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현_마고
<마고>는 미군정기 친미 인사였던 윤박 교수의 살해 사건에 용의자로 얽힌, 사실은 억울한 피해경험자들은 세 명의 여성들에 대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운서와 가성이 찾아나가며 만나게 되는 남성중심적 세상에서 젠더•계급 권력을 부리는 이들 사이에서도 버티며 살아갔던 여성들의 이야기이며, 툭하면 맞고, 욕 먹고, 이상하다고 치부받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마고는 작가의 다른 소설들과 이어진다. 앞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부터 뒤로는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로 이어지는 연작과도 같은 소설로 여겨졌다. (실제로 <마고>와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다>는 같은 시기에 쓰여졌다고 한다)
한정현 작가의 소설에 계속 반복되는 같음들이 있다. 의사/의학이나 역사, 좌파/빨치산, 게이•레즈비언뿐 아닌 인터섹스와 트랜스젠더와 같이 조선의 ‘변태 성욕자’로 불리우던 사람들, 그리고 “낙관할 것”. 이 요소들은 각기 다른 소설 속에 조금씩 다른 위치와 모양으로 존재하지만, 변함없이 등장한다. 한국 사회가 쉽사리 이야기 꺼내지 않았던, 그러나 존재했던 역사의 한 구석을 끄집어 내오고 그러모아 글을 써내려가는 한정현 작가는 특히나 지워짐 속에서 또 지워지기가 멈춰지지 않았던 여성•퀴어에 집중한 퀴어 문학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소설로 하여금 만날 수 없었던 누락된 이들을 독자 역시 그러모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관통되는 세계관을 가진 작가 그리고 그런 작가의 소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이고 행복이다.
이번 책 <마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안나 서와 윤경준(윤경아)의 사랑은 변태성욕이라 조롱당한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에리카는 인터섹스란 이유로 ‘전시’ 당하고, 가성은 ‘여성’이란 이유로 강제 결혼과 폭력의 경험을 감당해야 했다. 여성이 되고 싶었던 운서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자유도, 사랑에 손 내밀지도 못하고 살아가야 했고, 세 명의 여성 용의자 역시 낙인 찍히고, 차별 당하고, 협박 당하고, 지워져야 했다. 가성과 운서는 서로를 절절하게 그리고 사랑하지만, 사랑의 말 한 번 꺼내지 못하고 서로에게 들려주지 못했다. 그러나 낙관할 것. 기억하고, 기록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고 기록하는 잊지 않는 이들이 있는 한. 그러니 낙관할 것. 서로를 구해내고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연결되기 위해 우리는 낙관할 것. 세상을 창조한 신이지만, 남성중심적 해석관에서 마녀로 전락한 ‘마고’. 마녀라 한다면 마녀가 되어도 좋다. 단 그 강제에 가려졌던 의미와 이름은 우리가 찾아나서고 새로운 마녀-마고로 태어날테니. 그리하여 서로를 오늘 하루만이라도 더, 더 살릴 수 있고,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한정현 작가의 <소녀 연예인 이보나> 소설집을 처음 읽을 때, 잘 읽히지 않아서 이 작가 글은 나한테 그러려나 하며 별 생각 없이 넘어갔었다. 그러다 친구가 그의 <줄리아나 도쿄>를 너무 좋아한다며 내게 선물해주었고, 그 책을 읽고 단박에 한정현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마음에 들어왔다. 그 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를 읽으며 그의 소설은 내 마음을 관통했다. 그리고 이제 <마고>. 이 너무나 빼곡하게 사랑 이야기인, 그러나 사랑 이야기라 말하기 어렵고 사랑 이야기이지 않을 수 없는 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모쪼록 숨겨진 사이의 말들을 우리가 잘 만날 수 있기를.
<마고>, 한정현 소설, 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