 떠나감을 준비하며 만든 부고리스트를 받고 브런치리스트로 만들어준 미조의 우정과 사랑처럼 그때의 우리는 어떤 존재들이 서로의 곁에 있고, 무엇을 해나갈까. 슬픔이 없는 것처럼 살아보기로 했단 말이 무엇인지 알겠지만, 그럼에도 슬픔이 존재하는데 슬픔이 없는 것일 순 없으니까. 그러니 그 없어지지 않는 슬픔 속에서 무엇을 함께 하고 나눌까.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사랑이 삶을 떠받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덜 틀에 박힌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때문이라고.” 쓴 리베카 솔닛의 글처럼 내게 있어준 사람들과 그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게 너무 달라질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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