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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노트

구묘진_악어노트

by 수수

“사람이 받는 가장 큰 고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잘못된 대우에서 오는 것이다.”

-구묘진 Qiu Miaojin


3년 전에 읽고, 다른 모임의 책으로 다시 읽게 된 <악어노트>는 그때와 겹치는 밑줄이 단 하나도 없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읽는 마음도 읽고난 마음도 그때와 같지 않다. 그때의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의 마름을 적셔주지 못하게 되는 것에 꽂혔던 거 같은데, 지금은 어쩐지 사랑이란 놓을 수도 놓칠 수도 없는 것이라면서도 너무나 지긋지긋한 듯 한 기분이랄까. 그건 아마도 지금의 나의 관심지점과 고민지점이 그래서일 것이다. 사랑이 서로를 성장하게 하고 확장될 수 있다고 너무 믿지만, 라즈가 말했던 것처럼 무언가를 치료하는 목적으로서 사랑은 고민스럽게 하니까. 결핍이 누군가에게 향하는 동력이 될 수 있지만, 결핍으로 사랑의 과정이 진행되기도, 완성되기도 어렵다 여기기 때문이다.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임이 죄의식이 되는 여전한 사회에서 그러한 여성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기 얼마나 어려운가. 내 뜻과 무관하게 배제되는 ‘정상성’ 범주. 그곳에서의 탈락. 온 세상이 자신을 사랑한다 하여도 소용없다며 자신을 증오하는, 레즈비언 라즈와 찌르고 찌르고 그러나 곁에 두는 선택도 끝내 못하는 사랑을 보며 구묘진의 글이 너무 힘들어서 숨이 막혔다. 악어는 스스로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했다. 구묘진은 세상이 잘못한 게 없고 자신의 나약이 문제라 했지만, 그가 나약하다 여기게 된 것은 세상의 편견과 폭력에서 비롯되었다. 혼인평권, 까지 아니더라도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그만두라고 재촉하는 세상이 아니었다면 악어노트는, 구묘진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요절한 예술가에게 마음을 뺏기기에는 그 고통과 결핍이 조금 다른 세계에서는 다르게 발화됐을지도 몰라, 라는 마음에 질끈하는 마음이 된다.


여성인 내가 다른 여성을 사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양성애자인 나 역시 여자도 남자도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자를 사랑하게 됨을 놓치지 않게 된 사람이다. 내가 악어로서 세상의 기준에 벗어난다고 포획되고, 강요받지 않기를 2020년대를 살아가는 “헤이, 여기 악어가 있소. 부디 내 친구들을 잃게 마시오.”


<악어노트> 구묘진, 움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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