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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_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by 수수

리베카 솔닛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은 세계여성의 날에 맞춰 출간되었다. ‘걸려 넘어진 돌들로 쌓은 성’이라는 글을 읽으며 찡해져 눈물이 올라왔고, 추천인들의 말은 감동의 여운이 느껴졌다. 세상에 존재하나, 없는 것처럼 치부된 기억을에 대해 쓴다. 쓰고 기억하고 곁에 선 이들이 있다. 리베카 솔닛은 아직 충분히 들리지 않은 목소리들을 증폭하고, 그 세계를 여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썼다, 이 글‘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함께 읽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조르바는 더 별로가 된다..)


이 책에는 그에게 가해진 많은 성적 폭력과 고난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에게 가해진.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고, 나의 엄마인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결과가 결혼이 되기 쉬웠고, 그것이 피해와 가해로 명명되지도 않았던 때, 그 결과물로 만들어진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아이였다. 나는 그것을 서른이 넘어 알게 되었다. 나의 엄마인 여성의 피해 서사를. 그리고 지금의 리베카 솔닛과 달리 그가 해야 할, 하고 싶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고, 말하고 쓰면서 드러낸 목소리가 마음대로 삭제당하거나, 무시당하던 적도 있었다. 그런 시절을 경험하다 보면 여성들은 어떻게 될까? 그런 무시를 수시로 경험해온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 내면화할까.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여성들. 우울함으로 둘러싸인 여성들. 미운 마음이 자라나 자신을 뒤덮기도 하는 여성들. 아픈 여성들, 울부짖는 여성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것이 그 많은 여성들의 탓이 아니란 걸.


리베카 솔닛의 책에는 지정성별 여성들만 가득 차 있지는 않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게이 친구들과의 일상, 문화, 사건들, 문제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풀어낸다. “남성 동성애혐오자가 남성 동성애자를 조롱할 때는 거의 반드시 여자에 비교함으로써 욕을 한다.” 성소수자혐오와 여성혐오가 매우 밀접하고 닮아 있음을 그는 짚으며 우리 사회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 구조 문제에 대해 말한다. 그런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사랑들이 존재할 수 있는지, 다른 삶이란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크게 와 닿았지만:)


리베카 솔닛에게는 책상이 있다. 데이트 폭력 생존자 친구가 준 책상. 그 책상에서 그는 무수히 많은 글을 썼다. 책상에 대해. 나는 그럴듯한 책상이 없었다. 카페에 가면 늘 널찍하고 단단한 나무 테이블이 있는 자리에 가 앉곤 했다. 그 자리를 좋아하며 늘 그 자리를 고정석으로 앉았다. 한편으로는 동경과도 같았겠지. 내 딴에는 많은 고민을 하다 산 주방의 식탁용 테이블에서 나는 밥을 먹는 횟수보다 책을 읽거나 쓰기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곤 한다. 그 자리는 나의 고정석이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전과는 달리 주로 여성 작가들의 책을 읽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서로 알지 못한 여성들의 세계에 나는 물에 뛰어들 듯 풍덩- 한다. 우리의 세계는 그렇게 서로 접해지고 확장된다.


그가 쓴 문장을 하나 마지막으로 남겨둔다. 내 인생도 사회운동을 하고, 페미니즘을 만나고, 그 속에서 동료들을 만나고, 친구들과 관계가 생기고, 퀴어들과 살아가면서 그러할 수 있었기에.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사랑이 삶을 떠받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덜 틀에 박힌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때문이라고.”


<세상에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지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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